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배를 타고 떠나신 아버지가 보내신 천사

by Chong Sook Lee

크고 작은 나무들이 어우러져 살아간다.(사진:이종숙)



4년 전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간다. 그날은 나의 기억의 서랍에서 지워지지 않는 한없이 기뻤고 끝없이 슬펐던 날이다. 하루 전에 손자가 태어났고 그다음 날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다는 것이 알 수 없는 굴레 속에 이어짐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태어남과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남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생각을 해 보았다. 받아야 할 일도, 보내야 할 일도 감사해야 하지만 기쁨은 크게 받고 슬픔은 깊게 맞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켜보시는 분께 힘겨운 시간을 의지해 보았다. 얻고 잃음은 불어오는 바람이고 돌고도는 계절이고 오고 가는 세월임을 알았다.





금요일 아침에 손자가 태어난 기쁨에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았던 토요일 아침 출근 준비에 바쁜 시간에 한국에서 전화가 와 있다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전화를 걸면 출근시간이 늦어지니 일단 출근하기로 하고 가게로 갔다. 문을 열고 커피도 만들고, 배달원이 문 앞에 던져놓고 간 신문도 들여놓고 하루를 시작해 놓은 뒤, 일찍 오는 손님들을 위해 베이콘도 한판 구우면서 느긋한 마음으로 동생한테 전화를 했다. 그제야 아버지의 임종 소식을 전해 듣고 울고불고하며 한국행 비행기표를 사려고 여기저기 찾아보지만 입관식에 맞혀서 갈 표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한국에 갈 계획이 있으면 몇 달 전에 미리 싼 표를 사놓고 가곤 했는데 갑작스러운 일이라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가게 되었다. 아버지 마지막 얼굴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평소보다 3배가 더 비싼 자리가 하나 있어 무작정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더 해 드리지 못한 후회로 20여 시간을 괴로워하며 잠 한숨 자지 못하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작년 4월 고국을 방문할 때 부모님 두 분이 고령에도 불구하고 딸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공항에 마중을 나오셨는데 일 년 사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혹시나 나를 마중 나온 사람이 없나 두리번거렸지만 그 누구도 나에게 손짓하는 사람이 없었다. 장례준비로 아무도 나올 수 없음을 알지만 혼자서 장례식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 막연했다. 병원 이름은 알기에 택시로 가면 간단하지만 한국의 교통체증을 신뢰할 수 없기에 전철로 가려고 방향을 잡았다. 입국절차를 마치니 오후 5시였다. 입관식이 3시였는데 내가 간다고 하니 7시로 변경을 했으니 앞으로 2시간이 채 안 남았는데 서둘러 가야 했다. 다행히 지난번 한국에 왔을 때 전철 타는 법을 나름대로 연습을 하긴 했지만 많이 두렵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전철을 몇 번 갈아타고 가면서 옆자리에 앉아계신 아주머니에게 병원 이름을 대면서 어디에 내려야 하느냐 하니까 M역에서 내려야 한다기에 일단 M역까지 가서 내렸다. 그러나 출구가 여러 군데인데 어디로 나가야 할지 난감했다. 누군가한테 물어보아야 할 텐데 모두들 바쁜 듯 갈길을 가느라 바빠 보여서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아 쭈삣대고 있는데 한 출구 옆에 한 여자분이 마치도 나를 기다리는 듯 서 있는 것이 보여 그분께 다가가 물어보았다. 병원 이름을 대며 물어보니 자기도 그쪽으로 가는 길이니 같이 가자는 것 아닌가? 너무도 고맙고 반가워서 열심히 그분을 따라가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가는 것이라 하니 얼마나 힘드냐 하면서 가방도 끌어주고 전화 연락도 해 주며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친절을 베풀어 주셨다. 그분 덕분에 시간에 맞추어 입관예절에 참석할 수 있었다.



동네길 라일락이 활짝 피어 들꽃과 웃는다.(사진:이종숙)




살아가며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도 하고 위로를 해주며 살지만 지하철에서 만난 생면부지의 사람을 위해 시간을 내고 도와준다는 것은 이 바쁜 세상에 쉽지 않은 일이다. 갈길이 바쁘고 살기가 빡빡한 세상에 말을 걸어오는 것도 귀찮을 텐데 선뜻 나를 데리고 가던 서글서글하고 친절하신 그분은 정말 거리의 천사였다. 워낙 길눈이 어두운 나는 말과 글이 통하는 한국이지만 너무 복잡하고 다 같은 모습이라 겁이 많이 났다. 그래도 아버지께 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지하철까지 갔었다. 하지만 시간은 다가오고 방향감각은 점점 바닥을 치고 있던 그 순간에 나타난 분은 아버지가 보내신 천사임이 확실하다. 아버지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어 달려온 나의 마음을 알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분을 만나게 하신 것 같다.


바쁘게 살아가는 세상에 친절을 베풀고 안 베풀고는 형편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그분은 열일을 제치고 나를 나의 목적지까지 데려다주었는데 나를 기다리고 있던 사촌오빠의 손에 이끌려 가는 바람에 그분께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못한 채 헤어지게 됐다. 슬픔과 두려움에 힘겨워하는 나에게 그토록 편안하게 친절을 베풀어준 그분은 어디에 사는 누구일까? 한국에 갈 때마다 사람들의 불친절에 실망을 여러 번 했기에 기대도 못한 친절을 받게 되니 어안이 벙벙했다. 전철역에서 병원까지 넉넉잡아 걸어서 15분 정도의 거리를 걸어가며 피로에 지쳐있는 내게 천사같이 다가왔다. 그녀는 자영업을 하면서 방송대학을 다니는데 그날 시험을 치고 오는 길이었단다. 아름다운 서울이 너무나 좋다며 주말마다 근교에 있는 산으로 등산도 간다는 그분.. 한국에서의 삶을 참으로 행복해하던 그분을 다시 만나고 싶다.


이젠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는 6남매를 기르시며 갖은 고생도 마다하지 않으시며 우리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하며 우리를 길러주신 우리 아버지이시다. 아버지는 엄마와 72년을 동고동락하시며 엄마 앞에서 편안하게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아버지는 목욕을 하시고 밤새 잘 주무셨고, 아침에 식사도 평소와 다름없이 하셨단다. 점심때 라면이 드시고 싶다고 하셔서 엄마가 라면을 끓여 드리셨다. 점식식사 후 소파에 앉아 계시다가 주무시듯 떠나가신 우리 아버지이시다. 사람이 살아가는 복도 중요하지만 돌아가시는 복이 오복 중에 하나라는 말을 들었다. 현대병이 많은 요즘 세상에 특별한 병 없이 건강하게 살며 천수를 누리시고 가셨다. 일제 강점기와 6.25 사변을 겪으시며 힘들게 사셨지만 웃음을 잃지 않으며 늘 희망 속에 사셨던 아버지는 가시는 길도 평온했다.


부지런하시고 근면하시며 깔끔하고 정직하며 성실하시고 멋지시던 우리 아버지는 가시면서도 멀리서 당신을 만나러 오는 딸 걱정에 친절하신 분을 만나게 해 주시어 당신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게 해 주신 아버지의 영원한 안식을 빌며, 생면부지의 나한테 아름다운 친절을 베풀어 주신 그분께 진심으로 행운을 빌어본다. 다시 만날 수는 없어도 가슴속에 영원히 머물 것이며 4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모든일은 눈에 보이듯 선하게 떠오른다.


세월의 배를 타고 떠나신 아버지가 보내신 천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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