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행복

by Chong Sook Lee


행복을 만납니다 (사진: 이종숙)


22년을 운영하던 식당을 지인에게 넘기면서 정년퇴직을 하게 되었다. 막상 퇴직을 하니 시간이 남아 돌아가는데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정년퇴직을 하면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았다. 또한 가고 싶은 곳도 많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많았는데 갈 데도 오라는데도 없는 날들만이 있을 뿐이다. 하루빨리 가게 팔고 같이 골프도 치고 여행도 같이 가자던 사람들은 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얼굴조차 보기 힘들다. 정년퇴직을 일찍 한 친구들이 부러웠는데 퇴직도 별것 아닌 듯 그저 심심하기만 하다. 아침에 느지감치 일어나서 아침 먹고 나서 인터넷 조금 보면 점심시간이다. 점심을 차려 먹은 후에는 심심하니까 낮잠을 잔다. 낮잠을 30-40분 정도 자고 일어나서 또 인터넷을 본다. 그러다 보면 저녁 먹을 시간이 되고 또 저녁을 준비하고 밥을 먹고 나면 텔레비전을 보기 시작한다. 뉴스도 보고 드라마도 보면서 시간을 보내다 열 시쯤이면 침대로 가서 잠이 올 때까지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을 읽어본다. 이것이 나의 퇴직생활의 전부이다. 어찌 보면 편해 보이기도 하지만 한심하기도 하다.


그래도 시간의 제약이 없으니 참으로 자유롭다. 퇴직을 하고 나서 손주 손녀들도 보고 멀리에 사는 아이들을 보러 가기도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빅토리아에 사는 딸네도 다녀오고 캘거리에 사는 아들네도 다녀오고 한국도 다녀왔다. 둘째도 애들이 둘이 있는데 외할머니가 보지 못할 때는 우리가 본다. 큰 며느리가 둘째를 낳아서 잠깐 가서 도와주었는데 몸이 힘들었는지 대상포진에 걸려서 죽을 뻔했다. 그야말로 실업자 과로사할 뻔했다. 그럭저럭 집에서 놀면서 나름대로 은퇴 생활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멀리 보이는 잔디가 아름다워 보이듯이 때로는 퇴직을 꿈꾸던 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지만 영원히 퇴직을 안 할 수도 없으니 정년이 되면 퇴직을 해야 함은 당연하다. 많은 사람들이 100세 시대에 65살은 퇴직하기에 이른 나이라 하여 퇴직을 미루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내 생각으로는 경제적으로 허락이 되면 조금 젊은듯한 나이에 퇴직을 하고 남은 시간을 즐기며 사는 것이 좋을 듯하다.


퇴직 후 일 년이 눈 깜짝할 사이에 갔다. 특별히 한 것도 없이 어영부영 시간이 가서 몸도 마음도 느긋한 퇴직생활에 젖어들어 편안하다. 아무런 구속도 서두름도 없으니 하고 싶으면 하고 갈 곳이 있으면 가면 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찾던 행복한 삶이다. 처음에는 정년퇴직을 하면 내 인생 자체가 하루아침에 금방 바뀌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서서히 바꾸어지는 것이었다. 무심코 생각 없이 놀다 보니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체육관에 나가서 수영도 하고 여러 가지 운동기구로 운동도 한다. 운동을 하고 나면 기분도 좋고 에너지도 생기는 것 같아 열심히 다니다가 가을이 가기 전에 강가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남편과 걸어 보았다. 그동안 시간이 없어 가보지 못했던 강기슭을 타고 오르내리며 꿈같은 열하루 동안의 산행을 즐겼다. 가을이 일찍 왔다간 이곳의 10월은 조금은 황량하다 싶었는데 우연히 걷게 된 강가의 오솔길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여러 가지 나무와 아름다운 낙엽의 색깔, 그리고 산책길에서 우리를 반기는 다람쥐와 예쁜 새들의 귀여운 모습은 우리의 눈과 귀를 다시 뜨게 했다. 자연은 최선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기다리는데 먹고사느라 바쁜 사람들은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살아감을 생각해보니 지금껏 무심히 지나쳤던 자연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


멀리 가지 않아도 가까운 곳에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곳이 있는데 사람들은 멀리 가야만 멋진 여행을 다녀온 것으로 안다. 멀리 가는 여행도 좋지만 가까운 이곳도 외국에 사는 많은 사람들의 "가보고 싶은 곳" 중에 하나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눈이 와서 산행을 계속할 수 없지만 내년 봄에 다시 찾아올 것을 기약했다.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알 수 없는 행복을 찾아 헤맨다. 내가 평생을 찾고 있던 그 행복이 마음을 비우면 가까이 아주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세상은 그 어느 것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고 원하는 것은 나의 욕심일 뿐 아무리 작은 것도 때가 허락해야 이룰 수 있다. 시간은 여전히 제 속도로 간다. 나름대로 소소한 행복을 즐기며 무엇하나 급할 것도 서두를 것도 없는 나이에 무엇이 두려우랴. 나라에서 조차 인정하는 나이가 되어 평생 동안 젊음을 바쳐 일한 보상으로 매달 생활비도 대주며 일은 그만하고 남은 여생을 편히 살라하지 않았던가?


퇴직 후 나름대로 무엇을 하며 앞으로 내게 남은 생을 살아야 하나 하는 조급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그것도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것을 깨닫는 날들이다. 어제의 나는 이미 세상에 없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아니듯 오늘의 나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매일매일의 똑같은 삶이라도 좋으니 하루를 더 살고 싶은 사람이 있음을 생각하면 얼마나 귀중한 시간인가? 화려하지 않아도 하루하루 조촐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이 소중한 날들은 다시 내게 오지 않을 나의 마지막 순간순간들이다. 나를 찾아온 오늘이라는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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