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들이 쌓여 길이 보이지 않지만 오랜만에 숲 속의 오솔길로 들어가 걸어 본다. 며칠 사이로 떨어져 누워 있는 낙엽들 때문에 오솔길이 미끄럽다. 오솔길을 오르고 내리며 흐르는 계곡물을 내려다본다. 밤에 영하로 내려가는 온도로 계곡물에 살얼음이 얼어 있다. 어느새 겨울을 준비하는 자연의 모습… 쉬지 않고 변화하는 하루하루를 받아들인다. 새들은 어디로 갔는지 숲 속이 참 조용하다. 다람쥐도 겨울 준비를 하느라 한동안 바쁘더니 보이지 않는다. 바람이 불지 않는 따스한 숲 속에서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걸어간다.
지난여름의 흔적은 볼 수 없고, 앙상한 가지가 사이좋게 숲을 차지하고 있다.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감추지 않은 순수한 자연의 모습이다. 반항하지 않고 거부하지 않으며 순종하고 받아들이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숲이 우거져 있을 때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린다. 양지쪽 계곡물에서 놀던 오리 한 쌍이 인기척에 놀라 푸드덕 날아가는 소리에 덩달아 놀란다. 괜히 잘 놀고 있던 오리를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 서로를 의지하고 서로를 감싸주며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
지난여름 심한 바람에 쓰러진 나무들이 여기저기 누워있다. 커다란 나무뿌리를 하늘에 대고 삐딱하게 누운 나무도 있고, 계곡물에 고꾸라져 빠진 나무도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계곡을 건너기 위해 걸쳐놓은 나무도 있고, 산책하다가 힘들면 잠시 쉬고 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허술한 나무집도 있다. 숲 속은 마치 마술의 땅처럼 볼 때마다 새롭다. 노랗고 빨간 단풍잎이 눈부시게 황홀하여 영화의 주인공처럼 숲 속을 헤매고 다니고, 발가벗은 나목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을 등에 업고 걸어가기도 한다.
미련 없이 다 털고 꼿꼿하게 서 있는 나무도 있고, 바짝 마른 나뭇잎을 끌어안고 서있는 미련이 많은 나무도 보인다. 계절은 말없이 서로를 보내고 자리를 차지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땅에 떨어진 나뭇잎을 보면 색깔도, 모양도 여러 가지다. 누렇게 낡고 찢어지고 구멍 난 이파리와 금방 떨어진 싱싱한 이파리가 함께 어우러져 누워있는 모습이 사람들의 모습을 닮았다. 봄에 피어나 여름을 즐기다가 가을에 떠날 차비를 하고 겨울을 맞는 자연을 보면 인생을 보는 것 같다.
어쩌다 거울을 보면 언제 세월이 갔는지 모르게 변한 모습을 본다. 태어나고 자라서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어 아이들이 성장하는 세월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자지러질 정도로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숲 속을 걸으면 참으로 평화롭다. 세상에 있는 모든 걱정과 근심은 없어지고 한없이 걷고 싶다. 속세를 벗어나 도를 닦는 도인이 되는 듯 마음도 넓어지고 감사와 사랑이 넘친다. 현대생활이 가져다주는 문명의 발달은 인간의 육체를 편안하게 하고, 숲은 마음속에 기쁨과 평화를 준다.
특별한 것을 소유하지 않아도 풍요롭고 욕심을 내려놓게 만드는 숲의 손길은 강인하면서도 부드럽다. 구불구불한 숲에는 자연을 따라 사는 숲 속만의 삶이 있다. 크고 작고, 억세고 연한 모든 것들이 서로를 의지하고 배려하며 공존한다. 자연은 서로의 잘못을 탓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는다. 낮으면 낮은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부러워하지 않고 생긴 대로 살아가는 자연이다. 작은 오솔길을 걸으면 참으로 많은 것들을 만난다. 날씨가 추워졌으니 모기는 사라진 지 오래고, 날파리나 개미도 보이지 않는다. 낙엽이 계곡물을 따라서 먼 여행을 하고 바스러진 낙엽은 웅덩이에 앉아서 바람을 피한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순응하는 자연을 보고 있으면 덩달아 내 마음도 겸손해진다. 가을은 겸손과 감사의 계절이다. 황금빛 들판을 바라보며 한해의 노고를 칭찬해 주는 아름다운 계절 가을이다. 어느새 기러기는 남쪽나라로 떠나가고 들판은 텅 비어 있다. 때가 되면 미련 없이 서식지를 옮기는 동물들이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는 것을 알려주는 계절이다. 스산한 가을바람에 뒹굴어 다니는 낙엽들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쓸쓸하다. 한해를 잘 살아왔는데도 미련이 생기고 후회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인디언 섬머 덕분에 아름다운 가을을 즐기고 있는데 언제 눈이 와도 놀랍지 않은 10월은 이렇게 조용히 간다. 계곡옆에 있는 다리를 건너서 가다 보면 커다란 백양나무 하나가 계곡옆에서 유난히 뽀얀 기둥을 자랑하며 자란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자그마하던 나무가 이제는 듬직한 어른 나무가 되어 흐르는 물을 바라본다. 계곡 안에 수많은 나뭇잎들이 떠 있다. 마치 여러 색의 종이로 모자이크를 한 것처럼 멋있어 보여 지나가다 사진을 찍어본다. 숲은 하늘과 바람과 숲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려 놓은 듯하다.
남편과 함께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걸어가다 보면 이것이 사는 맛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멈춘 듯 숲 속은 너무나 조용하다. 계절이 순환하는 모습은 욕심이 없어 좋다. 손익을 따지지 않고 주고받는 자연의 모습은 가슴을 훈훈하게 한다. 마른 가지에 붙어있던 나뭇잎이 사르르 떨어져 어깨에 앉아서 같이 가자고 한다. 마음을 내려놓고 욕심을 버리면 세상은 이처럼 아름다운 것… 등에 업고 온 햇살이 어느새 가슴에 폭 안긴다. 내게 주어진 이 하루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기억하며 오손도손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