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저녁시간이다. 저녁밥을 많이 먹었으니 소화도 시킬 겸 서서히동네 한 바퀴를 걸어본다. 사람 하나 만날 수 없는 동네를 걸으며 이집저집 구경을 한다. 몇 달 전 커다란 쓰레기통 하나 가득 필요 없는 물건들을 버리던 집은 짐을 다 정리했는지 복덕방에 집을 내놓았다. 싸인을 밖에 붙여놓고 열심히 잔디를 깎고 물을 준다. 살고 있을 때는 지저분하던 집을 복덕방에 내놓고는 깔끔해졌다. 기왕 팔려고 하는 집이니 깨끗하면 아무래도 빨리 팔리고 한 푼이라도 더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신경을 쓴다. 지난 주말에는 오픈 하우스를 하여 사람들이 몇몇 다녀 갔지만 코로나 때문에 빠른 성사는 조금 어려울 듯하다. 집을 사려고 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파는 사람은 제 값을 못 받기 때문에 주저하는 상황이다. 그 집 바로 길 건너편 집은 한동안 보수공사를 한 집주인 남자가 손재주가 좋아 평소에 뚝딱거리기를 좋아한다.
현관 앞에 마루도 만들고 테이블과 의자도 갖다 놓았다. 집에 페인트칠도 하고, 지난번에는 지붕도 새로 하며 이런저런 물건으로 예쁘게 장식을 하여 새집이 되었다. 46년 이 지난 집이지만 아주 말끔하게 고쳐 놓아 보기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 집 역시 복덕방 싸인이 걸려 있다. 기왕이면 마땅한 사람이 이사와 잘 살았으면 좋겠다. 한동네에서 오래 살다 보니 서로 특별히 왕래는 없지만 누가 어느 집에 얼마 동안 살았는지 대충 안다. 그 집 앞집은 아이들이 어릴 적에 같은 학교를 다녀 가까이 지내는 집이다. 앞뜰에 커다란 나무가 세 그루 있었는데 가을에 나뭇잎 청소하기가 너무 힘들다며 작년에 잘라버렸다. 덕분에 우리는 벽난로 땔감을 얻게 되었다. 집이 훤하게 트여 깨끗하긴 한데 앞뜰이 토끼풀 밭이 되어 있다. 아이들이 다 나가고 두 노인만 사는데 여자가 많이 아파 잘 움직이지 못하고 힘들어하여 신경을 못쓰고 사는 것 같다. 나이가 들고 어딘가 아프면 저렇게 되는구나 생각을 하니 남의 일 같지 않아 왠지 서글퍼진다.
(사진:이종숙)
그 집을 지나 걷다 보니 정원에 예쁜 꽃들이 피어있고, 옛날 동화책에 나올법한 나무가 멋있게 서있는 집이 있다. 누가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아주 깔끔하게 해 놓고 산다. 돌아서 가보니 어느 할머니가 열심히 밭을 정리하고 있다. 지나가는 우리에게 손인사를 하며 해맑게 웃는다. 아마도 할머니 혼자 사시는 것 같다. 사람들은 가족과 살다가 아이들이 나가면 짝과 의지하고 산다. 짝과 함께 살아온 집은 추억이 많아 혼자가 되어도 떠나지 못하고 산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가더라도 사람 사는 것이 그렇고 그러니 살던 집에 그냥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동네가 조용하고 모든 시설이 가까이 있어 아주 좋다. 병원과 의사 그리고 학교와 쇼핑센터가 가까이 있어 편리하다. 경찰서와 소방서도 가깝고 공원과 식당도 가까이 있다. 모든 시설이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기 때문에 운전을 하지 못하는 노인들도 특별한 문제가 없다.
나름대로 사람들 사는 모습을 구경하며 동네를 산책하는 것도 재밌다. 집을 가꾸며 사는 모습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사람 생김새가 다르듯 하고 사는 모습도 다 다르다. 집집마다 꽃도,나무도 다른 것을 심고 집 색깔도 다양하다. 하얀색, 노란색, 회색, 그리고 빨간색으로 칠하고 살고, 차도 다 다른 차를 타고 다닌다. 가는 길에 보니 젊은 여자가 집 앞에서 열심히 잔디를 가꾸며 정원을 청소하고 있다. 쓰레기봉투에 지저분한 낙엽을 넣고 잔디 찌꺼기를 집어넣으면서 땀을 뻘뻘 흘린다. 화단에 심어진 감자에 보라색 꽃이 예쁘게 피어 있는 모습이 감자가 아주 잘 자라고 있는 것 같다고 했더니 생전 처음으로 감자를 심어 보았다며 신나서 이야기를 한다. 칭찬을 해주니 모르고 지내던 사람과도 금방 소통이 된다. 저녁시간이라 그런지 동네는 여전히 조용하다.
창문에 노인이 창밖을 내다보고 서 있어서 손을 흔들어도 모른척하고 딴청을 떤다. 어쩌면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걸어간다. 하늘은 맑고, 공기는 신선하고, 아주 평화롭다. 유난히 예쁜 꽃을 가꾸며 사는 집을 지나 왼쪽으로 돌아서 걸어가는데 다 쓰러져 가는 폐가 하나가 눈에 띈다.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 앞을 지나가니 잔디는 안 깎은 지 오래되어 풀이 허리춤까지 자랐는데 엊그제 온 비로 옆으로 다 쓰러져 누워 있다. 무슨 사연이 있어 이렇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어쩌면 누군가 안에서 아무도 모르게 고독사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생각을 해본다. 지붕에 물받이가 떨어져 땅에 기대고 서있다. 어쩌면 돌보는 사람이 없는 이가 아파 누워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때는 누군가가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잡초만 무성한 집이 자꾸 신경이 쓰인다. 왕래가 없고 혼자 살다 보면 무슨 일이 있어도 아무도 모른다.
서로 잘 있으려니 생각하며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연락 없이사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다.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집안에서 생활한 지 4개월이다. 갑자기 모임을 절제했을 때는 사람들이 막연히 보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가고 그것이 또 하나의 새로운 일상이 되어 가면서 익숙해져 만나지 않고도 살 수 있어졌다. 안 보면 보고 싶고, 만나고 싶던 마음이 조금씩 잊혀 가고, 안 만나도 보고 싶지도, 그립지도 않게 되었다. 사람이 이렇게도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안 보이면 이웃이 먼저 알고 신고도 하고 찾아가 알아봤는데 요즘은 만나면 안 되는 세상이 되고 보니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의 삶이 되어 버렸다. 알 수 없는 그 집이 자꾸만 궁금해진다. 세상은 점점 변화되고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뒤쳐진다. 무엇이 그 집을 그리 황폐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쓰러져있는 무정한 풀들은 누렇게 말라죽어 있다.
집 앞에가격표가 아직 붙어있는 나무 세 그루가 청승맞게 서 있는데 가꾸지 않으니 어린 나무가 손길을 기다리듯 반쯤 죽어간다.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데 아무도 신경을 안 쓴 듯 비틀거린다. 현관으로 들어가는 길이 풀에 덮여 보이지 않고 현관 유리에는 하얀 종이가 붙어 있지만 내용은 볼 수 없다. 너무나 오랫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것 같다. 한참을 보고 서 있는 나의 손을 잡으며 남편이 가자고 한다. 보고 있어도, 걱정을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정부가 알아서 할 일이다. 쓰러져가는 폐가를 뒤로 하고 집을 향하는 마음이 왠지 무겁다. 행복하던 날들은 어디로 가고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모습이 쓸쓸하다. 사람은 혼자 왔다 혼자 간다. 태어날 때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환영을 받으며 생을 시작한다. 하지만 핵가족이 되어 살아가는 요즘엔 외로움 속에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많아진다. 옛날 문명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는 서로 간의 정이 깊어이웃들과 가족처럼 어울리며 살았기에적어도 죽음만은 쓸쓸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질적으로 풍부하지 않았지만 없는 가운데에서도 끈끈하게 서로 도우며 이웃과 기쁨을 나누고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고 살았다. 하지만 혼자 살아가는 요즘엔 외로움을 혼자 달래며 사는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었다. 한적한 저녁 산책을 하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과연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해외가 개방되어 자식도 멀리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웃과의 화합이 절실해지는 시간이다. 아플 때 죽 한 그릇이라도 끓여다 주고, 보이지 않을 때 걱정이 되어 찾아주는 따스한 이웃이 있는 사람은 돈이 없어도 행복한 사람이라는생각을 한다. '베푼 것만큼 받고 뿌린 만큼 거두리라'는 말을 되새겨 보는 저녁 한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