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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Jul 20. 2020

우리는 순간에 태어나고... 영원을 살아간다


(사진:이종숙)




날씨는  맑고 청명하다. 바람 따라 나뭇잎들이 부딪혀 스산한 소리를 내어 마치 가을이 오고 있다고 전해주는 것 같다. 비가 와서인지 더위가 한풀 꺾인듯한 날씨가 이러다 여름이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서운함마저 느끼게 한다. 전염병으로 올해는 계절조차 느끼지 못하였는데 거의 날마다 비가 오니 여름 같지 않다. 여름인데 영상 30도가 넘었던 날이 하루도 없던 올해는 선선한 여름 날씨로 긴팔을 벗지 못하고 아침저녁에는 잠바를 걸쳐야 한다. 뭉게구름은 여기저기 두둥실 떠다니고 거리에 사람들은 어디에 숨었는지 아무도 없다. 손주들도 낮잠을 자고 세상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조용하다. 오랜만에 조용한 시간을 가져본다. 일주일이 지나는 동안 낮에는 도통 한가한 시간을 갖기 힘들다. 둘이 한꺼번에 자면 좋을 텐데  하나가 자면 하나는 떠드고 돌아다닌다. 절간 같던 우리 집이 아이들이 오고 나서는 전쟁터같이 시끌시끌하고 폭탄 맞은 집같이 장난감이 천지사방으로 늘어져 있다.


한시도 조용한 시간이 없다. 손자는 떠들고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고 손녀는 방에서 세상 모르고 잔다. 어른 같으면 시끄러우면  깰 텐데 깨지 않고 잘만큼 자고 일어난다. 4살짜리 손자는 동생보다 2살이 더 많다고 쫓아다니는 동생을 피해 딴 곳으로 가서 하고 싶은 것을 한다. 두 살 차이인데 벌써 세대차이가 나는지 아주 아기 취급을 한다. 어느새 일주일이 지나 나는 시끄러움에 적응되어 간다. 이렇게 오늘처럼 조용한 시간이 오히려 이상하다. 울고 웃고 짜증내고 쫓아다니며 하루를 끝내면 저녁에는 온몸이 뻐근하다. 아이들이 집에 온 뒤로는 우리의 일상은 없어졌다. 손주들이 깨어나는 시간부터 자는 시간까지 손주들을 위주로 생활한다. 밥해주고 간식 주고 놀아주고 하다 보면 어떻게 하루가 가는지 모른다. 내 아이들을 키울 때 미처 몰랐던 많은 것들이 있다. 사는 게 바빠 아이들이 빨리 크기만 바랐던 생각에 미안하다.


아이들이 크면 내가 늙는다는 것도 모르고 그저 빨리 자라서 나를 편하게 해 주기만 바랬다. 세월은 흘러 아이들도 어른이 되어 나는 자유롭고 할 일 없는 노인이 되었다. 옛날에 내가 아이들을 키우던 기억은  희미해지고 세월만 간 것 같고 간혹 아이들끼리 어렸을 적 이야기를 하면 새삼스럽다. 사람이 지난 모든 것들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오랜만에 앉아서 지난날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때로는 좋은 것임을 느낀다. 이야기가 세월이 갈수록 더 재미있어지고 살이 붙어 더 우습게 만들어진 추억이 된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원했던 것들을 조금씩 더해가는 것 같기도 하다. 웃고 또 만들고 생각하며 지난날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제는 올망졸망하던 아이들이 커서 올망졸망하는 아기들을 데리고 정신없이 사는 것을 보면 나도 저 나이 때 그랬지 하는 생각이 난다.


집에서 일을 하기에 여러 가지 편한 점도 있겠지만 역시 아이들은 학교를 가고 어린이집에 가서 선생님과 생활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밥이나 먹이고 간식거리나 챙겨주지 특별한 교육도 못하고 활동도 함께 하지 못한다. 웬만하면 전문인들이 돌보는 시설이 훨씬 애들에게 도움이 된다. 옛날에 나는 포부가 컸다. 할머니가 되면 손주들과 여러 가지를 하고 데리고 다니며 하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막상 할머니가 된 지금은 기운도 열정도 따라주질 않는다. 오히려 손주들한테 배우는 실정이니 한심하다. 요즘 애들은 일찍부터 컴퓨터나 핸드폰을 써 버릇해서 어떤 때는 나보다 어린 손주들이 더 잘한다. 그러니 사랑을 주고 쫓아다니며 챙겨줄 수는 있지만 교육적인 것들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그래도 오랫동안 있는 것 아니니까 하루하루 잘 봐주고 잘 먹이면 되니까 크게 걱정은 안 한다.



(사진:이종숙)



앞으로 같이 있는 동안 더 예뻐해 주고 더 크기 전에 더 많이 안아주면 된다. 손주들이 많이 배우는 것은 부모들이 해야 할 일이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같이 잘 놀아주면 되는데 요즘은 외출이 까다로워 집안에만 있는 게 힘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놀이터에서 놀면 좋은데 코로나 때문에 그것도 용이치 않다. 어린아이들이 이것저것 만지고 손을 입에 집어넣고 하면 위험하기 때문에 아예 놀이터 근처에도 데리고 갈 수 없다. 어린 손주들도 바이러스나 병균에 대한 말을 많이 들어서 조심하지만 아직 어린 나이니 어른들이  두 눈 크게 뜨고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들 보는 것은 끝이 없이 연속된다.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거나 딴생각을 하고 있으면 당장에 일을 저질러서 수습하기가 더 힘들다. 물을 쏟아 그거 닦는 사이에 의자에서 떨어지고 뛰어가다 넘어지고 부딪히며 운다.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은 정말 슈퍼맘들이다.


아기들 모두 비위를 맞추어 원하는 것을 다 해주고 울면 달래주고 증내면 안아주고 사랑과 정성으로 밤낮으로 애쓰며 잠시도 쉬지 않고 돌본다. 신이 여러 곳에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 도와줄 수 없어 엄마를 만들어 신의 할 일을 대신하게 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아무튼 엄마들은 정말 대단하다. 옛날 부모님들은 없는 살림에 그 많던 자식들을 어찌 다 기르셨는지 정말 위대하시다. 정말 밥 세끼 먹는 것도 힘든 세상에 죽이지 않고 키워주신 그 크신 은혜는 못 잊는다. 세상은 풍요롭고 자유롭지만 그래도 먹고사는 일은 예전이나 다름없고 어쩌면 더 힘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온라인으로 일을 해도 눈치를 보며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은 여전히 힘든다. 아이들은 뛰고 말썽을 피우고 일은 해야 하고 정말 어쩔 줄 모르며 살아가는 것을 보면 지금의 젊은이들도 부모님들 못지않게 위대하다.


세상의 유혹이 많고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것이 생기는데 그들도 하고 싶고 사고 싶은 것들이 많겠지만 아이들을 위하여 참는 것을 보면 정말 기특하다. 요즘 젊은이들은 철이 없고 이기적이라고 하지만 가까이 보면 그들도 자식과 가정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다. 좋은 세상이나 힘겨운 세상이나 살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끝없이 참고 견디며 인내하는 모습이 보인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부모이기 때문에 다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은 변치 않는다. 새벽부터 아기들을 쫓아다니고 잠들 때까지 아기들의 뜻을 다 받아주는 부모들이 존경스럽기 조차 하다. 철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한 공간에서 같이 살아보니 젊은 사람들이 더 똑똑하고  배울게 많은 것을 알았다. 나이가 들어가며 알던 것도 잊어버리고 변해가는 세상을 따라가지 못하기에 뒤로 밀리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아는 게 많고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아도 나이가 면 퇴직을 하고, 젊고 참신한 사람들이 세상을 이끌어 가게 되는 자연의 진리를 깨닫는다. 인간은 누구나 전성기라는 것이 있다. 젊은이들은 그들대로의 최고의 삶을 살고 노인들도 전성기를 보낸다. 특별한 시간과 나이가 따로 없이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바로 전성기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어제의 전성기가 있었듯이 우리 모두에게는 오늘이 전성기이다. 부모로서 할 일을 다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로서 할 일을 해가며 살아갈 때 전성기는 우리와 함께 한다. 행복도 전성기도 지나고 보면 매일매일 우리들의 삶 속에 있었듯이 특별한 날의 특별한 모습이 아니었다. 오늘처럼 맑은 날이었고 어제처럼 비 오던 날이었다. 바람 불던 날도 있었고 햇볕이 쨍쨍 내려쬐어 덥고 뜨겁던 날도 있었다. 몇백 번의 계절을 맞아도 올 때마다 새삼스럽듯이 하루하루가 새삼스러운 것이 인생이다. 정신없이 살던 날도 있었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한 날도 있었다. 하루가 영원으로 연결 지어진다.


우리는 순간에 태어나고... 영원을 살아간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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