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에 참새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등 굽은 소나무 가지마다 새들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무엇을 하는지 바쁘게 움직인다. 어젯밤에는 정말 무서운 비바람이 불었다. 천둥 번개가 요란스럽더니 천지가 까맣게 되고 엄청난 비가 쏟아졌다. 바람이 세상을 뒤집을 정도로 심하게 불어대고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비가 왔었다. 둘째가 저녁을 먹으러 온 뒤로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집에 갈 때가 되어 개기 시작했다. 열식구식사 시간의 작은 전쟁을 치르고 나니 쏟아부은 비바람에 나뭇가지가 여러 개 부러져 있었는데 오늘 나가보니 앞뜰에 있는 자작나무의 큰 가지가 지붕으로 넘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얼마나 바람이 심하게 불었는지 굵은 나뭇가지가 뻐개지면서 지붕 위로 누워 버렸는데 그대로 놔두면 지붕이 다 망가져 버리게 생겼다. 남편이 급하게 전기톱으로 부러진 가지를 자르고 죽은 나뭇가지도 겸사겸사 자르느라 일이 엄청 커졌다.
다행히 이틀 간격으로 며느리들 생일이라 중간 날을 잡아 온 식구가 생일 파티를 한다고 다 모여 있어서 아들들이 도와주어 일이 쉽게 끝나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날이 좋은 것만 생각하고 지붕 위를 보지 않았는데 우연히 올려다본 지붕에 커다란 나뭇가지가 있는 것을 발견했으니 다행이었다. 얼마나 바람이 심하게 불고 비가 많이 왔으면 멀쩡하던 굵은 나뭇가지가 견디지 못하고 지붕 위로쓰러져 넘어졌을까? 사람도 살면서 여러 수난을 겪을 때 저렇게 쓰러지겠지 생각을 하니 힘들어하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난다. 나무 위를 쳐다보니 지난 몇 년 동안 엄청 자랐다. 죽은 가지도 많아 삐죽 튀어나온 모습이 보기흉했는데 마침 잘라주니 머리를 깎은 것처럼 말끔하다. 잘라놓은 나뭇가지를 보니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누워버린 사람의 심정을 알듯하다.
한평생 사는 동안 되는 일보다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더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일어서려고 애를 쓰다가 더 이상 일어설 수 없을 때 사람들은 극단의 선택을 하기도 한다. 자연도 마찬가지로 계절이 오고 가며 잎을 달고 싹을 피우며 살다가 어느 날 저렇게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떠난다. 비도 바람도 순종하며 살아야 함을 알고 부는 바람을 맞서지 않고 부는 대로 살아간다. 살다 보면 무섭게 불던 바람이 순하고 따뜻하게 불어오는 날이 있다. 숨이 막히고 목이 졸리는 때가 있어도 조금만 참으면 된다. 지구가 돌듯이 세상도 돌고 인정도 돈다. 어제의 찬바람이 오늘의 더운 바람을 가져왔듯이 돌고도는 바람 속에 바람 따라 살아간다.오지 않을 것 같은 오늘이 어제가 되고 올 것 같던 내일은 오지 않고 비켜가기도 한다. 기쁨도 슬픔도 머물러있지 않고 돌고 돈다.
그토록 시끄럽게 난리를 피던 참새들은 낮잠을 자고 까치 몇 마리가 뒤뜰에서 무언가를 집어 먹는다. 손주들이 먹다가 떨어뜨린 케이크 부스러기를 주어 먹느라 바쁘다. 잔디 속에 떨어져 있는 것을 어찌 그리도 잘 찾아 먹는지 모르겠다. 저마다 먹고살기 위한 방법에 익숙하다 보니 본능적으로 먹을 것을 찾아다닌다. 어린 손주들도 배고프면 아무것이나 잘먹고 배가 부르면 아무리 맛있는 것도 본체만체한다. 어른들은 맛있는 음식이나 고급 음식은 배가 터지도록 먹는다. 값을 생각하고 아까워 억지로 먹고 탈이 나도 먹는다. 아기들이나 짐승들은 배가 부르면 입을 닫고 어른들은 내일을 위해 먹고 나중을 생각해서 먹는다. 어찌 보면 정말로 어리석은 인간이다, 그러기에 부족함과 만족이 없는 세상이라 한다. 사람에 따라 많고 적고도 다르고, 좋고 싫고도 다르니 세상은 참으로 공평하다는 말이 맞다.
취나물이 사람키만큼 자라서 계곡을 내려다 보고 있다.(사진:이종숙)
어른은 살기 바빠서 정신을 못 차린다고 하지만 손주들도 어른 못지않게 바쁘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바쁘게 돌아다닌다. 알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 보고 배우고 어른이 되어가기 바쁘다. 4살짜리 손자와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이 없이 종알댄다.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깜짝 놀라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엄마 아빠 일할 때 저를 봐줘서 고맙다". 고 말을 한다. 부모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하는 말이겠지만 어린 손자도 무언가를 느끼는 것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보면 그 가정을 대충 알 수 있다고 하나보다. 탁아소 선생님보다는 못하지만 사랑하는 눈과 귀로 보고 들으며 이해하면 어린 손주들과도 소통이 된다. 이해타산이 많은 어른보다 훨씬 순수하고 좋다. 어느덧 여름의 뜨거움이 수그러 드는지 하늘은 높아지고 뭉게구름이 피어난다.
일찍 가을을 맞을 준비를 하는 나무도 있고 단풍이 든 나무도 하나 둘 생긴다. 잠자리도 날아다니고 열매들은 노랗고 빨갛게 익어간다. 세월이 가고 또 다른 계절이 오고 있다. 하루하루가 힘들다고 빨리빨리 세월이 가기를 바랐는데 세월이 너무 빨라 이제는 붙잡고 싶은데 무심한 세월은 제갈길을 가기 바쁘다. 그렇게 바쁘게 뛰어다니며 말썽 피우던 손주들이 잠을 자니 세상은 고요하다. 막간을 이용해할 일을 마저 한다. 정말 금쪽같은 시간이다. 남편과 둘이 살 때는 시간이 넘쳐나 할 일을 찾아다녔는데 지금은 내 시간은 전혀 없다. 손주들이 자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할 일을 하거나 밤에 한다. 그러니 어린 자녀를 둔 젊은 엄마 아빠들은 정말 자신들의 시간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텔레비전 밖에 없던 시절에는 틈틈이 책을 읽으며 세상을 살아왔는데 요즘엔 책과는 먼 세상이 되어간다.
앞으로 무엇으로 사람들은 소통하며 살 것인가 궁금하다. 소통거리가 없어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어쩌면 앞으로는 전자제품이 아닌 자연과 소통하며 살아 갈지도 모른다. 우리가 가까이하지 않고 살아온 자연은 인간이 연구한 과학과는 다르게 무궁무진하다. 참새가 짹짹거려서손자에게 "새가 너한테 안녕한다".라고 하니 손자는 새만 보면 "안녕!"하고 손을 흔든다. 걸어가는데 나뭇가지가 손자 머리를 건드려 손자가 쳐다보길래 "나무가 안녕하는 거야".라고 이야기해 주었더니 그 뒤부터는 나무를 보면 " 안녕!" 한다. 그렇게 자연을 가까이하다 보면 친구가 되는데 책이나 컴퓨터에만 소통거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아이들이 어리고 부모는 할 일이 많아 스마트폰을 주고 보게 하며 살아가는 요즘 세상에 자연과 가까워지는 것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염병이 아이들의 놀이터와 운동장을 빼앗아 갔다.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곳이 점점 줄어들어 얼굴을 파묻고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가는 것을 보면 실로 안타깝다.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오만가지 재미있는 쇼가 나오니 좋아하는 것이 당연하다. 아이들은 같이 놀아줄 친구도 어른도 없이 너무나 심심하다. 부모들은 보지 말라고 하지만 어린애들도 놀거리가 없으니 자꾸 보게 되는 슬픈 현실이다. 집집마다 최신형 장난감은 넘쳐나지만 맨 처음 몇 분 동안 놀다가 버리기 일수이다.어른이고 아이들이고 비싼 돈 주고 사다 놓은 장난감은 쌓아가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무용지물이다. 물질의 풍요만큼 사람들은 더 심심해지고 볼거리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