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잘 살아보자

by Chong Sook Lee



화창한 여름날이다. 어제 하루종일 오던 비는 땅으로 모두 스며들어 다시 뽀송뽀송한 흙이 누워있다. 언제 비가 왔었는지 모르게 하늘이 맑고 푸르다. 해마다 이맘때면 백야현상으로 밤이 캄캄하지 않다. 오후 9시 54분이 일몰시간인데 12시가 다 되어도 훤해서 두꺼운 커튼으로 창문을 가리고 잔다. 새벽 3시가 되면 동녘 하늘은 벌써 벌겋게 밝아오기 시작하여 5시 10분이면 일출 시간이다. 결국 밤 시간은 몇 시간에 불과하고 칠흑 같은 밤은 없는 셈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백야현상 때문에 낮이 길어져도 평소대로 저녁에 잘 시간이 되면 졸음이 오고 아침 6시쯤 잠이 깬다. 43년 전 이민 왔을 때, 백야현상이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해서 잘 몰랐다. 안 그래도 고향생각에 잠 못 이루고 있는데 밤이 되어도 밖이 환해서 휘영청 밝은 달을 쳐다보며 향수병으로 눈물을 흘리던 때가 생각난다. 밤이 되어 캄캄해지면 오지 않는 잠도 오는데, 밤이 되어도 어두워지지 않고 새벽부터 해가 떠오르기 때문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울 때가 많았다.


오랜 세월이 흘러 이제는 백야현상이 연례행사가 된 지도 오래되었다. 하지가 지나면 해가 조금씩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며 백야 현상은 없어지기 시작한다. 때를 알고 변하는 자연은 참으로 신기하다. 언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하지 않는데, 자연은 자연의 할 일을 잊지 않고 미루지도 않는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기 일쑤다.


자연은 올 때를 알아 기다리고, 때가 오면 최선을 다하고, 갈 때가 되며 미련 없이 떠난다. 아침 다섯 시인데 환한 바깥을 내다본다. 하늘은 파랗고 나무들은 푸르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시절이다. 젊음의 색이 있다면 저런 색깔일 것 같다. 보기 좋고 활력 있고 하는 일이 잘 풀리는 때가 전성기인데 지나간 젊음은 돌아올 수 없고 지금이 나의 전성기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아이들 잘 살고, 남편과 나도 건강하고 여유롭게 하루하루 산다.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니 더없이 좋다. 오를 만큼 오르고 가질 만큼 가졌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가는 길을 알고, 해야 할 것을 알기에 앞이 보인다. 때가 되면 가벼운 마음으로 훨훨 날아서 가야 할 곳으로 가면 된다. 삶은 하루하루의 연속이다. 잠을 잘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할 일을 하다 보면 점심이 되고, 휴식을 취할 시간 없이 또 저녁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우리는 무언가 맡은 일을 하며 살다가 종소리를 듣는다.


우리를 이끌어주는 것은 창조주의 몫이다. 빨리 걷는다고 먼저 갈 수도, 급하다고 앞장설 수 없다. 자연처럼 세상만사 모두 때가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행복은 깨달음이다. 창조주의 허락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하는 일이 잘 되고 안되고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는 우리의 최선을 다하며 처신을 기다리면 된다. 몸부림친다고 일이 잘되면 누구나 몸부림 칠 것이다. 고통이 싫다고 울부짖고 거부한다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몫을 다할 때 생명도 다하는 것이다.


뜨거운 태양이 저녁때 석양이 되어 넘어가는 모습은 너무 아름답다. 하루라는 시간을 불태우며 석양이 되어 떠나가는 태양은 마지막 정렬의 힘을 다 쏟아놓고 가는 것이다. 우리도 그처럼 순간순간을 열심히 살 때 눈부신 석양의 모습이 된다. 비가 내린 세상은 새로 태어난 아기 같다. 어제는 어둡고 축축하고 우울했지만 오늘의 태양이 새로운 희망을 준다. 어제보다 나은 희망의 날 이기를 소망한다.


세상의 푸르름이 하늘을 찌르고 우리의 마음 또한 사랑이 넘친다. 새로운 태양과 함께 하루가 시작되고 주어진 삶은 우리 모두를 이끈다. 세찬 바람이 불고, 진흙탕에 빠져도 우리는 결코 주저앉지 않고 일어선다. 태양이 우리를 저버리지 않기에 다시 힘차게 살아간다. 매일 아침 새로운 해가 우리를 반기고, 밤이 와서 우리를 휴식하게 한다. 백야현상으로 낮이 길어 밤잠을 설치더라도 여전히 나날이 오고 간다. 이제 얼마 지나면 밤이 길어지고 그동안 못 잔 잠은 긴 밤을 가져다주는 겨울에 자면 된다.


이른 아침 시간인데 해가 중천에 떠있다. 무언가 할 일을 찾으며 바쁘게 살아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려도 하루는 간다. 하루의 주인은 나다. 하루를 잘살고 백 년도 하루같이 살면 된다. 어제라는 하루가 가고 오늘이라는 하루가 왔다. 우리의 삶은 행과 불행의 갈림길에 서서 바라보는 곳에 있다. 남은 인생 후회 없이 미련 없이 살아보자.


(사진:이 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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