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여름날 아침이다. 사람들은 아직 꿈나라 여행 중인지 아무도 살지 않는 동네처럼 조용하다. 지나가는 차도 없고 새들도 늦잠을 자는 것 같다. 새벽 5시에 눈을 떴는데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곧바로 일어났다. 할 일은 많은데 하고 싶지 않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휴대폰을 가지고 논다. 손가락과 뇌는 한통속이라 치매예방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데 휴대폰은 점점 바보로 만드는 것 같다. 참으로 많은 것을 읽고 보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 나만 그런가 해서 주위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그들도 마찬가지란다.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고 하던 말이 생각난다. 남이 만들어 놓은 창작물을 보고 들으며 멍청히 있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사람들이 살림이고 청소고 다 귀찮고 바보상자만 들여다보고 살기 시작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는 각자 휴대폰이라는 바보상자 하나씩 손에 쥐고 사는 세상이다. 수많은 정보가 손가락 하나로 세상에 쏟아져 나온다. 암기할 것도 없고 적을 필요도 없고 무엇이든지 물어보면 즉각 대답이 나온다. 정보도 물건도 넘치는 세상인데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점점 떨어진다. 노동을 하려 들지 않고 높은 보수만 원하고 물건값은 오르고 일하는 사람은 없다.
회사마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방책으로 인공지능을 도입한다. 인간을 위한 인공지능이 인간을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하여 사람들의 일거리가 없어진다. 오랜만에 코스트코에 갔는데 입구에 기계가 있어 카드로 입력해야 출입이 가능하고 출입구에서 웃으며 인사를 하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가격을 써놓고 마음에 드는 물건을 가지고 카드로 돈을 내고 가면 대화가 필요 없다. 가격 가지고 언쟁을 할 필요도 없고 하라는 대로 매뉴얼만 따라 하면 된다. 사람이 인공지능을 교육시키더니 이제는 인공지능이 사람을 가르친다.
무어라도 잘못 만지면 다시 하라고 하고 몇 번 잘못하면 얼마동안 기다리라고 한다. 참 좋은 세상이라고 말들 하는데 왠지 지구가 아닌 낯선 어떤 우주에서 사는 느낌이 든다. 적응하는 것이 인간인지라 처음에는 어색하고 신기하던 것들이 이제는 손에 익고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컴퓨터 세대가 아니라서 새로운 기계가 나오면 겁나지만 알고 보면 별것 아니다. 명령어에 따라 하면 되고 고장이 날까 봐 걱정할 필요도 없다. 손님이 못하면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하라는 대로 하면 된다. 그 점을 노려서 사기꾼들이 전화로 사기를 친다. 손가락 한번 잘못 누르면 온 재산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세상이라 전화 오는 게 두렵다.
얼마 전 아이들이 새로 나온 전화로 업그레이드를 해주었다. 전화가 오면 어떤 전화인지 걸러주는 기능을 누르면 알아서 사기당하는 것을 방지해 준다. 전화가 오고 대답을 하면 목소리를 이용해서 사기를 쳐서 모르는 전화가 오면 아무 소리도 하지 말라고 한다. 세상은 과연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발전하여 좋은 점보다도 나쁘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겁도 나고 두렵기도 하다. 그래도 옛날 부모님 세대에 비하면 살기 좋아진 것은 확실하다.
손가락 하나면 모든 게 해결되는 세상이라 몸은 편해서 좋은데 아픈 사람은 더 많아졌다. 병원이 만원이고 전문의 한번 만나려면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 알레르기 현상이 있어 전문의를 소개해달라고 했는데 9개월 만에 연락이 왔다. 마침 아이들과의 여행 계획이 있어 날짜를 뒤로 미루고 싶다고 하니까 몇 달을 더 기다려야 한다. 할 수 없이 누군가가 캔슬을 하면 연락을 해달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문의 한번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힘든 세상이다. 아프면 참고, 참다 보면 나아질 병이라면 몰라도 기다리다 죽는 사람도 많다.
지난번 지인이 배가 아파 의사한테 가서 진찰을 해보니 맹장 같다고 응급실에 가라고 해서 응급실로 갔단다. 시름시름 아픈데 급환 환자들 때문에 뒤로 밀려서 24시간을 기다리다 결국 맹장이 터지는 사고가 났다. 그때서야 의사들이 부랴부랴 수술을 해서 위험한 고비를 넘겼는데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옛말이 딱 맞는다. 어딘가 아파서 검사를 하면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오면 아무리 아파도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작년여름에 있었던 일이다. 오랫동안 몸이 안 좋아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응급실에 갔는데 응급실이 만원이다. 집으로 돌아와 누워 있는데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다시 응급실로 가서 4시간을 기다리다 검사를 받았다. 이런저런 검사를 받고 기다리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며 집에 가서 쉬라고 한다. 아파 죽겠는데 이상 없으니 다행이지만 참으로 난감해서 의사에게 폐 시티 사진을 한번 찍어보고 싶다고 했는데 웬일로 의사가 허락을 하여 찍은 결과 폐렴이었다.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면 아무 말 못 하고 집으로 가야 하는데 천만다행으로 운이 좋았다.
그냥 그대로 집으로 갔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가끔 든다. 골든 타임이라는 시간이 있어 생사가 오고 가서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나 착오로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이 잃는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간단하고 정확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모르는 사람은 답답하지만 조금씩 배우며 산다. 앞으로 어떤 세상 안에서 살아갈지 모르지만 상상외로 멋진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 힘든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모르는 것도 배우고 말 한마디면 원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이니 얼마나 좋은가.
휴대폰이 보고 듣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이니 열심히 배우고 듣고 해야 한다. 보고 들어도 잊어버리는 바보상자 같은 휴대폰이지만 순간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예쁜 바보상자이기에 더 많이 사랑하고 이용하다 보면 스마트폰이라는 이름처럼 덩달아 똑똑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