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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Jul 21. 2024

앵두를 따 먹으며... 추억을 만난다



이상기온이다. 불쾌지수가 하늘을 찌른다. 더위를 피해 지하실에 있다. 선풍기를 켜놓고 있으면 그런대로 견딜만하다. 해마다 한 차례씩 오는 더위가 있지만 가을이 오면 잊히고, 추운 겨울 혹한의 추위에는 오히려 폭염이 그리워진다. 사람은 참 간사하다. 조금 더우면 차라리 추운 게 낫다고 겨울이 빨리 오길 기다린다. 어차피 기다리지 않아도 겨울은 오는데 말이다. 조금 덥다고 더위를 싫어하지만 뜨거운 여름 덕분에 과일이 익어가고 모든 것이 자란다.


더워도 동네 한 바퀴 걸어본다. 매일 보는 동네인데도 새삼스레 싱그럽다. 어제 본 나무이고 어제의 꽃인데 다르다. 활짝 피었던 꽃은 시들어 가고 봉우리는 피기 시작한다. 시들은 꽃은 고개를 숙이고 말라간다. 푸르른 사과는 나날이 커지고 앵두는 새빨갛게 익었다. 꽃이 만발했던 기억조차 사라졌는데 빨간 앵두가 초록색 이파리 사이사이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참 예쁘다. 언제 저렇게 자랐는지 나도 모르게 앵두나무로 다가가 앵두를 따서 입으로 가져가 먹어본다. 아… 맛있다.


달콤한 앵두에서 단물이 나와 입안을 가득 채운다. 작은 앵두에서 엄청난 과즙이 나온다. 급하게 열매를 따서 후후 불고 입으로 가져가 먹으며 앵두 씨를 하나 둘 뱉어낸다. 신들린 사람처럼 바쁘게 따서 입에 넣고 먹는다. 집에 과일이 없는 것도 아닌데 과일에 환장한 사람처럼 입에 집어넣는 자신이 우스워서 혼자 웃는다. 오래전 친정엄마와 동네를 걷다가 두나무를 발견하 두를 몇 개 따서 집으로 왔다. 앵두를 맛있게 먹으며 땅에 뱉은 씨가 3년 뒤에 싹을 피웠다. 앵두무가 자라서 해마다 앵두꽃이 피어나고 앵두가 열리면 그때의 추억이 생각나서 엄마를 그리워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정신없이 먹었더니 배가 부르다. 과일을 닦지도 않고 애들처럼 나무에서 장난 삼아 따 먹으며 옛날 생각을 한다. 고 2 때 친한 친구 하나가 서강대학교 근처에 살았는데 서강 대학교 뒷산에 가서 빨간 산딸기를 따먹던 기억이 새삼 난다. 조그만 산딸기가 어찌 그리 맛있고 달던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아 딸기철이 다 끝나가도록 매일매일 가서 딸기를 따먹으며 수다를 떨었는데 이제는 아득한 추억이 되었다. 세월은 그야말로 물처럼 흘러 지금은 그 친구가 무엇을 하며 어디에 사는지 모르지만 그때의 딸기맛은 잊히지 않는다.


한국에는 시골 길거리에 뽕나무가 많다. 몇 년 전에 딸과 함께 한국에 나가 시누이와 함께 시누남편 묘소에 참배를 하고 오는데 길거리에 뽕나무가 하나 서 있는 것에 보였다. 시누이와 조카딸은 뽕나무를 보자마자 달려들어 뽕 따먹기 시작하는데 딸과 나는 왠지 의심스러워서 따 먹지 못하고 쭈뼛거리고 있었다. 먼지가 많이 있을 것 같아 망설이고 있는데 시누이와 조카딸이 입술이 빨갛게 물든 상태로 뭐 하느냐고 빨리 따서 먹으라며 재촉을 하였다.


혼자 잘난 체하는 것 같아 나무 가지 끝에 매달려 있는 뽕을 하나 따서 손으로 문질러서 입에 넣는 순간 입안에서는 너무 맛있다고 빨리 더 달라고 난리가 났다. 하나 둘  따 먹다 보니 너무 맛있어서 아예 가지에 매달려 따 먹는 나를 보고 시누이와 조카딸이 배꼽을 쥐고 웃던 생각이 난다. 넷이서 빨간 이를 내놓고 웃던 생각이 나서 지금도 웃음이 난다. 참으로 오래전 이야기이지만 추억은 이래서 아름다운 것 같다.


작년에 빅토리아에 사는 딸네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다. 빅토리아는 사시사철 아름다운 곳이다. 2월에 봄이 오기 시작하면 꽃이 피고 바다가 가까워서 관광객이 일 년 내내 이어진다. 꽃이 만발하고 날씨가 좋고 여러 가지 과일나무가 많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그리고 사과나무와 자두나무가 지천이다. 가을이 되면 과일이 익어가는 향기로운 냄새로 동네잔치를 한다. 지난번 딸네 집에 갔을 때는 때마침 블랙베리가 까맣게 익어가는 철이라서 가는 곳마다 나무에 매달린 블랙베리를 오며 가며 따서 먹던 생각이 난다.


 캐나다인데 사는 곳에 따라 다른 삶을  살아간다. 내가 사는 이곳은 여름이 짧고 겨울이 길어서 과일나무는 산딸기와 앵두와 체리 그리고 사과나무가 있다. 어떤 사람은 자두나무에서 자두를 따 먹는다는 말도 들었다. 과일나무는 얼마 없지만 여름 날씨가 습하지 않고 건조해서 좋다. 아무리 더운 여름에도 끈적이지 않고 뽀송뽀송 해서 피서지로는 최고라는 말을 한다. 오히려 여름에도 아침저녁에는 선선하기까지 한 이곳의 여름 온도다. 어느덧 7월 하순이다. 아무리 더워도 8월이 되면 더위가 힘을 잃는다. 언젠가 오래전에 8월 하순에 눈이 와서 놀란적이 있기도 하다.


여름에는 홍수가 나고 산불이 나고 토네이도가 온다. 어제오늘은 산불 때문에  연기가 많이 껴서 공기가 안 좋다. 연기가 낀  아침에 뿌연 하늘에 빨간 해가 뜬다. 덥고 공기가 안 좋아도 집에만 있을 수 없어 동네를 돌며 추억을 만난 아침이다. 삶은 이렇게 바람처럼 오고 간다. 따스한 바람은 추억으로 돌아오고 힘든 기억은 망각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폭염이 계속되면 영락없이 찾아오는 토네이도가 오지 않기를 바라며 집을 향해 걷는다. 회색 지붕에 회색 담이 보이고 우리 집을 감싸 안고  앞뜰에 서있는 소나무가 어서 오라고 손을 흔든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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