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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May 04. 2020

사람 사는 것... 그냥 그렇게 사는 거지요



마가목 나무(사진:이종숙)


일출시간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이렇게 7월까지 계속되어 깜깜한 밤이 거의 없을 정도로 밤이 짧다. 새벽 5시 반부터 6시 사이에 해가 떠서 밤 9시나 9시 반에 해가 지고 밤 11시 반까지 훤한 5월부터 7월까지는 이곳의 낮시간이다. 밤을 기다려도 밤이 오지 않다가 새벽이 되면 어느새 해가 뜨고 하루가 시작된다. 처음 이민 왔을 때 밤늦게까지 환한 밖보면서 고국 생각을 하며 깜깜해지기를 기다려도 밤이 되지 않아 참으로 신기했던 생각이 난다. 밖이 훤하니 잠이 안 오고 뒤치락거리다 보면 일어나야 하는 아침시간이 된다. 여름에는 해가 16시간 정도 떠 있는 백야 현상이 된다. 아침 7시 반인데 해가 중천에 다. 동쪽으로 해가 비취는 부엌에서 아침마다 찬란한 해님을 맞는다. 눈이 부신다. 해가 일찍 뜨는 요즘은 아침 없이 점심으로 가는 것처럼 낮이 길어서  일찍 일어나 특별히 할 일은 없지만 누워있는 것이 미안하다.

아침을 먹고 한가한 밖을 내다본다. 까치 한 마리가 등 굽은 소나무 가지에 앉아 있다. 아무런 소리도 움직임도 없는 아침나절 저 까치는 무슨 생각을 하며 저렇게 앉아 있을까? 가지에서 내려와 앞뜰을 걸어 다닌다. 무언가 먹을 것을 찾았는지 입에 물고 소나무 아래 그늘로 가서 부리로 뜯어먹어 본다. 맛이 있는지 조금씩 먹는다. 먹는 것이 뜰에 없을 텐데 혹시 비닐조각을 먹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플라스틱 장난감이나 비닐봉지를 먹고 죽는 생태계의 모습이 생각난다. 깜짝 놀라 나가보니 먹지 않고 장난만 한 듯이  자세히 보니 물에 젖은 휴지조각이었다. 뜰을 깨끗이 청소를 해 놓아도 바람 따라 휴지조각이 우리 뜰에 놀러 온다. 한가로운 틈을 타서 까치들도 나무 아래서 쉬기도 하고 낮잠을 즐기기도 한다.






여름으로 가고 있는 한국과는 달리 이곳은 아직 초봄이다. 조금씩 나무 끝에 움이 트고 있을 뿐 멀리서 보면 죽은 나무처럼 보이고 꽃도 이제야 땅을 헤집고 나온다. 그나마 튤립은 맨 처음 얼은 땅을 뚫고 세상 구경을 하러 나왔을 때 갑자기 눈이 내려 끝이 얼어 말라붙은 상태로 자란다. 지금은 어른 손으로 한 뼘 정도 자라 꽃 몽오리가 생겼다. 이제 오늘내일  예쁜 꽃이 필 것 같다. 한송이의 꽃이 피기까지 숱한 시련을 겪어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여전히 봄이 되면 살아남아 우리에게 예쁜 모습을 보여주어 너무나 감사하다. 아무것도 없던 땅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할 일을 하고야 마는 그 강인함이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작은 고통에도 힘들어 쩔쩔매는 사람들보다 더 큰 생명력에 존경심이 생긴다. 죽은 듯이 있어도 어느 날 갑자기 예쁜 모습을 보여주니 해마다 때가 되면 언제꽃이 필까 하며 기다려진다.

집 앞의 화단에 있는 해당화도 목련도 죽은 듯이 서 있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살아 있는 모습이 아니다. 땅에서 나오는 꽃들은 그나마 넌지시 살아있다고 파릇파릇 솟아나는데 죽은 나무처럼 가만히 있다. 겨울이 너무 춥고 길어서 죽었나 하며 옆에 서있는 개나리 나무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완연한 죽은 모습이라 생각하며 뿌리 쪽을 보니 가느다란 가지가 손톱만 한 파란 잎을 매달고 바람에 흔들리며 살았다고 전해 준다. 봄이 늦어도 한참 늦은 이곳은 이렇게 나무들이 늑장을 부린다. 그 옆에 있는 라일락 나무는 그래도 몇 개의 가지에서 싹이 트고 있어 살아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부지런히 잎을 달고 진보라색 꽃이 피면 온 동네의 라일락이 들썩거리며 서둘러서 핀다. 라일락 꽃은 향기가 진해서 동네길을 산책을 하면서도 맡을 수 있다.






라일락 나무 옆에 있는 사과나무도 이제 겨우 하나 둘 싹을 피우지만 어느 날 꽃을 예쁘게 달고 저 좀 봐달라 고 서있을 것이다. 그 앞에 남쪽을 향한 땅은 장미꽃 화단인데 싹이 하나 둘 보인다. 아직은 꽃샘바람의 몸살을 앓느라 들어 하지만 곧 일어나 잎을 피고 꽃을 피리라 믿는다. 어느새 옆에 있는 앵두나무는 꽃봉오리를 맺고 앙증맞은 꽃 몇 송이를 피고 있다. 이렇게 정원에 있는 나무와 꽃을 바라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예쁜 나무 하고만 이야기하면 나머지들이 질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뜰안에 있는 나무들과 꽃들과 하나하나 이야기한다. 그것들이 꼭 자식들 같은 생각에 자세히 살펴보며 어디가 아픈가, 벌레는 생기지 않았나, 얼마나 자랐나, 죽은 가지는 없나 하며 챙기다 보면 시간이 간다. 함께 산 세월이 벌써 31년이 되었으니 식구나 다름없다.

잔디는 이제 파랗게 자란다. 며칠 전 까지만 해도 누런색이었는데 긁어 주었더니 파랗게 잘 자라고 있다. 잔디도 사람 손길을 느끼는지 하루가 다르게 예쁘게 자라는데 잔디밭 가장자리는 어느새 들레가 벌써 많이 나와 자란다. 약을 주던지 칼로 뽑아내던지 해야 하는데 깨끗한 곳에 자란 민들레니까  조금 더 자라면 뜯어서 나물을 해 먹어 볼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달래는 조금씩 자라 어제저녁에는 먹고 싶던 달래 된장찌개를 해먹기도 했다. 봄이 오니 세상이 달라지듯 식탁도 달라진다. 그나마 해마다 나오는 부추도 잘 자라주어 며칠 전에 오이 몇 개로 오이소박이를 담았는데 맛있게  담아져서 잘 먹고 있다. 이제는 기다리던 봄이 왔으니 겨울이 올 때까지 아무런 걱정이 없다. 하기야 추운 겨울도 그 나름대로 잘 넘기지만 추운 것을 싫어하는 나는 사철이 봄이나 여름인 곳이 좋다.



빅토리아에 사는 딸이 보내온 꽃 사진이 나를 또 설레게 한다. 그곳에 가서 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재작년에 결혼 40주년 기념으로 5박 6일 동안 밴쿠버 섬을 돌며 여행을 했는데 꽃이 만발하여 꽃 세상을 구경을 하고 온 후에 한동안 그곳의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어른거려 정말로 이사를 가고 싶었지만 다행히 이곳도 신록이 우거지고 꽃이 피는 계절이어서 그 유혹을 잘 견딜 수 있었다. 이제 곧 전염병으로 잠겼던 문이 열리고 나면 남편과 함께 딸이 사는 곳에 한번 가보기로 했다. 한 번씩 다녀오면 향수병도 잠재울 수 있고 긴 겨울을 견딜 수 있는 힘을 받아온다. 좋아하는 곳에 왔다 갔다 하면서 그냥 그렇게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사람 사는 거... 그냥 그렇게 사는 거지요
 






튤립이 만개한 빅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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