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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May 05. 2020

봄비 따라... 추억도 피어난다




봄비다. 봄비가 온다. 비가 오니 죽은 듯하던 나무들이 잎을 내보인다. 초록빛 작은 이파리들이 파랗게 가지마다 달려있다. 어제만 해도 보이지 않았는데 목마른 잎들이 물 한 컵 마시고 나더니 파릇파릇 살아난다. 어제 오후부터 꾸물대던 하늘이 저녁때부터 봄비를 밤새도록 쏟아낸다. 메마른 대지도 좋아라 한다. 산책길을 걸을 때마다 푸석대며 올라오던 뿌연 먼지를 재운다. 물을 먹이니 세상이 달라진다. 나무들은 싹을 틔우고 꽃들은 봉우리를 터트린다. 다람쥐도, 새들도 짝을 짓고 활개를 핀다. 하늘은 아직도 깜깜하다. 구름 안에 비를 품고 있다. 불어대던 바람도 자고 세상은 얌전하게 비를 맞는다. 지붕도 젖고 나무도 젖고 길거리에 세워 둔 차들도 젖어 있다. 비 오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꼼짝 말고 집안에서 비 구경이나 해야겠다. 밖의 온도가 영상 4도다. 5월 날씨치고는 무척 춥다. 겨울 코트가 생각난다. 밖의 온도가 내려가니 집안의 보일러가 바빠진다. 보일러가 열심히 땀을 흘리며 돌아간다.

비 오는 날은 옛날 엄마가 해 주시던 부침개가 생각이 난다. 재료가 귀하던 그 당시에 밀가루에 파와 호박만을 넣고 해 주셨다. 6남매인 우리는 엄마의 부침개를 먹으려고 상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기다린다. 연탄불에 하나씩 만들어서 나오는 즉시 게눈 감추듯 하는 부침개는 어찌 그리도 맛있었는지 지금도 생각난다. 한없이 먹어대는 우리가 이쁘다며 실컷 먹으라고 하시던 엄마는 지금 요양원에 계신다. 며칠 전 요양원에서 일하시는 요양보호사님이 엄마가 휠체어에 앉아 계시는 사진을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오셨다. 너무나 연로하신 모습에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팠다. 엄마 나이 20세에 21세의 아버지와 결혼하여 71년을 해로하시고 4년 전에 아버지가 떠나셨다. 평생을 아버지를 믿고 사셨던 엄마는 아버지가 떠나시고  요양원으로 들어가셨다.  

엄마는 11살까지 학교를 가지 못했다. 여자가 학교를 가면 안 되던 일제 강점기에 몇 살 아래인 남동생이 학교에 가는 것이 너무 부러워 문 뒤에서 울고 있었다. 작은 농사로 먹고사는 집안에서 많은 식구에 여자까지 학교를 보낸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던 시절이었다. 울고 있는 모습을 본 엄마의  큰오빠가 " 너 그렇게 학교가 가고 싶으냐?" 하고 물으시는데 형편을 아는 엄마는 대답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학교를 가고 싶어도 못 가는 동생이 안쓰러워 "그렇게 가고 싶으면 너도 학교에 보내주마." 하시어 그날로 학교를 가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서 들어간 학교였지만 너무나 좋았다. 친구들과 공부하고 놀고 하는 학교생활이 좋아 열심히 공부하며 선생님의 사랑도 독차지했다. 명랑하고 똑똑한 엄마는 새로 태어난 듯이 행복한 학교생활을 했다. 그 시절에는 보통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교육대학에 들어가 교사가 될 수 있었다.

엄마는 선생님이 되는 꿈을 꾸고 있는데 갑자기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교사가 되겠다던 꿈은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교사는 되지 못했지만 동네에서 신교육을 받은 엄마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로 좋았 다. 엄마는 한문과 일본어에 능통하여 어디를 가도 환영을 받았다. 서울에 있는 회사로 취직이 되어 몇 달 을 다니고 있는데 사회가 어지러우니 고향으로 내려오라는 오빠의 연락을 받고 집으로 갔다. 엄마의 큰오빠는 서울에서 내려와 조부모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친한 후배를 엄마에게 신랑감으로 소개했다. 기회가 되면 선생님이 될 꿈을 꾸고 있었지만 결혼을 하라는 오빠의 말을 거역할 수 없어 아버지와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결혼하여 두 살 터울로 남매를 낳아 행복한 생활을 할 즈음 장티푸스라는 전염병이 돌았다.

열과 설사와 복통으로 고통스러운 병이 동네를 돌고 전염이 되어 식구가 다 걸렸고 결국에는 아이들도 결려서 남매를 잃게 되었다. 어린 자식 둘을 전염병으로 어처구니없이 잃은 엄마의 슬픔은 평생을 갔다. 그 뒤 전쟁이 터지고 오빠와 나 그리고 동생 넷을 낳으셨어도 죽은 남매를 잊지 못하셨던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지난 이야기 하기를 좋아하셨던 엄마의 이야기 끝은 전염병으로 죽은 자식들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 을 보며 사람들은 그렇게 잊지 못하는 슬픔을 가슴 한편에 두고 산다는 것을 알았다. 누구나 행복하면 행복 한대로 불행하면 불행 한대로 마음속에 품고 평생을 살아가는 사연이 있다. 비가 오니 여러 가지 잊고 살았던 기억들이 하나 둘 고개를 든다. 오랜 세월 아버지와 살아가면서 모진 고생을 하셨지만 곱게 늙으신 엄마가 생각난다.

 지금 전염병 때문에 자식들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요양원에서 외롭게 계실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멍해진다. 멀리 산다는 핑계로 자주 가서 뵙지 못했는데 하늘길이 막혀버린 오늘날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며 마음속이 까맣게 타들어 간다. 전염병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는 현실이다. 옷을 곱게 차려 입고 스카프를 어깨에 매시고 휠체어에 앉아 계신 엄마의 모습에 가슴이 뛰었다. 아직도 여전히  고운 엄마를 당장에 가서 꼭 껴안아드리고 싶지만 멀리 살아 가 뵐 수 없음이 너무나 안타깝다. 어서 빨리 전염병이 없어져서 하늘길이 활짝 열렸으면 소원이 없겠다. 지난번에 가서 뵐 때도 가슴을 조리며 갔는데 내가 갈 때까지 건강하게 계시기를 바랄 뿐 지금의 나로서 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아침 내내 오는 비는 아마도 오늘 하루 종일 내릴 것 같다. 비가 오니 생각이 많아져서 머리가 복잡하다. 서쪽 어딘가에는 눈이 25센티나 내렸다는 뉴스가 나온다. 천지가 하얀 눈으로 쌓인 그곳을 보며  이곳엔 비가 와서 천만다행이다. 부침개를 먹고 싶은 생각에 여러 가지 추억을 들추다 보니 저녁때가 다 되어 간 다. 밖에는 온통 초록으로 봄의 옷을 입었다. 비를 맞아 새파랗게 자란 싱싱한 부추를 뜯어  냉장고에 있는 호박을 썰어 넣고 엄마표 부침개이나 해 먹어야겠다.아이들과 함께 살면 이런 날 칼국수를 해 먹자고 할 텐 데 오늘은 간단하게 부침개로 저녁을 때워야겠다. 무심한 봄비는 하염없이 내리는데 나는 끝없는 상념으로 방황한다. 며칠 있으면 어머니날이다. 한국에 있는 동생들에게 부탁해서 내 몫으로 예쁜 꽃 한 다발 엄마 가슴에 안겨드리고 싶다고 전해야겠다. 봄비따라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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