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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Jul 11. 2020

때를 기다리며, 때를 놓치며... 사는 우리들


비온뒤의 세상은 눈부시다.(사진:이종숙)



세상이 온통 새까맣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는가 했더니 소나기가 무섭게 쏟아지고 빗발이 심하게 치며 지붕을 두드리고 창문을 때린다. 열어놓았던 창문을 급히 닫고 밖을 내다본다. 비는 무섭게 쏟아지는데 서쪽 하늘엔 해님이 환하게 얼굴을 내민다. 비는 비대로 쏟아지고 해는 해대로 비추는 신나는 오후에 앞뒤로 다니며 지붕에서 내려오는 홈통이 괜찮은지 걱정이 되어  바라본다. 지난번 갑자기 내린 많은 비로 홈통으로 물이 내려가지 못한 적이 있어 은근히 걱정된다. 새들이 물어다 놓는 나뭇가지와 나무에서 떨어지는 나뭇잎들이 조금씩 쌓여서 물받이를 막아서 물이 지붕 밖으로 넘쳐 나와 비 오는 날 비를 맞으며 남편이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바람도 없는데 비가 사선을 그으며 사방으로 흩어지듯 내리는 모습은 생전 처음 봤다. 여전히 비는 오고 햇볕은 눈부시게 빛난다.


지금 막 남편이 잔디를 깎고 들어왔는데 비가 오니 잔디가 새파랗게 살아나서 더 보기 좋다. 나무들도, 꽃들도 물을 마시며 기지개를 피고 좋아한다. 빗발이 심하게 치는 가운데 동쪽 하늘에는 예쁜 무지개가 뜨고 세상은 비에 젖어 촉촉하다. 비가 그친 세상은 고요하고 찬란하고 눈부시다.  창밖으로 보이는 잔디 위에 햇살을 받은 비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인다. 텃밭에 고추도 잎을 반짝이며 햇살을 껴안고 있다. 상추와 쑥갓 그리고 깻잎도 행복한 미소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화사하고 아름다운 빛을 좋아하는 마음은 똑같은가 보다. 하늘이 파랗고 바람은 한점도 없이 그야말로 언제 비가 왔나 할 만큼 맑다. 며칠 동안 뜸을 들인 작약이 드디어 꽃을 피우며 활짝 웃는다. 진분홍색에 연분홍색이 섞이고 노랑 꽃술로 속내를 환히 드러내는 예쁜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채 열흘도 안 되는 최고의 날을 위해 그토록 오랜 시간을 기다려온 마음이 숭고하기까지 하다. 꽃도 저리 열심히 최선을 다하며 는데 사람인 나는 매일 귀찮다고, 힘들다고 핑계 대며 살아간다. 한줄기의 햇빛 하나에도, 가늘게 지나가는 바람결에도 감사함으로 매 순간 사는 꽃보다 못하다. 꽃 하나 피우기 위해 사는 꽃이 나보다 못하지 않고, 시시한 모습으로 서있는 나무라 해도 나보다 못하지는 않다. 다 그들 나름대로 한생 살아가며 제 할 일을 하니 말이다. 죽어가던 체리나무가 뿌리 쪽에서 새싹을 만들어 살아가고 있다. 시커멓게 죽어 서있는 모습이 보기 싫어도 혹시나 하여 기다려준 보람이 있다. 제법 많은 잎을 달고 아직 멀쩡하다고 과시한다. 봄이 가고, 여름이 익어가고 세상은 여름에 익숙해져 가지만 조금씩 짧아져 가는 해가 어느 날 가을을 선물로 남기고 여름은 떠나갈 것이다.


똑같이 이어지는 일상이 때로는 지루하지만 지나고 나면 후회와 미련이 남는다. 왜 그때 좀 더 열심히 내게 온  삶을 사랑하며 살지 못했는가 하며 지난날을 생각하며 여전히 나는 게으름을 끼고 산다. 힘든 하루를 견디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도,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사람도 그것이 최선임을 안다.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도 흘러가야 할 때를 알고, 뭉쳐야 할 때를 알고, 흩어져야 할 때를 안다. 바람도 무심히 불지 않는다. 사나운 바람으로 다가와 많은 것을 삼키는 바람이 있고, 따사하게 몸과 마음을 녹이게 하는 바람도 있다. 사상 최악의 전염병수난 속에서도 견뎌내며 싸우는 인간은 언젠가 코로나를 극복하겠지만 또 다른 모습의 재난과 싸워야 할 것이다. 세계는 지금 메뚜기떼와 나방 떼가 지구를 덮쳐 가고 이름 모를 벌레들이 인간들의 생활에 침투하여 다가온다. 냄새를 풍기며 기어 다니는 벌레가 어찌나 많은지 죽이면 죽일수록 몇천 배씩 불어나는 뉴스에 질겁을 한다.




앵두가 익어가네요.(사진:이종숙)


뉴스를 보면 지구 상에 살 곳이 없는 것처럼 떠들어 대며 사람들을 겁주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인간 특유의 본능인 희망을 만들며 살아간다. 구름은 비가 되어 대지를 적시고 온갖 식물들은 자란다. 어제 피었던 꽃들은 어느새 시들어가고, 오늘 보이지 않는 새 싹들은 내일을 향해 발돋움한다. 세상은 밝고 어둠을 반복하고, 덥고 춥기를 되풀이하며 소리 없이 돌아간다. 오늘이라는 시간을 갖기 위해 애쓴 것은 생각하지 않고 오늘을 헛되이 보내며 후회한다. 오지 않은 내일을 걱정하고 꿈을 꾸며, 오늘을 버리는 어리석은 인간이지만 비 온 뒤에 대지를 적시는 비를 보며 행복해한다. 길거리에 빗물이 흘러 제 갈길을 간다. 가다 보면 강물을 만나고 바다에 도착하여 구름이 되어 다시 지구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지금 당장 내 눈에 무엇이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하며 살지만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언제고 가게 되고, 만날 사람은 언제든 만난다.


빼앗긴 것이 억울하다 생각하지 말자. 어쩌면 그것은 애초에 나의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인 우리에게는 주고 또 주어도 샘물처럼 솟아나는 사랑이 있지 않은가? 비 오는 오후에 무지개를 보며 소망하는 인간의 아름다운 마음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된다. 과학적으로 빛과 물이 만나면 생겨나는 무지개를 보며 소원을 빌던 어린아이는 세월 따라 이제 익어가는 나이가 되었다. 어두웠던 세상은 비를 맞고 다시 소생하고, 구름을 벗은 하늘은 물감이 떨어질 듯 맑고 파랗다. 웅크린 마음은 맑게 빛나는 눈부신 해를 보며 오늘을 감사한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슬퍼하고 아파하지만 작은 것에 기뻐하기도 한다. 변덕스러운 날씨에 변덕을 배운다. 불과 5분 전에 비를 맞고 차를 운전하던 사람은 비를 뚫고 급하게 지나갔다. 지금은 말짱하게 개어  비가 왔던 흔적이 별로 없다. 사람들은 금방 밖으로 나오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간다.


비로 인해 중단된 일을 계속하고 해야 할 일거리를 찾아 하기 시작한다. 땅이 젖어 잡초가 잘 뽑히니 여기저기 뿌리를 내린 민들레라도 뽑아봐야겠다. 비 오는 날은 핑계가 많은 날이다. 게으른 사람은 잠자기 좋고, 부지런한 사람은 일하기 좋은 날이다. 무엇을 해야 할까도 중요하지만 순간순간 때를 잘 알고 슬기롭게 살아가는 것도 지혜로운 삶이다. 때를 기다리며, 때를 놓치며 사는 우리네 인생살이는 어쩌면 때를 알지 못해 허우적거리는지도 모른다. 비가 온뒤의 바람은 참으로 시원하다. 비로 깨끗해진 세상을 보는 내 마음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때를 기다리며, 때를 놓치며 사는 우리네 인생이다.


지금이 바로 최고의 시간이지요.(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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