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5월의 아침이 잠을 깨웁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시절입니다.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물들어 가고, 하늘은 파랗고, 새들은 자유롭게 창공을 날아다닙니다. 온갖 새싹들이 자라나고 겨우내 잠자던 곤충들이 세상구경을 나옵니다. 모든 생물들이 저마다의 할 일을 하며 세상은 돌아갑니다. 개미가 바쁘게 돌아다니고 벌과 나비도 오고 가며 꽃을 찾아다닙니다. 무엇을 하는지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그들을 보면 나의 게으름이 보입니다.
특별히 하는 일 없이 하루 삼시 세끼 밥을 챙겨 먹고, 특별히 한 일도 없는데 피곤하다고 낮잠을 자고, 밤이 되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잠을 잡니다. 자꾸만 짧아져 가는 시간인 줄 모르고 그냥 생각 없이 세월을 보냅니다. 나중에 어느 날 가야 할 시간이 되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모릅니다. 그때는 후회해도 소용없고 되돌아갈 수 없는데 말입니다. 그때 가서 후회를 할지 언정 오늘은 오늘대로 살아갑니다. 내일은 내일이 오면 걱정을 하고 오늘은 오늘 대로 살면 됩니다.
푸른 숲을 따라 걸어갑니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있으면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 곤충들이 할 일을 하듯이 자연도 열심히 무언가를 하며 하루를 살아갑니다. 비 온 다음날은 계곡물이 꽉 차서 콸콸 흘러가더니 오늘은 소리 없이 얌전하게 앞만 보고 흘러갑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새들이 오케스트라 합창단을 만들었나 봅니다. 곱고 애절한 목소리로 사랑을 고백하고, 가슴속에 있는 그리움을 전하며 숲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립니다.
나무와 새는 동색이라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멀리서 빨간 모자를 쓰고 나무를 찍어대는 딱따구리 새소리가 들립니다. 찍어대는 소리로 숲이 쩌렁쩌렁 울립니다. 죽은 나무에 맛있는 벌레가 많이 있나 봅니다. 새부리가 엄청 아플 텐데 사정없이 먹이를 구하기 위해 나무를 찍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물은 먹어야 살 수 있기에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이민 초기에 열심히 살았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살아남아야 했기에 공부를 했고 힘들어도 일을 쉬지 않고 살았습니다.
사는 것은 동물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태어 나서 죽을 때까지 내게 오는 시간을 맞고 보내야 합니다. 좋은 시간만 가질 수 없고 나쁜 시간도 맞이해야 합니다. 세상을 사는 동안 좋은 일이 얼마나 많이 있을까요? 걱정 근심 속에 한평생 살아가는 게 인생입니다. 며칠 전만 해도 휑하던 숲이 푸르른 나뭇잎들로 꽉 차서 잔치를 하여 숲 속이 보이지 않습니다. 머지않아 풀들도 잔치를 하고 모기들이 숲을 점령할 듯합니다.
계곡이 있어서 인지 이곳은 모기가 많아 사람들이 모기공원이라고도 합니다. 모기들이 사는 구역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잘못이기에 모기가 물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오솔길은 오르내림이 있고, 아기자기한 여러 가지 볼거리가 많아 모기가 물어도 걷지만 숲 속의 오솔길에 풀들이 누우면 길이 좁아 큰 산책로를 걸으면 됩니다. 세상 살이 좋은 것만 할 수 없지요.
길가에 민들레가 파릇파릇 나와서 반갑다고 봄인사를 합니다. 조금 지나면 꽃이 피기 때문에 몇 개 따서 가방에 넣고 걸어갑니다. 집에 가서 다듬어 깨끗이 씻어 살짝 삶아서 고추장에 맛있게 무쳐 먹을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행복은 바로 이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돈이 많다고, 높은 자리에 앉아 있다고, 다들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 맞나 봅니다. 파란 하늘아래 남편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걸어가는 이 순간이 참 좋습니다.
새들이 노래하고 시냇물이 흐르는 숲 속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행복이 있습니다. 살면서 자주 오는 이곳은 이다음 사후에도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매일 오는 곳이라서 눈을 감고도 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민 세월 43년이 지나니 많은 사람들이 늙고 떠납니다. 살만큼 살다가 가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누군가가 떠났다는 소식을 들으면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어제는 남편 친구의 동생이 젊은 나이에 천국행 열차에 탔습니다.
한창 재미있게 살 나이에 떠나 남아있는 사람들이 슬퍼합니다. 한 평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평생을 힘들게 사는 게 인생입니다. 멋진 관에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하고 마지막 인사를 하고 하관을 하는 모습이 참 처량한 생각이 듭니다. 한평생 고생하고 깜깜한 땅속에서 얼마나 답답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는 내 차례가 될 것을 알기에 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숲은 어디나 편안하고 좋은데 유난히 마음에 드는 곳이 있습니다. 평풍을 두른 듯이 뒤를 가리고, 앞은 훤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계곡물이 흐르고, 나무들이 사시사철 다른 옷을 입고 최선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 있는데 지날 때마다 오래도록 찾아오고 싶은 곳입니다. 지구를 떠나 어느 별에서 살아갈지 알 수 없지만 간혹 찾아오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며 웃어 봅니다. 어디를 가도 정들면 고향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이곳이 내 마음의 고향이 되었나 봅니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옵니다. 누군가가 위급한가 봅니다. 건강을 되찾기를 기원하며 집으로 향합니다. 5월의 파란 하늘이 수줍게 웃고 있는 아름다운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