소풍 같은 여행이 좋다

by Chong Sook Lee



나무의 움이 허물을 벗는다.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은빛으로 피어나며 봄이 태어난다. 언젠가 이 아름다운 봄도 여름에 밀려 사라질 것이다. 지구상에 사는 모든 생물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걷는다. 언제 올지 모르는 순간을 잊고 살다가 갑자기 찾아온 죽음의 발길을 듣게 되어 놀란다. 무엇을 위해 사는지 조차 모르고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만나야 하는 죽음을 거부하며 산다.


오늘을 잃어버린 채 내일을 향해 걸어가고 오늘이 없는 내일을 산다. 오늘은 어제가 되고 내일은 오늘이 되는데 오늘은 바빠서 오늘이 왔다 간지도 모른다. 어쩌다 생각나는 오늘의 소중함을 위해 여행이라는 호화를 누린다. 다시 돌아오기 위한 여행을 하며 그런대로 사람같이 살았다고 자부한다. 멀리 가기 위해, 다시 돌아오기 위해, 어딘가에 다녀왔다는 자랑을 하기 위해 많은 돈을 쓰며 산다.


다녀온 곳의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하며 여기저기 수박 겉 기만 하고 다닌다. 가까운 곳에 가면 여행 시시하고 멀리멀리 가려고 한다. 며칠 다녀오면 며칠은 기분이 좋은데 시간이 가면 다 잊힌다.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면 재미는 있는데 어디에 가서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조차 모르는 여행이 된다. 나 역시 퇴직을 하면 어딘가 여행을 하리라 는 계획을 세우며 열심히 살았다.


여행을 가기 위해 저축을 하고 시간이 될 때 여러 군데 여행을 하고 산다. 여행이란 떠나기 위해 준비하고 돌아오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다. 모르는 곳에 가서 어영부영하다 보면 돌아올 시간이 된다. 그렇게 설레던 마음도 다녀와서 며칠 지나면 잊히고 일상으로 돌아가서 산다. 멀리 가는 여행도 좋고 유명한 곳에 가는 것도 좋은데 이제는 가까운 곳에 가서 한두 시간 놀다 오는 것이 좋다.


이곳에 43년을 살아도 안 가본 곳이 많고 가 본 곳도 새 단장으로 모습이 바뀌어 다시 가보면 좋다. 집에서 가까운 강가를 걸어본다. 앞이 탁 트인 강가에는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갈 때마다 새롭다. 사시사철 여러 가지 꽃들이 피고 지고 수많은 나무들이 철철이 옷을 갈아입는다. 숲이 깊어서 산으로 착각하기도 할 정도다. 커다란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서있고 쓰러진 고목 위에 여러 가지 버섯들이 자란다.


땅이 넓고 자연은 마음대로 뿌리를 내리고 산다. 같은 곳에 매일 가도 다른 모습으로 반겨준다.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는 사람이 지나가고 강가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이 보인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나무들이 화려한 봄을 꿈꾸며 조용히 때를 기다린다. 몇 마리의 오리들이 강을 차지하고 있다. 한번 흘러간 강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세월도 바람도 강물 따라가고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온다.


강바람이 차지만 기분이 좋다. 목적 없이 걷다가 힘들면 집에 가기에 부담이 없어 좋다. 어딘가 멀리 가면 돌아올 때까지 집에 올 수 없지만 가까운 곳에 가면 아무 때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 좋다. 멀리 가면 행복이 배가 되는 것도 아니고 가깝다고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부담 없이 하루를 즐기는 하루 여행은 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고 아침에 일어나서 무작정 나선길에서 행복을 주우면 된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다고 한다. 하늘을 보고 흘러가는 강물과 함께 눈에 보이는 것들을 보며 걸으면 된다. 인간사회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 보인다. 시기 질투 없이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는 자연을 보면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진다. 한 세상 사는 것은 인간이나 식물이 같은데 인간은 지지고 볶으며 산다.


간혹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를 본다. 문명을 거부하고 자연 속에서 단순하게 살아가는 그들은 누구 할 것 없이 행복해 보인다. 실패와 좌절로 병을 얻고 마지막 삶을 살겠다고 산으로 들어간 그들은 새로운 행복을 찾아 하루하루 기쁘게 감사하며 산다. 여러 가지 부족한 산 생활에서 나름대로의 의미를 찾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행복이 내게까지 전해진다.


돈으로 해결하는 세상이지만 행복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다. 오래전 사람들이 인디언들에게 땅을 팔라고 했는데 인디언들은 땅을 어떻게 파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디언들이 생각하는 땅은 물질적인 땅이 아니고 정신이고 엄마이다. 인간을 품어주고 위로하며 살게 하는 엄마 같은 존재를 팔고 사는 것이 아니다. 바람과 강물을 만나고 나무들과 동물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엄마 같은 땅을 산다고 그들의 마음을 살 수는 없다.


세상만물은 세월 따라 늙고 병든다. 우리는 문명에 지배되어 가는 인간들의 삶을 하루빨리 되찾아야 한다. 돈을 많이 들여서 여행을 가도 좋지만 가까운 곳에 있는 자연을 찾으며 하늘을 보고 땅을 밟으며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사는 것도 좋다. 자연은 우리를 품어주며 모든 것을 내어주는 엄마 같은 존재다. 자연과 더불어 욕심 없는 자연을 닮고 싶다. 하늘을 감싸 안고 흘러가는 새털구름이 참 아름답다. 돈으로 사고팔 수 없고 마음으로 가질 수 있는 자연을 사랑하며 하루에 다녀오는 소풍 같은 여행이 좋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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