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초대하는 하루를 만나며 산다

by Chong Sook Lee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바쁜 것도 아닌데 시간은 빨리 간다. 어느새 5월이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8일이 지난다. 특별히 해놓은 것 없이 세월만 보낸 것 같은데 따지고 보면 감사할 일이 한두 개가 아니다.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덜어내면 더 행복하다. 더 많은 것을 바라고, 더 높이 오르기를 바라면 매사가 불만족스럽다. 매일이 같은 것 같아도 하루하루가 조금씩 다르다. 매일 먹는 음식도 다르고, 머리로 하는 생각도 순간순간 다르다.


지난 주말에는 오랜만에 손주들이 놀러 온다고 해서 마음이 바빴다. 무엇을 해 먹이고 무슨 놀이를 하며 놀까 생각을 하니 설렜다. 토요일 놀고 하룻밤 자고 간다기에 나름대로 야무진 계획을 세웠다. 점심 먹고 놀다가 같이 성당에 가서 미사도 드리고 오는 길에 달리기를 하고 놀이터에 들려서 놀다 왔더니 너무 좋아한다. 아이들은 작은 것에 행복해한다. 손주들과 함께 놀고, 같이 자고 하다 보니 금방 시간이 갔다. 남편과 둘이 있을 때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바쁘고, 어쩌다 만나는 손주들과는 추억 쌓기에 바쁘다. 아장아장 걷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12살, 10살이 되었다. 어디라도 다칠까 봐 쫓아다니며 조바심했는데 이젠 혼자 노는 시간이 많다.


그래도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왔으니 추억거리 하나는 만들어 주고 싶어서 아이들이 즐겨 먹는 칼국수를 만들었다. 내가 반죽을 해주고 손주들이 밀대로 밀고 썰어서 국물에 국수를 넣고 끓여서 맛있게 먹었다. 손주들이 칼국수를 먹으며 "이건 내가 만든 국수야" 하며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다. 나이에 따라 흥미도 다르다. 작년만 해도 쿠키나 케이크를 같이 만드는 것을 좋아했는데 올해는 요리에 관심이 많다. 손주들과 놀며 나도 덩달아 아이들이 되어 신나게 놀았다. 세대가 바뀌어도 서로 공감할 수 있으면 성공한 것이다. 몸은 노곤해도 손주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정신적으로 활력을 준다.


매일이 주말이고 연휴라면 특별한 의미를 상실하고, 너무 바쁘고 분주한 생활도 의미 없다. 하릴없이 사는 것이나 정신없이 사는 것이나 좋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할 일이 넘쳐나고 시간이 모자라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고, 할 일이 너무 없어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면 아무런 의욕이 없다. 인간은 목적을 가지고 살 때 희망이 있다.


매일이 같은 나날이라면 먹고 자며 시간을 까먹는 동물이나 다름이 없다. 그렇다고 평생 일을 하고 살 수 없고 놀기만 할 수도 없다. 퇴직을 한 지 6년이다. 열심히 일을 하다가 갑자기 백수가 되어 시간이 많아져서 그동안 하지 못한 것을 하며 산다. 늦잠도 자고 만나지 못하던 친구들도 만나고 이런저런 문화생활을 하며 여유로운 삶을 산다. 시간이 없어서 가지 못한 곳을 찾아가고 틈틈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6년이라는 시간이 정말 훌쩍 가버렸다.


처음에는 아침이 기다려지고 내일이 궁금하고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할까 기다렸는데 코로나가 오고 3년이라는 조용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외출과 만남을 줄이고 남편과 나 둘만의 일상이 되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데 세월이 가다 보니 적응이 되고 세상에는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찾아보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산책하기 좋은 곳을 찾아 걸어보니 나름대로 좋다. 일을 할 때는 차를 타고 지나치던 곳을 찾아가 보면 의외로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다. 평생을 도시에서만 살아온 나로서는 숲 속의 삶을 전혀 몰랐는데 한 번 두 번 가다 보니 숲 속의 신비로운 삶이 하나 둘 눈에 보이기 시작하여 하루하루 설렌다. 온종일 숲 속에 있는 오솔길을 걷고 눈을 감으면 숲이 눈에 보인다. 어제 보지 못한 것들이 오늘 보이고 오늘 보지 못한 것들은 그다음 날에 다시 보인다.


바쁜 생활도 좋지만 한적하고 조용한 숲에는 평화가 있다. 자연을 친구 삼아 같이 걸어가고 이야기하며 그들의 성장과 노쇠를 본다. 작은 나무들이 자라서 의젓하게 숲을 지키고 평생 숲을 지키며 살아온 나이 든 나무들은 하나 둘 쓰러져서 하늘을 본다.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숲을 지키는 나무와 새들이 변함없이 반겨주고 꽃과 풀들이 길을 내어준다.


사람이나 자연이나 자꾸 만나면 정이 드나 보다. 매일 가다가 못 가는 날은 숲이 궁금하기까지 하다. 불과 며칠 사이로 녹음이 우거져 푸른 옷을 입고 바람 따라 춤을 추는 나뭇잎들과 아무것도 없던 땅에는 여러 가지 풀들이 나와서 봄잔치를 한다. 민들레가 지천이고 이름 모를 풀꽃들이 하나 둘 피어나고, 며칠 있으면 참나물과 취나물이 나오고 온갖 열매가 열린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숲에는 무수한 생명이 태어나고 죽으며 세월이 간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과 만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정신적으로 좋다고 하는데 이렇게 숲을 찾아 자연을 접하는 것도 좋다. 말을 하지 않는 자연이지만 자연 안에도 철학이 있다. 때를 기다리고 인내하며 멈추는 지혜를 배운다. 더하고 빼며 쌓고 비우며 버리는 슬기도 보인다. 앞으로 가고 뒤를 돌아보며 차분히 오늘을 사는 자연을 본다. 매일매일 변함없이 나를 초대하는 하루를 사랑하며 산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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