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에 서리가 하얗게 덮였다. 아직 밖에 나가 보지는 않았지만 추운 아침일 것 같다. 추워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청명하니 걱정은 뒤로 하고 숲으로 간다. 아침을 먹고 산책을 나가는 게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아무리 날이 추워도 든든하게 입고 나가면 된다. 처음에는 얼굴이 춥고 손도 시리지만 10분 정도 걸으면 몸에서 열이 나고 더워진다. 더도 말고 딱 10분만 참으면 된다. 오솔길에 떨어진 낙엽 위를 걷는다. 약간 미끄러운 것 같아서 조심조심 간다. 마른 풀이 눈이 오지 않아 그대로 말라 붙은 채 서 있다. 넘어진 나무들 위에 하얀 서리가 햇살에 반짝인다. 계곡물은 얼어 있지만 군데군데 녹아서 물이 흐르는 곳도 보인다. 열심히 걸어본다. 거의 매일 오는 곳이니 다음에 무엇이 있는지 안다.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가다 보면 오르막이 있고 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면 내리막이 있다. 곧장 가면 짧은 거리인데 뱅글뱅글 돌며 가기 때문에 한참을 돌아도 얼마 못 간다. 누군가가 간길을 따라 사람들이 걸으며 생겨난 길이다. 목적지가 보여서 곧바로 가면 될 것 같지만 가다 보면 장애물이 많다. 커다란 나무가 버티고 있고 계곡이 사라지고 세 갈래길이 나온다. 가는 길이 어디인지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몇 년 전에 남편과 둘이서 오후에 숲을 걷다가 돌아갈 시간이 되어 돌아서 오는 길에 길을 잘못 들어섰다. 분명 나가는 길로 들어선 것 같은데 착각을 해서 다른 길로 들어선 것이다. 들어갈 때 있었던 계곡이 없고 낭떠러지 꼭대기에 서 있었다. 계곡을 건너지 않았는데 계곡 반대편으로 간 것이다. 앞에는 세 갈래길이 있는데 가다 보면 길이 끊기고 막히고 해서 돌아서 나오기를 몇 번을 했다. 겨울이라서 해가 짧아 어두워지고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길이 보이지 않는데, 오고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데 뒤를 보면 낭떠러지가 있고, 앞에는 무성한 나무들만 있다. 갈 길을 몰라 우왕좌왕하며 초조해하고 있을 때 멀리서 인기척이 들린다. 남자 혼자 급하게 이쪽으로 온다. 어찌나 반가운지 가까이 다가가 길을 잃었다는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따라오라고 하며 뛰어간다. 깜깜한 숲 속에서 뛰어가는 그를 놓칠까 봐 기를 쓰고 쫓아갔다. 무슨 이유로 그 사람이 그리도 빨리 뛰어갈까 이해를 할 수 없었지만 무조건 앞으로 달려갔다. 어찌어찌해서 한참을 걷다 보니 주차장이 있는 곳에 차소리가 들려서 안심을 하고 걸어갔다. 길을 안내하던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아 고맙다는 말도 전하지 못하고 헤어졌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어두운 숲 속에서 전혀 모르는 우리를 만나서 내심 그도 놀라서 급하게 뛰어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찌나 빨리 뛰었던지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던 그날 그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의문이다. 어쩌다 계곡을 건너가게 되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퍼즐이 안 맞춰진다. 자연은 가진 것을 아낌없이 주지만 냉정하다. 한번 길을 잃으면 가는 길을 알려주지 않는다. 수많은 유혹이 있고 곳곳에 위험이 있다. 자칫 잘못하면 길을 잃고 순간의 실수로 실족하여 생명을 위협한다. 한 발 한 발 걸을 때마다 욕심을 버리고 겸손하게 감사해야 한다. 매일 온다고 얕잡아 봐서도 안되고 아는 길이라고 어설피 행동하면 안 된다.
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커다란 새가 날아서 반대쪽 큰 나무에 가서 앉는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보니 부엉이 한 마리가 전나무 가지에 앉아 있다. 고개를 돌리며 사방을 살피는데 까치 한 마리가 부엉이에게 다가간다. 망원경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앞으로 걸어간다. 서리가 녹지 않은 작은 나무 가지들이 보석을 달은 듯 눈부시게 반짝인다. 신비로운 자연의 아름다움에 놀란다. 봄에 피어나는 새싹이 아름답지만 이파리를 다 떨구고 햇살을 받고 서있는 마른 나뭇가지들도 참 예쁘다. 생명이 없는 것 같은 겨울은 이렇게 봄을 향해 간다. 죽은 듯 침묵 속에서 봄을 만들고 때가 되면 봄을 낳는다. 산짐승들이 나무아래에 파 놓은 땅굴이 보인다. 여름에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고 걷노라면 나도 모르게 숲을 닮아간다. 걱정 근심 없이 자연에 순응하는 숲에서 살아가는 지혜를 배운다. 쌓아놓지 않아도 올 것은 오고, 붙잡고 있어도 갈 것은 간다. 좋은 것들은 기억에 남고 힘들었던 기억은 희미하다. 잊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세월 따라 잊는다. 살을 에이는 차가운 바람이 지나가면 따스한 바람이 분다. 슬픔은 말없이 사라지고 기쁨을 남기고 간다. 어제는 어제의 할 일을 하고 오늘은 오늘의 일을 한다. 바람 따라오고 가는 인생살이 두려울 것도 없고 후회할 것도 없다. 봄이 오면 여름도 따라오고 가을이 오면 겨울도 덩달아 온다. 숲 속에 내린 서리가 녹지 않고 하루가 간다. 앉은자리를 빛내며 반짝이는 서리가 잠시 쉬었다 가라고 한다. 등에 내려앉아 나를 따라오는 햇살이 몸을 따스하게 한다. 길어진 그림자가 남편과 나를 인도한다. 하늘과 숲과 햇살이 함께하는 길에 축복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