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무언가를 잃었을 때의 상실감이 얼마나 상처를 주는지는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누군가에게 소중한 것을 빼앗겼을 때 너무 실망한다. 하지만 가장 아플 때는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내 소중한 것을 도둑질해 갔을 때일 것이다. 무언가를 수집하는 사람은 그 수집한 물건이 소중하고,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은 책이 소중하고, 글을 쓰는 사람은 자기가 쓴 글이 세상에서 최고로 소중하다. 어쩌다 생각난 좋은 글 귀가 여건이 마땅치 않아 쓰기 전에 놓쳐버리고 나면 참 아깝다. 종이나 펜이 없거나 전화가 안 터지거나 여러 가지로 문제가 있을 때 찾아오는 금쪽같은 글귀는 왜 그리도 내 머릿속에서 빨리 사라져 버리는지 모른다. 조금 있다가 써야지 하지만 어느새 머릿속은 이미 하얀 백지장이 된다. 생각을 되돌려 보지만 찾을 수가 없다.
그런 소중한 글을 가까운 사람 누군가가 가져가 도용하고 표절했다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나는 결혼 전에 4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 하루가 시시해도, 중요해도 슬프거나 기쁘거나 나의 마음을 편하게 적었다. 그 속에는 나의 인생이 다 들어있다. 결혼을 하면서 이사를 자주 다녀야 했기에 친정엄마한테 '절대로 버리지 말 것'이라고 써서 친정집에 보관한 상태로 이민을 오게 되었다. 이민 짐이 별것 없지만 출산을 앞둔 나로서는 4년 동안 쓴 일기장을 가져올 수 없었다. 5-6년이 지났어도 우리는 한국에 갈 형편이 못 되는 상태였다. 어느 날 우연히 엄마와 전화로 이야기를 하는데 "이사를 가야 하는데 일기장을 어떻게 하지?" 하고 물어 오셨는데 그때 나로서는 한국에 쉽게 갈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냥 버리시라고 했다.
자식들 다 나가고 큰집이 너무 부담스러워 작은집으로 이사하시는데 커다란 상자를 가져가시라고 할 수 없어 그냥 버리라고 했지만 아직까지도 미련이 남았다. 이미 오래전 버린 것이지만 글이란 그때의 마음을 적은 것이기에 더 애착이 가는 것 같다. 요즘 브런치 '꽃들 작가님'이 옛날에 중학교 다닐 때 쓰신 일기장을 브런치에 올리신다. 나도 그 일기장이 있었으면 지금 읽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님의 글을 읽고 댓글로 내 일기장 이야기를 말씀드렸더니 작가님이 깜짝 놀라시면서 "4년 쓴 일기가 너무나 아깝다."라는 답글을 주셨다. 사실 다 지나간 일이고 47년 전에 쓴 일기장이지만 일기 하면 생각나는 4년 동안 쓴 일기장을 생각하게 된다. 그렇듯 글이란 남에게 보이가 위한 것이기도 하고 나만의 특별한 공간이기도 하기에 더 소중하다.
어제 한 작가님이 글을 올리셨다.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 누군가가 작가님의 글을 도용해서 자신이 쓴 글처럼 버젓이 행세하고 다니는 것을 알고 너무나 속이 상하셨던 마음을 글로 적어내신 글이다. 소중한 물건을 도난당했을 때 속이 상해도 다시 돈으로 살 수 있기에 참을 수 있지만 영혼을 풀어낸 글을 도난당했을 때의 기분은 정말 표현할 수가 없으실 것이다. 그럼에도 마음이 여리고 점잖으신 그 작가님은 안타까운 마음을 담은 글을 올리시며 마음을 위로하셨다. 잃어버렸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 아니라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보다 가까운 사람에게 당한 그 마음이 더 아프신 것이다. 살다 보면 생각지 않은 일로 실망하고 절망하지만 작가님의 심정을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다.
어제 내가 브런치에 올린 ( 지금…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며 산다)라는 글을 읽어보고 분노를 삭이며 위안을 받으셨다며 긴 글을 쓰셨다는 댓글을 주셔서 알게 된 사실에 너무 놀라서 댓글 대신 몇 자 적어 보았다. 사람이 살면 천년만년 사는 것도 아닌데 남의 글을, 그것도 가까운 사람의 글을 도용하며 까지 살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약하신 그분은 글 하단에 댓글로 혹시나 마음 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을 염려하여 댓글 허용을 잠시 멈춘다는 말씀까지 하신 그 작가님은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진정한 작가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