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와야 할 때를 결코 잊지 않는다. 잔디 위에 뒹구는 낙엽의 숫자가 하루가 다르게 많아진다. 나무를 지키던 낙엽들은 이제 어딘가로 가야 한다. 골목길을 굴러가다 웅덩이에서 쉬기도 하고 계곡물을 따라 강으로 놀러 가기도 한다. 강을 따라가다가 폭포를 만나 낭떠러지로 떨어져 바다구경도 한다. 바람이 부는 대로 바람 따라간다. 한 세상 원 없이 살았으니 후회 없이 뒤돌아 보지 않고 앞으로 간다. 가다 보면 친구들을 만나 어깨동무도 하고 양지바른 땅에 앉아 지난여름을 이야기한다. 숲에서 만난 장난꾸러기 다람쥐도 그립고, 고운 노래를 불러주던 새들도 그립지만 어느 날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 다시 만나면 된다. 구름이 가려도 태양은 있고 나뭇잎이 떨어져도 나무는 봄을 기다리며 겨울을 살아야 한다. 삶은 어차피 돌고 도는 도돌이표다. 먹고 자고 놀고 일하며 알아가고 깨닫는다. 누가 가르쳐줄 수도 없고 함께 갈 수도 없는 혼자만의 외로운 투쟁의 시간을 걸어가야 한다. 새싹이 돋아 녹음을 이루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맞아도 시들어 떨어지는 시간은 다르다. 제각각의 운명을 걸어가는 것이다. 아무리 따뜻해도 겨울이 봄이 될 수 없듯이 사람마다 저마다의 삶이 있고 시간이 있다. 부럽다고 남의 인생을 가져올 수 없고 싫다고 나의 삶을 버릴 수 없다. 해가 떠서 하루종일 세상을 밝혀주고 석양이 되어 넘어가 밤이 되어 어둠이 세상을 지배하지 않으면 태양은 떠오르지 않는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은 우주에서 받은 시간이 있어 시간이 다하면 사라진다. 자연은 자연의 할 일을 다하면 떠나는 것 같아 보여도 보이지 않는 삶을 이어간다. 나무가 쓰러져 땅에 누워 있으면 그 안에서 또 다른 생명이 자란다. 많은 생명을 기르던 나무는 세월 따라 가루가 되고 흙이 되어 땅속으로 스며든다. 땅속에 있는 유전자를 찾아가 어딘가로 가서 다른 모습으로 새로 태어나 다른 삶을 살아간다. 시작은 시작이 아니고 끝은 끝이 아니다. 어느 날의 만남은 이별이 따라오고 이별은 새로운 만남을 기약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인연은 새로운 것이 아니고 모든 일은 갑자기 생겨난 일이 아니다. 보이지 않고 알지 못하는 일들이 순환의 법칙에 의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부모의 모습을 닮아간다. 어느 날 우연히 본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에 엄마의 모습이 보이는 것을 보면 유전자는 영원히 존재함을 알게 된다. 끼리끼리라는 말이 있다. 친한 사람끼리, 좋아하는 사람끼리 같이 살아간다. 구름은 구름끼리, 바람은 바람끼리 몰려다니고 물은 물길을 따라 흘러가고 불은 불길을 따라 번진다. 열매들이 경쟁하듯 빨갛게 익어가고 단풍도 덩달아 물들어간다. 가을이 오고 있다. 나무가 옷을 다 벗어도 나무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수난의 시간을 보내고 봄이 오는 날 희망의 꽃이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