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렌 소리가 멀리서 가까이서 들린다. 어느 방향 인지 모르겠다. 두리번거리니 길 건너에 빨간불을 번쩍이며 숨차게 달려온다. 자동차들은 오고 가다가 꼼짝하지 않고 길에서 멈추고 구급차는 멈춘 차들 사이를 급하게 빠져나간다. 그냥 멀리 보아도 왠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 것 같아 가슴이 뛰고 불안하다. 구급차는 지나가고 거리는 평화로운 자동차의 물결 속에 사람들은 가던 길을 간다. 그 안에 누군가가 생사를 오고 가며 죽음과 싸우고 있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태어나고 죽고 하며 세상은 돌아간다. 천재지변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생각지 못한 크고 작은 사고로 사람들도 동물도 사라져 간다.
꽃이 있어 행복한 세상(사진:이종숙)
한쪽에서는 태어나고, 어딘가에서는 죽어가고, 어딘가에서는 기적적으로 살아간다. 죽어가는 사람이 살고, 살기를 원했던 사람이 죽고, 죽기를 원했던 사람이 살아난다. 사람의 목숨이 끈질기다 하지만 숨 한번 못 쉬면 죽는 것 또한 인간이다. 전염병으로 세상이 뒤집힌 채 수많은 사람들이 맥없이 죽어간다. 살만큼 산 사람이나 아직 살아보지 못한 사람이나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렵고 무섭다. 사는 것이 힘들다고 스스로 떠나는 사람도 많아지는 세상이지만 오죽하면 그 외롭다는 길을 떠나려 하겠는가? 사는 것도 힘들지만 산 목숨을 끊는 것은 더 힘든다. 구급차로 실려가다 살면 다행이고 죽으면 어쩔 수 없지만 죽어가는 귀중한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누군가는 죽기를 무릅쓰고 달린다.
갑자기 동네를 찢을 것 같이 브레이크 소리가 들린다. 마침 뜰에 나와 있었기에 소리 나는 방향으로 얼굴을 돌려본 다. 6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하늘로 붕 떴다가 땅으로 떨어져 엎어져 누워있다. 아무런 소리도 없다. 귀에서 피가 나온다. 새빨간 피가 코에서도 흐른다. 어느새 사람들은 그 아이를 둘러싸고 서있는다. 손에는 전화를 하나씩 들고 하얗게 질려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 그 아이를 보며 그 누구도 손을 쓰지 못한다. 갑자기 일어난 사고에 지나가던 사람들도 멈추고 집안에 있던 사람들도 자꾸만 모여든다. 몇 명이 구급차를 부르고 현재 상황을 이야기하며 구급요원과 통화를 한다. 아이는 죽은 듯 꼼짝도 않는다. 1분이 채 안된 시간인데도 숨이 막힐 듯 가슴이 뛴다. 얼굴이 하얗게 된 운전사가 발발 떨고 서있다. 피자를 배달하며 가는 길에 골목에서 아이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람에 차마 보지 못하고 브레이크를 잡았지만 이미 아이는 차에 받혀 붕 떴다가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구급차는 안 오고 사람들은 초조하게 기다린다. 시간은 멈춘 듯 세상도 숨을 못 쉰다. 여전히 응급요원과 이야기한다. 숨은 쉬는지 움직이고 있는지? 구급차는 오지 않고 아이는 죽은 듯이 꼼짝 않고 길바닥에 누워있다. 5분이 지나갈 때 멀리서 사이렌이 울린다. 그 기다리던 5분이 그렇게 긴 시간인 줄 몰랐다. 입안에 침이 바짝 말라간다. 어느 쪽에서 오는지 방향을 알 수 없다. 점점 소리가 가까워지고 멈춘다. 구급차가 오고 아이는 얼굴을 찡그린다. 손가락을 움직이고 구급요원은 아이를 들것에 옮기고 병원을 향해 간다. 또다시 숨 가쁜 사이렌 소리가 동네를 찢는다. 전화를 하나씩 들고 서 있던 사람들은 달려가는 응급차를 멍하니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며 하나 둘 자리를 떠나 집으로 향한다. 사이렌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간다. 집안으로 들어온 남편과 나는 놀랜 가슴을 쓸어낸다. '제발'이라는 말만 자꾸 되뇐다. 그 뒤 그 아이의 소식은 듣지 못했다.
그 아이가 사고로 동네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응급 차로 병원에 실려간 뒤로 놀란 가슴을 쓸어내며 아무런 일없이 살아나기 만을 바라며 뿔뿔이 흩어졌던 사람들을 그 뒤로 만나지 못했고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다. 사이렌 소리를 내며 길거리 차들을 꼼짝 못 하게 하는 구급차를 보면 아직도 길바닥에 떨어져 엎드린 채 꼼짝 못 하고 빨간 코피를 흘리고 있던 아이가 생각난다. 그 아이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