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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Jul 10. 2020

성공도, 실패도... 인간이 만드는 것이다


(그림: 이종숙)




드디어 그림 하나가 완성됐다. 여러 번 그린 그림 위에 다시 그리기를 몇 번을 했던 그림인데 이제 내 마음에 들어 벽에 걸어놓았다. 아주 마음에 들어 보고 또 본다. 그렇게 속을 썪이던 캔버스였는데 이번에는 성공한 것 같다. 그려놓고 보면 여기저기, 이것저것  마음에 들지 않아 고치고, 뒤엎고 했는데 이번만큼은 그럴 필요 없이 만족하다. 그림을 그리기 시 작한 지 2년이 조금 지난 지금, 나는 150여 개가 넘는 그림을 그려 벽에 걸어놓기도 하고, 주변의 친구들도 주며 재미로 그려왔는데 나에게는 못다 그린 2개의 무거운 캔버스가 있다. 다른 것은 누군가가 원하면 줄 수 있지만 그 2개만큼은 너무 무거워서 아무에게도 못줄것 같다는 말을 하며 가지고 있다. 잘 그리지 못하지만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그냥 좋아 그린다. 이 나이에 유명한 화가가 될 수도 없고 그럴 재능도 없지만 그저 행복하기 때문에 그린다.


사진이나 그림을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니고 상상으로 그리기 때문에 그림을 그릴 때 마음이 여러 번 바뀐다. 두세 번 하다 보면 대충 자리가 잡히고 원하는 그림에 색을 입히면 하나의 그림이 완성된다. 늦게 시작한 그림이라 부족한 이 많지만 가족들과 주위 친구들의 응원으로 열심히 그린다. 아이들과 남편은 내가 그린 그림을 좋아한다. 내가 생전 그림을 그릴 수 있으리라는 것을 상상도 못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캔버스에 그린 내 그림 하나를 보고 놀란 뒤부터는 옆에서 최고의 조력자로, 응원자로 나를 밀어준다. 그림을 배운 것도 아니고,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눈으로 보고 생각하며 이것저것 그리는 내가 신기한지 항상 칭찬을 해주며 늘 용기를 준다. 그렇게 그림을 그리며 시간이 지나는 동안 2개의 캔버스는 항상 미완성으로 남겨져 있었다. 마음이 불안할 때나, 걱정이 있을 때나 그 캔버스는 나의 아픔을 치유해주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칠하고 또 칠하고 그러다 보면 어떤 그림이 나온다. 그러다 다시 보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내려서 다시 칠한다. 때로는 색이 마음에 안 들고,  때로는 원근이나 명암이 맘에 안 든다. 다 마음에 들었어도 색깔이 너무 환하거나 너무 어둡고 크기나 발란스가 맞지 않아 다시 지우기를 반복했다. 인생의 실패를 많이 보고 살아온 나는 그 캔버스를 보며 지난날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하는 일마다 잘 되는 사람이 있고, 되는 일이 없는 사람이 있다. 한 번에 뻥 터져 평생을 멋지게 사는 사람이 있고, 될 듯 말 듯 애간장만 태우다가 실패의 고배를 마시며 생을 마치는 사람도 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지 모르지만 그들이 못나서도, 생각이 모자라서도 아니다. 다만 때를 못 만났을 뿐이다. 오래전 아버지는 부동산 사업에 손을 대었다. 가까운 지인이 추천하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늘 웃는 인상 좋은 신사였다.


말씀도 점잖게 하시고 옷도 항상 깔끔하게 입고 다니시는 분이었다. 그런 아버지의 사업수단을 이용하기 위한 접근이었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한마디로 얼굴마담으로 이용당했다. 아버지가 사람들을 만나서 최선을 다하여 일을 성사시킬 즈음 그 지인은 아버지보다 앞질러 조금 더 싸게 가격으로 현혹시키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한 푼이라도 싼 가격으로 아버지를 방해하고 아버지 앞에서는 딴청 하며 이간질을 하던 사람의 계략이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그 사이에 사회는 변하고 부동산 시장은 바닥을 치며 아버지는 실패를 하셨다. 많은 시간과 젊음과 돈을 투자하고 남은 것은 엄청난 빚뿐이었다. 한번 넘어진 아버지가 다시 재기하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로 인해 가족은 힘들어했고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많은 것을 배운 아버지는 끊임없이 공부를 했다. 학교를 가서 공부한 것이 아니고 혼자 연구를 하며 인생을 배우고 사회를 익혔다.


세월이 가고  하늘은 아버지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었다. 아버지를 잘 아시는 돈 많은 지인은 아버지를 믿고 커다란 사업을 맡기고 해외로 이민을 갔다. 아버지는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으로 사업을  열심히 이끌어 가셨다. 아무리 힘들어도 육 남매를 먹여 살리겠다는 마음뿐으로 골백번 생을 마감하고 싶은 유혹을 떨칠 수 있었다 한다. 사람이 실패할 때마다 죽음을 생각하면 목숨이 백개, 천 개도 모자라다. 실망하고 실패하고 다시는 일어설 수 없어도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이다. 캔버스가 무겁도록 칠하며 그만두고 싶은 생각을 하지만 나는 또다시 그림을 그린다. 색이 마음에 안 들어도, 구도가 보기 싫어도 자꾸 하다 보면 내가 원하는 그림이 될 것이기에 오늘도 나는 그린다. 잘 그린 그림이나 그렇고 그런 그림이나 나의 혼신을 다해 그린 것이다. 사람들의 안목도 다 다르고 취향도 다르다.


내 생각에 잘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이 들어도 다른 이들의 눈에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진처럼 자세히 그린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전혀 알 수 없는 추상적인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붓을 들고 내가 원하는 색으로 그려서 마음에 흡족하면 되는 것이다. 벽을 본다. 꽃그림, 바다그림, 산과 들을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하나도 같은 것이 없이 다 다르다. 색도, 구도도, 명암도 모두 다르다. 기계로 찍어내지  않는 한 같은 그림이 나올 수 없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림들이다. 한 번은 친구가 겨울 숲을 그린 그림이 좋다고 해서 선물로 주고, 한번 똑같은 그림을 그려 보려고 했는데 결코 그릴 수 없었다. 내가 같은 물감으로 그렸는데도 잘 되지 않는 것을 보니 기계로 찍기 전에는 결코 세상에 똑같은 그림이 나올 수 없음을 알았다. 마찬가지로 세상은 그리 만만치 않다.


쉬운 듯 하지만 어렵고, 어려운 듯 하지만 쉽다. 실패도 자꾸 하면 요령이 생긴다. 지속되는 실패로 슬프고 아프지만 하늘은 그냥 인간을 울게 놓아두지 않는다. 밤이 지나면  해 뜨는 아침이 오고 우리는 꿈을 이루며 살아간다. 실패도 성공이 될 수 있고,  성공도 때로는 실패로 이어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실패로 이루어진 무거운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 안에 수많은 그림이 숨겨져 있다. 세상에 태어나지 못하고 묻혀 버렸지만 그로 인하여 지금의 그림이 태어날 수 있음을 기억한다. 쉽게 그려진 그림도, 어렵게 그려진 그림도 한 사람의 영혼으로 그려진 것처럼 인생의 성공도 실패도 그 사람 안에서 숨 쉰다. 나는 이제 늦었지만 무거운 캔버스를 벽에 걸어놓고 바라볼 것이다. 그동안 숨기고 감추어 놓은 수많은 그림들을 떠올리며 행복하게 웃을 것이다.


성공도, 실패도 인간이 만드는 것이다.


(그림: 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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