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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May 06. 2020

어차피... 인생은 여행이지요



튤립 페스티벌 (사진:이종숙)


지붕 위에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 어제 하루 종일 비가 내려 온도가 급격히 내려가 이른 아침 온도는 영상 5도다. 밤에 서리까지 내린 것을 보면 아마도 어젯밤에는 무척 추웠나 보다.   하늘은 파랗고 날씨는 청명하다. 완벽한 5월 모습이다. 비 온 뒤의 자연은 그야말로 젊은 청춘의 모습이다. 잔디 위에 이슬이 햇빛을 받으며 별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아름답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마치 내가 어느 멋진 곳에 여행 오지 않았나 생각할 정도로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나무들이 파랗게 이파리를 피어내고 앵두나무가 꽃망울을 터트리는 뒤뜰에 지나간 추억을 더듬는다. 재작년 오늘 남편과 나는 캐나다 밴쿠버 아일랜드에 사는 딸네 집에 다. 결혼 40주년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여행인데 다른 곳으로 가는 것보다 그동안 몇 번 가보았던 딸이 사는 빅토리아가 좋을 것 같아 5박 6일 동안 곳에 게 되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라서 그런지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아서 자연은 그야말로 춤을 춘다. 나무들은 푸르름을 만끽하고 꽃들도 최고의 모습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그 아름다움이란 어떤 말로 형언할 수 없으니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다. 가는 곳마다 나무와 꽃들이 환영하고 꽃냄새와 숲 냄새에 취하여 한없이 걷고 그 안에서 숨 쉬고 싶을 정도로 그곳에 푹 빠져든다. 남한 땅만큼의 크기에 35만 명의 사람들이 거주한다니 어디를 가도 평화롭다. 그곳에서 살지 않는 우리로써는 감히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지만 사람들은 느긋하며 친절하고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걱정 근심이 없어 보인다. 마주치는 사람들과 미소를 나누며 24시간 왔다가는 오늘이라는 시간을 맘껏 즐기고 사랑하며 사는 듯하다. 





겨울이 있어도 눈이 없으니 사시사철 거의 따뜻해서 2월부터 봄이 시작되어 꽃이 피기 시작하여 가을이 시작되는 11월까지 계속되고, 겨울철에도 얼지 않는 바닷가에는 낚시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으며 사계절 내내 관광객들의 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나무들은 하늘을 찌를 듯이 맘껏 자라고 이름도 알 수 없는 수만 가지의 크고 작은 꽃들이 저마다의 모습을 뽐내고 자랑하며 일 년 내내 피고 진다. 동네 한 복판에 공원이며 산이 있고 그 근처에는 바다가 있으니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아무 때나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이 사람을 한없이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내가 사는 곳은 겨울이 길어  5월인데도 겨울의 모습이 남아있다. 나무에는 이제 겨우 아기 손톱 크기의 싹이 트고 제일 먼저 꽃이 피는 튤립은 수줍은 듯  봉우리를 열지 않는다. 겨울 동안 내린 눈을 쌓아놓았던 곳에는 아직도 얼음의 잔재가 남아 뒹굴어 다니기도 한다. 


겨울이 가기를 기다리고 봄이 오기를 기다리며 언제 왔다 가는지 모르게 봄은 살며시 우리 곁을 떠나가는 곳에서 살아가는 나에게 그런 자연의 풍요로움은 엄청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곳에 간 다음날 튤립축제가 열린다는 '애 보스 포드'에 훼리를 타고 다녀왔다. 봄이면 우리 집 앞뜰에서도 해마다 보게 되는 튤립이라서 아무런 설렘도 기대도 없이 찾아갔는데 막상 그곳에 가서 보니 그 아름다움은 상상외였다. 넓고 커다란 들판에 각양각색의 튤립을 색깔마다 골마다 심어놓고 여러 가지 혼합색으로 즐비하게 심어 놓은 모습은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였다. 원색의 튤립으로 수놓은 들판과 그것을 구경하러 몰려오는 인파들로 인산인해를 이룸이 정말 장관이었다. 그곳을 떠나오며 내가 사는 곳을 생각해보니 그야말로 사막보다 더한 삭막한 곳에서 우리가 살고 있음이 실감이 난다. 

빅토리아의 아름다운 모습(사진:이종숙)





시도 때도 없이 눈이 내리는 5월 말까지는 모종을 밭에 심을 수가 없으니 밭에서 자라는 생야채는 6월 말이나 되어야 구경을 하게 된다. 눈과 바람이 떠나지 않는 봄은 그렇게 지나고 6월부터 시작되는 여름은 8월까지 계속되지만 9월부터는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며 가을이 시작된다. 로키 산 가까이에는 8월 중순부터 눈도 내리며 서서히 겨울을 맞는 곳에 38년을 살다가 렇게 아름다운 곳에 가니 그곳에 아주 눌러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도 그렇게 아름다운 산속에 몸이 아픈 환자들이나 심신을 쉬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하여 힐링캠프라는 곳을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생활하며 건강을 되찾아가는 것을 텔레비전을 통하여 본 적이 있다. 하늘과 바다가 붙어있고 산에는 나무들과 꽃들이 서로 어깨를 기대며 손잡고 어울리는 그곳은 지상천국이다.


온갖 짐승들과 새들도 자유로이 살아가며 숨 쉬는 그 깊은 숲 속에 있으니 나도 힐링이 되는 듯이 참으로 평화로운 그곳에서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거기 있는 며칠 동안 만이라도 여유롭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즐겁기만 하였다. 4년째 공무원 생활을 하며 그곳에 살고 있는 딸은 우리를 위해 동분서주 바쁘게 움직이며 하나라도 더 보여주기 위해 애쓴  덕분에 남편과 나는 5박 6일 동안 환상의 여행을 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가한 아침나절에 새파랗게 자란 잔디를 밟으며 지나간 날들로 돌아가서 한바탕 빅토리아를 다시 한번 여행하였다. 그래서 인간은 추억을 먹고 산다 하나보다. 지난 3월에 빅토리아 비행기표를 예약하려 할 때 코로나 19로 국내외가 어수선하여 안 가기로 하였는데 올해는 차를 타고 천천히 구경하며 딸네 집에 다니러 가면 좋겠다.


튤립 페스티벌 (사진:이종숙)


꾸물대던 봄은 이렇게 왔다 가고 여름이 온다. 덮지도 춥지도 않은 이곳에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휴가차 다녀가지만 올해는 다를 것이다. 해외여행이 힘들어지니 국내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얼마 멀리 가지 않아도 좋은 곳이 많은데 굳이 멀리  갈 필요가 없다. 부엌에서 쳐다본 이웃집 지붕에 온 서리를 쳐다보며 생각은 몇 년 전으로 돌아갔다. 사람 사는 것이 여행이고 매일매일이 소풍일진대 뒤뜰로 앞뜰로 왔다 갔다 하면서도 매 순간이 새롭다. 이곳에 있어도, 멀리 여행을 가도 결국 우리는 행복을 찾으며 사는 것이고 마음의 평화를 가질 수 있으면 된다. 따지고 보면 이곳에 산지도 4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못 가본데 천지다. 앞으로 가까운 곳에 안 가본 곳을 찾아보면서 사는 맛도 괜찮을 것 같다.



어차피... 인생은 여행이다.


공작새의 아름다운 자태(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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