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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Jul 14. 2024

녹음 따라... 익어가는 여름


더위 때문에 시원한 곳을 찾기 바빴는데 오늘은 가을이 왔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썰렁하다. 참 간사하기도 하다. 며칠 동안 이런저런 일로 바빠 산책도, 운동도 못했는데 덥지 않으니 가까운 곳으로 산책을 나가본다. 우리가 걷는 산책길은 숲 속의 좁은 오솔길인데 풀이 너무 자라서 길이 좁아 큰길로 간다. 하늘로 뻗은 나무들이 보란 듯이 서있는 숲을 걸으며 파란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에서 파란 물감이 떨어질 듯하여 눈이 시원하다.


덥다고 생각해서 짧은 옷을 입었더니 숲 속은 생각 외로 선선해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본다. 어느새 풀들이 씨를 맺고 이름 모를 열매들도 빨갛게 익어간다. 식물들이 제철을 만나 활개를 치며 살아가는 숲은 생명이 넘치는 곳이다. 며칠 뜨거워서인지 다행히 모기는 없다. 지난번에는 모기가 새까맣게 달려들어 도망치듯 걸었는데 오늘은 모기가 늦잠을 자나보다.


아무것도 없던 숲이 풀과 나무들로 꽉 차서 숲 속은 아예 보이지 않고 계곡물은 소리 없이 잔잔히 흐른다. 햇살이 비추는 계곡에 주위의 나무들이 계곡물에 잠겨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산책길 중간에 있는 커다란 공터에 무슨 행사가 있을 예정인지 몇 개의 정자가 놓여있다. 노랗게 피어있던 민들레는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토끼풀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생명력이 강하다는 토끼풀이 오손도손 옹기종기 모여 꽃을 피우고 몇몇 사람이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한다. 애인끼리 친구끼리 부모 자식과  형제자매가 함께 걸으며 오손도손 이야기하는 모습이 정겹다. 까치 한 마리가 숲 속으로 빠르게 날아가며 누군가를 부르더니 나무 꼭대기 가지에 앉아서 내려다본다. 숲을 걸으면 숲 속의 대화가 들린다. 사랑을 속삭이는 소리, 서로를 부르는 소리를 비롯하여 이런저런 소리를 들으며 걷는다. 사람들이 언어가 있듯이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언어가 있어 소리를 내어 이성을 유혹하고 사랑을 노래하며  부르면 다가오고 몰려간다.


녹음이 짙어가는 숲에는 젊음이 넘쳐흐른다. 넘어진 나무옆으로 풀꽃과  버섯이 살며시 피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민들레가 피어 노란 꽃으로 단장했는데 지금은 하얗고 붉은 토끼풀이 뒤를 잇는다. 머지않아 산딸기가 잎사귀뒤에서 빨간 얼굴을 내보이며 인사를 할 것이다. 서두르지 않고 재촉하지 않는 자연은 먼저 피었다고 자랑하지 않고 많이 피었다고 교만하지 않는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으며 시들어도 미련이나 후회도 없다. 한 해 동안 최선을 다했기에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는다.


계곡 안에 반질반질한 작은 바둑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흐르는 물과 수다를 떤다. 오리도 오며 가며 들러서 물을 마시고 해엄을 치며 한몫을 한다. 세상만사 흐르는 물처럼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쉽지 않다. 인간은  눈을 감는 순간까지 걱정근심을 달고 살아가는데 숲에 사는 생물들은 아무런 걱정 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길을 따라 가는데 난데없이 어디선가 날아온 까마귀 한 마리가 소나무 가지에 앉아 깍깍댄다. 까마귀를 보면 괜히 기분이 나쁘지만 서로 건드리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생겨나지 않는다.


봄이 언제 오나 기다리다가 지칠 즈음에 꽃샘바람과 함께 오는 봄이다. 봄이 오면 특별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은 봄도 겨울도 아닌 어중간한 계절에서 여름으로 건너뛴다. 여름이 그리 길지 않아 아쉬운데  바람이 불어오니 벌써 가을 같지만 이제 7월 보름이니 가을이 오려면 두어 달은 더 있어야 하니 여름을 즐기면 된다. 어느새 여기저기 피어나던 해당화가 지기 시작하고  땅바닥에서 자라는 풀이 하얀 꽃을 피운다. 정한 순서를 따라 피고 지는 식물들이 기특하다.


저 멀리 어디선가 까치들이 시끄럽게 짖어 댄다. 무슨 일이 있는지 보이지 않는데 아마도 먹을 것이 생겨서 그러는 것 같다. 그들도 위계질서가 있어 순서와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그중에 누구라도 참을성 없이 함부로 먹을 것에 대들면 혼쭐이 난다. 동물의 세계에도  우리가 모르는 법규가 있다. 바람이 불어 추운 듯하더니 한참을 걸어서 인지 이제 덥다. 서서히 발길을 돌려 온 길을 다시 돌아간다.


올 때 못 본 것들이 새삼스레 눈에 띈다. 휘어진 나무, 넘어진 나무, 크고 작은 나무들이 어깨를 맞대고 숲을 지키는 모습이 참으로 정겹다. 계곡을  지나 층계를 오르아이들 놀이터가 보인다. 몇몇 아이들이 미끄럼을 타고 네를 타며 큰소리로 웃고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세상은 아직 조용하다. 변함없이 우리를 반겨주는 새소리와  물소리를 뒤로 하고 집을 향한다. 언제나 편하게 우리를 쉬게 하는 집으로 가는 길에 행복을 만난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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