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을 둘러보니 물건이 많다. 언제 산지도 모르는 물건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민 가방 두 개 들고 캐나다에 왔는데 살림이 많다. 사람이 살아 가는데 도대체 얼마만큼의 물건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민 초기에 살림이 없을 때는 식탁 대신 신문지를 바닥에 깔고 식사를 하던 생각이 난다. 그 뒤로 야금야금 사들인 물건이 집안 가득하다. 버리고 사고를 반복하며 살아왔다. 이제는 더 이상 사고 싶은 생각도 없고, 있는 것도 짐이 되어간다. 그래도 내가 이 집에 사는 한 있어야 할 물건들이다. 방이 네 개가 있고 붙박이 옷장이 방마다 있고 침대와 서랍장이 하나씩 있다. 거실이 두 개다 보니 소파도 두 세트가 놓여있고 집이 넓어서 화장실도 3개나 된다. 청소도 한꺼번에 하기 힘들어 매일 조금씩 나눠서 한다. 아이들이 어쩌다 집에 오면 결혼 전에 사용하던 각자의 방에서 자고 간다. 아이들이 남겨둔 살림이 많아 아이들에게 치우라고 하면 시간이 없지만 집에 오면 쉬느라고 바빠서 치지 않는다. 언제 정리할 거냐고 물으면 엄마 아빠 것부터 먼저 치우라고 한다. 상자에 넣어서 이름을 써 놓으면 나중에 알아서 할 것이다.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산 물건들이다. 품질이 좋아 해지지도 않고 썩지도 않는 물건들이다. 해진 물건은 편해서 쓰고 멀쩡한 물건은 나중에 쓰려고 가지고 있다. 시간은 자꾸 가는데, 시간은 바짝바짝 다가오는데 쓸 시간이 없다. 매일매일 어디를 가는 것도 아니고 누구를 만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편한 옷을 입고 편한 신발을 신으면 된다. 그릇도 가볍고 깨지지 않는 것을 주로 쓴다. 그릇이 모자랄까 봐 여유로 사놓았는데 외식을 자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아이들이 자랄 때만 해도 집으로 손님을 초대했는데 지금은 식당으로 초대한다. 요리를 할 의욕도 없고 힘들어서 엄두를 못 낸다. 나이 탓이고 세월 탓이다. 하루종일 식당에서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집에 와서 친구들을 불러 모아 노는 재미로 음식을 만들며 살았는데 지금은 겁부터 난다. 남편과 둘이 사는 집이 크게 느껴질 때도 많다. 여름에는 잔디와 씨름을 하고, 겨울에는 힘들게 눈을 치워야 하는 남편도 해가 거듭될수록 힘겨워한다. 그렇다고 이 나이에 노인들 사는 아파트로 가고 싶지는 않다. 몸은 힘들어도 단독주택에서 텃밭에 농사를 지으며 이웃을 만나며 사는 게 좋다. 가족이 모이면 손자들이 뜰에서 재미있게 놀고, 아이들이 넓은 장소에서 편하게 지내다 가면 행복하다. 머지않아 이 집을 떠나야 할 때가 오기 전에 하나둘 치워야 하기에 나름대로 조금씩 정리하는데 쉽지 않다. 정신 있을 때 서둘러야 하는데 게으름만 피운다. 시간 날 때는 뒹굴거리며 걱정만 하다가 나중에 후회할 것을 안다. 오늘이라는 시간은 단 한번 나에게 온다. 나를 찾아온 오늘에게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냥 보내는 게 습관이 되었다. 둘러보면 할 일이 태산같이 많은데 못 본 체하며 세월만 보내는 것 같아 무언가 해보려고 시작을 한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크리스마스트리를 꺼내서 장식을 매달고 세워 놓으니 금방 분위기가 달라진다. 가을에 입던 옷이나 모자를 집어넣고 겨울옷을 꺼낸다. 쿠션 카바를 교체하고 얇은 이불을 치우고 두꺼운 이불을 꺼낸다. 버리는 물건은 한꺼번에 버리면 되니까 급할 것 없다. 가만히 앉아서 손가락을 움직이며 눈을 즐겁게 하는 것도 좋지만 집안일을 해보니 그것도 재미있다. 누가 해줄 것도 아니고 결국 내가 해야 하는데 미루면 미룰수록 나만 손해다. 어느 날 갑자기 어디라도 가게 되면 발목을 잡히는 것보다 힘들어도 지금 하는 게 훨씬 낫다. 예전에 엄마가 이것저것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하시던 것이 생각난다. 엄마도 지금의 나 같은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재촉하셨나 보다. 날마다 오는 날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리해도 표시가 나지 않지만 조금씩 하다 보면 끝이 보일 것이다. 좋아하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그것도 세월 따라 시들해진다. 힘들고 복잡한 것은 피하고 산다. 편안하게 쉬면서 힘들지 않게 천천히 하는 게 좋다. 무엇이든지 지체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후다닥 해치웠는데 지금은 다르다. 번거롭고 시끄러운 것보다 단순하고 조용하게 사는 게 좋다. 사람은 아기가 두 번 된다고 한다. 어릴 때 엄마 품에서 누워서 재롱을 부리고 나이 들으면 또다시 아기의 모습이 되어 간다. 무엇이든지 한꺼번에 하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앞서 가려하지 않으면 건강에도 좋다. 생각은 금방 할 것 같은데 몸이 안 움직여지면 몸의 말을 들으면 된다. 잘못해서 허리라도 삐끗하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급하게 하려다 다치는 것보다 가만히 있는 것도 도와주는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는데 크리스마스 장식을 해놓으니 집안이 훤하다. 일 년에 한 번 쓰는 크리스마스트리가 한몫한다. 집 앞에 자작나무에도 색색으로 된 전구를 달아 놓으니 동네 전체가 밝아진다. 별것 아닌 것으로도 세상은 달라 보인다. 정리라는 것은 물건을 버리지 않고도 기분을 전환시킨다. 라디오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계속해서 나오고 나도 덩달아 어깨춤을 추며 캐럴을 흥얼거린다. 나는 어느새 아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