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떼같이 달겨든 인턴과 할머니가 생각나는 날

by Chong Sook Lee



사랑을 담은 꽃한송이(사진:이종숙)



내 평생 잊지 못하는 날이다. 오늘은 39년 전 둘째를 낳던 날이다.





아침에 둘째가 세상 구경을 나오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남편은 밤새 일을 하고 집에 와서 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든 시간이었다. 첫째하고 다른 신호라서 어리둥절하며 깊은 잠에 빠진 남편을 깨웠다. 13개월짜리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갈 준비를 했지만 막연했다. 차가 없으니 택시를 타고 가려다가 그때 당시 영어학교를 다니며 영어를 배우시던 신부님이 생각났다. 아무래도 영어가 부족하니 신부님과 함께 가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날은 수요일이라서 학교에 가셨을 것 같지만 일단 전화를 했더니 다행히 전화를 받으셨다. 실례를 무릅쓰고 사정 이야기를 하며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금방 차를 가지고 우리 집으로 오셨다.

신부님이 남편과 나와 어린 첫째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수속을 받는 것부터 문제가 생겼다. 아무도 병원에서 입원 수속에 필요한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서 쩔쩔 매기만 했다. 그때만 해도 통역 앱은 상상도 못 하던 때였다. 어디를 갈 때나 무슨 일을 할 때나 포켓용 사전을 들고 다니며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일일이 사전을 찾아가며 소통하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양수가 터졌다는 말을 전하고 간신히 입원 수속을 마쳤다. 가정의가 오고 진단을 했는데 아직 아기가 내려오지 않았다며 양수가 터진 이유를 모르겠다며 초음파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해서 검사를 한 결과 아기가 거꾸로 앉아서 다리부터 나오려 하니 제왕 절개 수술을 해야 했다. 39년 전이라 의학적으로 지금 하고는 달랐다.

선진국이 라고 하지만 여러가지로 뒤떨어진 캐나다의 의료 시설이다. 막상 생각지도 않던 수술을 받기 전에 여러 가지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아기는 나오려고 하는데 이것저것 싸인을 하고 수술 준비를 하는데 뭐가 그리도 물어보는 것이 많은지 모르겠다. 첫째는 자연분만을 해서 자연스럽게 진행이 됐는데 둘째때는 완전히 달랐다. 영어도 잘못 알아든는 동양 여자를 수술을 한다고 하니 인턴들이 벌떼같이 덤벼 들었다. 수술 연습을 할 기회는 바로 이때다 하며 5명의 인턴들이 내게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하나도 귀에 안 들어와서 겁에 질린채 그냥 앉아 있었다. 어쩌라는 것인지 종이만 댓 장 가지고 와서 싸인을 하라는데 남편도, 신부님도 어떻게 할지 몰라하며 쩔쩔매며 손짓 발짓으로 간신히 수술 동의서를 싸인하고 수술을 하게 되었다.

몇 시 간 기다리다가 수술실로 들어가서 숨을 쉬라는 소리를 들으며 마취가 되어 깨어보니 둘째가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인턴들이 연습을 한 수술이라서 수술 자국이 큰 것도 문제지만 염증이 생겨서 남들 보다 며칠을 더 병원에 있으면서 치료를 했다. 그 뒤 퇴원을 하고 집에 왔는데 수술하고 얼마나 엉터리로 붙여 놓았는지 마치 지렁이가 한 마리 붙어 있는 것 같이 해 놓았다. 굵기도, 색깔도 영락없는 지렁이였다. 거기다가 비가 오거나 날씨가 궂은 날은 수술 자리가 가려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긁어도 긁어도 시원찮았지만 다시 수술을 할 수는 없었다. 마침 둘째를 낳기 전에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우연히 알 게 된 서양 할머니와 연락을 주고받고 만나며 친하게 되었다.

영어도 잘 못하고,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생하며 사는 우리의 사정을 잘 알고 여러가지로 도와줬다. 평생 동안 간호원을 하시던 그분은 영어나, 이곳의 사정을 잘 모르는 우리에게 여러가지를 알려주고, 가르쳐 주며 엄마같이 우리를 보살펴 주었다. 정년퇴직을 하고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 한국에도 다녀왔다며 한국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아 우리를 무척 좋아하셨다. 명절 때마다 이곳의 풍습을 알려 주시고 집으로 초대하며 우리 애들을 손주처럼 사랑해 주셨다. 해마다 부활절에 부활계란과 초콜릿을 사다 주시고 크리스마스 때 우리 식구 선물을 일일이 포장해서 전해 주셨다. 지금도 그분과의 아름다운 추억은 영원히 잊지 못한다.


친구가 준 씨앗이 꽃을 피웠다.(사진:이종숙)





그렇게 그분과 왕래를 하며 막내를 갖게 되었다. 입덧을 유난히 심하게 하던 나를 마치 친정엄마처럼 보살피며, 하루는 남편보고 아이들을 보라고 하며 자기네 집에 와서 하루 쉬고 가라며 초대를 해주셨다. 입덧 때문에 먹지도 못하고 연녕생인 첫째와 둘째를 돌보느라 힘들어하는 것이 안되여 보였던 모양이다. 밤새 일해야 하는 남편에게 두 아이를 맡긴다는 것이 말도 안 되지만 못이기는 척하고 하룻밤 쉬러 갔다. 넓은 집에서 혼자 사시는 분이라 집안도 깨끗하게 정리하고 예쁘게 해 놓고 사시는 분이 말도 안 통하는 나를 도와주시는데 너무 고마웠다. 맛있는 음식과 간식을 해주며 지난 세월 살아온 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함께 했다. 그날 나는 할머니에게 둘째를 낳았을 때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인턴들이 와서 내 배를 가지고 연습을 한 것 같다며 배에 있는 상처를 보여 드렸다. 할머니는 깜짝 놀라며 이번에 아기를 낳기 전에 전문의와 상담해 주겠다고 했다. 어느새 산달이 다가오고 할머니와 나는 산부인과 전문의와 약속을 하고 만났다. 의사는 내 배를 보며 이번에는 인턴을 안 시키고 직접 본인이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할머니는 똑똑하고 깔끔하며 인정이 많아 좋은일도 많이 하며 살아온 분이다. 무슨 일이든지 우리는 그분께 조언을 청하며 가족같이 의지하며 살았다. 둘째 때 수술했기 때문에 막내 때도 수술을 해야 하기에 수술 전날 입원을 했다. 남편은 집에서 첫째와 둘째를 보고 할머니가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입원수속을 끝내 주었다. 입원한 병원에서 창문을 내다보며 만감이 오갔던 생각이 난다.

막내를 낳고 수술은 잘 되었다. 더 이상 흉하지도 않고, 가렵지도 않게 완벽한 수술이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동양 여자라고 나를 연습용으로 쓰지는 안았겠지만 그날의 상황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두려움으로 어찌 할바를 모르고 떨며 둘째를 낳았던 39년 전의 일이 다시금 생각난다. 그렇게 엄마를 놀라게 하며 태어 난 둘째는 결혼한 지 11년에 남매의 아빠가 되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간다. 지나간 날들이 새삼스럽게 생각난다. 어떻게 그 세월을 견디며 살았는지 정말 기적이다. 보이지 않는 생명의 손길로 인간은 이렇게 이어지며 영원히 살아간다. 이 먼 곳까지 와서 좋은 분을 만나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연의 연결고리 속에 삶은 이어진다.

아는 사람도, 친한 사람도 없던 그날 남편과 나는 다운타운에서 성당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둘째의 예정일이 3주 정도 남았던 나는 13개월짜리 첫째를 데리고 뒤편에 서 있었고 남편은 버스를 기다리던 중 할머니는 웃으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저 지나가는 미소로 몇 마디 이야기하고 가려는 참에 할머니는 우리에게 자신의 전화번호를 건네주며 시간이 되면 연락을 하라고 하며 헤어졌다. 3일 뒤에 나는 둘째를 낳았고 한 달 뒤에 할머니께 전화를 하여 그동안 의 소식을 전했다. 할머니와 반갑게 이야기하고 며칠 뒤에 할머니를 방문하며 우리는 하느님이 캐나다에서 맺어주신 모녀로 탄생하게 되었다. 그렇게 25년의 인연을 이어가며 사랑을 주고받았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그분이 진짜 할머니인 줄 알았을 정도로 아이들을 사랑해 주셨다. 한국에서 시어머니가 오셨을때도, 우리 부모님이 이곳에 사셨을때도 그분의 친절은 변함없었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시어머니는 한국말로, 그분은 영어로 대화를 하시며 하루종일 여기저기 다니시며 웃고 재미있는 시간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우리 부모님은 이곳에 1년 반동안 살면서 영어학교를 다니셨기에 단어를 대며 대화가 되어 자주 만났다. 자주 만나고 서로의 집을 방문하며 친하게 되어 그분께 감사함을 전할수 있었다. 사람의 인연이란 참으로 묘하다. 그렇게 딸이 되어, 엄마가 되어 함께 하며 지나는 동안 힘들 때 위로해주고, 기쁨을 더해 주며, 슬픔을 나누며 살았다. 어쩌면 둘째가 이어준 특별한 인연이라는 생각을 지금도 한다. 우리가 그 날 성당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다운타운에 가지 않았으면 만나지 못한 인연이었다.


자연분만으로 모든 것들이 쉽게 넘어갔으면 못 만났을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만나야 할 운명이었던것 같다. 우연히 만나 지금까지의 캐나다 생활 40년중 25년을 가까이에서 우리를 지켜봐 주시고 이끌어주신 할머니는 지금 하늘나라에 계시면서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실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난 고마운 사람들은 많지만 할머니는 그중에 특별하신 분이고 옆에 계시지 않아도 내 가슴에 영원히 살아계신다. 어느새 세월이 39년이 지났지만 해마다 둘째 생일이 되면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누구나 살면서 잊히지 않는 것들이 있지만 지금도 수술이야기를 하면 벌떼같이 달겨들던 인턴들의 모습이 먼저 생각난다.



파란 하늘을 보니 할머니가 그립다.(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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