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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Apr 21. 2020

어찌하여,,,  개똥밭에 갔을까



마가목 나무가 봄을 맞는다.(사진:이종숙)



이다. 그리워하며 기다리던 봄이 왔다. 화창하다 못해 눈부신 아침이다. 오늘은 어딘가 새로운 곳으로 가보고 싶은 생각에  언제나처럼 아침을 먹고 산책을 나섰다. 차로 30분쯤 가면 널따란 들판이 있고 강과 절벽을 끼고 사람들이 산책을 하는 공원으로 가기로 했다. 갑자기 찾아온 봄에 뜰에 있던 눈이 순식간에 녹는 모습이 내일 노래면 다 녹을 것 같다. 가지 않을 것 같던 겨울은 도망가듯 가버리고 오지 않을 것 같은 봄은  막 뛰어 온다. 공원으로 가는 길은 차들이 별로 없고 한산하다. 길가에 보이는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마음이 짠하다. 하루하루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인데 전염병 때문에 문을 다 닫았으니  걱정스럽다.  아무리 정부에서 소상공인들을 보조해 준다고 하지만 문을 열고 장사하는 것이 훨씬 좋을 텐데 얼마나 가슴이 탈까 나까지 안타깝다. 몇 년 전에 장사를 그만둔 나이지만 자금 껏 계속했더라면 엄청 속상했을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하여 개 공원이 폐쇄되었다. 그동안 개를 풀어놓아 넓은 들판에서 신나게 뛰어놀게 하였는데 이제는 목줄을 묶어야 한다. 개들이 이리저리 뛰어 돌아다니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달려들어 신경이 쓰였지만 들판 너머에 강변이 있어 자주 가던 공원이다. 개들을 풀어놓지 않으니 괜찮겠다 싶어 오랜만에 넓고 탁 트인 개 공원으로 갔다.  다행히 걷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목줄을 묶으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안 온 것 같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눈이 많이 쌓였었는데 그 많던 눈이 며칠 사이에 다 녹아 누런 들판으로 변했다. 차를 주차하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똥이 여기저기 보인다. 눈이 있을 때는 똥이 잘 보여 피해 갈 수 있었는데 잔디나 똥이나 누런색이라 똥인지 잔디인지 아니면 나무 조각인지 도저히 구분이 안 간다. 이리저리 피해 가며 걸어본다.


아직 강가까지는 조금 걸어야 하는데 너무 더러워서 그냥 갈까 하다가 여기까지 온 게 너무 억울해서 그냥 앞으로 간다. 발자국 띄기가 무섭다. 멀리서 사람들 몇 명이 천천히 산책을 하는데 그쪽은 어떤지 모르겠다. 눈이 녹아 물구덩이도 많다. 똥물이라 생각하니 기가 막히다. 사람을 피해서 이곳에 왔는데 똥을 피하기가 더 힘들다. 간신히 개똥을 피해서 강변까지 걸어갔다. 다행히 강 가까이에는 개똥이 얼마 없다. 많은 사람들이 주차장에 가까운 곳에 개를 풀어놓고 볼일을 보게 하는 모양이다. 원래는 개가 볼일을 본 뒤에 주인이 비닐봉지에 넣어서 쓰레기통에 넣어야 하는데 개들이 멀리 뛰어가서 볼일을 보는 경우가 많아 쫓아다니기 힘이 들어 규율을 못 지킨다. 강은 아직 얼었지만 강기슭은 물이 흐른다. 지난주 타 지역에 있는 강에서 젊은 청년들이 놀다가 참변당했다는 뉴스가 생각난다. 


해마다 이맘때는 강에서 사고가 많이 난다. 겉으로 보기에는 얼은 것 같지만 가다 보면 중간 증간에 얼음이 녹아 얇아져서 건드리면 쉽게 깨진다. 젊은 패기로 준비 없이 무작정 강에 들어가 사고가 생긴다. 강가를 따라가면서 강 저쪽 편에 있는 절벽을 보니 살점이 떨어져 나간 곳이 여러 군데다. 겨울의 혹한을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 것 같다. 뽀얀 새 흙이 보인다. 바람이 불고 눈비가 내려도 피할 수 없이 그대로 맞아야 한다. 강바람을 맞으며 무서운 겨을을 견디기가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숲은 여전히 조용하다. 개를 풀어놓는 것이 금지되어서 인지 개도 사람도 없다. 산책길은 눈이 녹아 걷기가 힘든다. 그래도 한번 나온 길이니 그냥 돌아서 갈 수 없어 무조건 앞으로 전진이다. 눈이 녹은 땅에는 개똥 천지다. 땅을 보며 개똥을 피해 가야 한다.


질퍽거리는 물을 피하고 개똥도 피해 간신히 걷는다. 지금 숲 한가운데에 있으니 앞으로 걸어온 만큼은 더 가야 한다. 햇살이 강하다. 한참을 걸었더니 땀이 난다. 오늘은 웬일인지 바람도 없고 새들도 다람쥐도 없다.  어느새 나무 사이에 쌓여있던 눈도 거의 다 녹고 나무들은 아직 나목인 채 햇살을 몸으로 받는다.  갑자기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바람에 자연도 어찌할 바를 모른다. 해마다 봄이 되면 시에서 나와 공원을 정리해 주는데 아직은 때가 안 되었는지 공원 전체가 자연 그대로다. 꺾어진 나무와 넘어진 나무들이 그냥 땅에  제멋대로 굴러다니고 작은 나뭇가지들이 산책길을 향해 뻗혀 있어 잘못하면 눈이나 머리를 찌른다.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들을 해고시켜서 일손이 많이 부족하다. 어딜 가도 폐가처럼 쓸쓸하다. 어서 빨리 정상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걸어본다. 하늘은 무심하게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숲 속의 오솔길로 들어서니 길이 엉망이다. 녹은 곳은 너무 녹아 커다란 물구덩이를 만들고 안 녹은 곳은 얼은 채로 있어서 미끄럽다. 커다란 나무 아래 다람쥐가 까먹고 놓아둔 빨간 오미자 껍질이 한 무더기 쌓여 있다. 추운 겨울에 그것이라도 있어 다행이다. 아무도 없는 숲 속은 참으로 조용하다. 멀리 하늘 높이 기러기 한쌍이 꽉꽉 소리를 내며 날아온다. 따뜻한 봄이 오니 가을에 남쪽으로 갔던 기러기들이 다시 오고 있다. 이맘때 온 기러기들은 봄여름 가을을 이곳에서 지내다가 다시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간다. 길바닥을 보며 걷느라 어깨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다. 이젠 한동안은 이곳에 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눈이 쌓여 있을 때는 그저 깨끗해 보였는데 눈이 녹은 들판은 지저분하고 삭막하다. 똥도 많고  반쯤 녹은 길이 계속 걷기가 너무 힘들어 샛길로 걸어 들어갔는데 거리는 짧아졌지만 아까 가던 길보다  더 나쁘다.


사람들이 많이 걷지 않는 길이라서 그런지 여러 군데 물이 고여있어 신발이 다 젓고 다리는 아프고 리 집에 가고 싶은데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저 멀리 꼭대기에 오던 편한 길이 보인다. "다시 거기로 갈까?" 하며 남편이 장난을 친다. 이미 늦었다. 가던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어차피 들어온 길인데 지금 나가면 시간이 두 배나 걸린다. 힘들어도 참고 걷는데 신발에 껴있는 아이젠이 자꾸 빠져 불편하다. 남편이 엎드려서 다시 끼기를 서너 번 하며 앞으로 앞으로 걷는다. 한참을 가다 보니 멀리 주차장이 보인다. 한 십 분은 더 걸어야 할 것 같다. 햇살은 더욱 따스한데 갈길이 멀다. 평지가 가까우니 눈은 거의 없고 물만 흥건하다. 잔디라고 생각하고 밟았는데 발이 거의 다 들어갈 만큼 물이 많다. 빨리 오려고 샛길로 들어선 게 큰 잘못이었다.


평소 걷던 길로 그냥 걸었으면 덜 힘들었을 텐데 약은 꾀를 부리다가 고생만 했다. 똥과 얼음 때문에 계속 땅을 보고 걸어야 한다. 주차장이 가까울수록 개똥이 많다.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개똥이다. 어서 빨리 이곳을 나가야 한다. 어느새 사람들이 모여든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아까는 조용했는데 사람들이 늦잠 자고 바람을 쐬러 왔나 보 다. 주차장으로 다가가는 발길이 휘청거린다. 물을 피하고 개똥을 피하며 걸었더니  다리가 너무 힘이 든다. 어느새  시간 반을 걸어 다녔다. 길이 좋으면 몇 시간을 걸어도 피곤하지 않은 숲 속에서의 산책인데 오늘은 정말 피곤하다. 차에 앉아서 편하게 밖을 내다보니 멀리 뽀얀 숲이 보인다. 가보지 않고 눈으로 보기는 좋은데 개똥 때문에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약이 올라 당분간 이곳에 오지 않기로 했다.


어쩌다가 개똥밭에 오게 되어 이리 고생을 했는지 모르겠다. 늘 가던 공원은 사람들이 많고  길이 미끄러워 오늘은 색다르게 이곳으로 온 것이 이 꼴이 됐다. 꿈에서도 똥, 똥, 할 것 같다. 아무튼 이렇게 와서 보니 모르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절대로 눈이  녹는 사월 달에는 올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전혀 수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요즈음은 눈이 녹아서 흐르는 물 때문에  길이고 산이고 다 지저분하다. 차를 닦아도 며칠 사이에 다시 더럽혀진다. 그렇다고 안 닦고 다닐 수도 없고 닦자니 금방 더러워지지니 어쩔 수 없다. 사람을 피해 찾아온 개똥밭에서 한참을 헤맨 하루가 간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 고 하는 말이 생각나는 날이다.



어쩌자고 개똥밭에 갔을까?


빨간 열매가 꽃처럼 봄을 맞는다.(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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