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높다. 강 위에 있는 다리를 건너는데 차들이 가니까 다리가 흔들린다. 다리 위에서 강물을 내려다보니 맑고 푸르다. 강가에 노랗게 물든 나무가 비바람에 쓰러진 채 가을을 맞는다. 뿌리는 간신히 땅에 있고 몸체만 옆으로 쓰러져 있어 죽지는 않은 채 서 있다. 멀리 보이는 숲이 울긋불긋 한데 모여 가을 잔치를 한다. 햇빛이 곱게 내리쬐는 오솔길로 걸어간다. 어린 나무들이 노랗게 물이 들어 지나가는 우리에게 손을 흔든다. 봄에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숲에서 오들오들 떨며 봄을 맞던 작은 나무들이 어느새 많이 커서 가을을 맞는다. 추운 겨울을 보내려면힘들 텐데 걱정 없는 얼굴로 화사하게 웃고 있다. 강가에 있는 오솔길을 걸으니 참으로 정겹다. 강가에 강태공 아저씨가 고기를 낚는지 세월을 낚는지 낚싯대를 강에 던져놓고 의자에 앉아 강 건너편을 바라본다.
어떤 물고기가 있는지 모르지만 집에 있기 심심하니까 나온 듯하다. 물결은 잔잔하고 바람도 없다. 아침에 나올 때는 추운 듯하였는데 걷다 보니 덥다. 며칠 동안 온도가 낮아서 가을이 급하게 오는 줄 알았는데 오늘은 따뜻하여 걷기에 너무 좋다. 몇 번 다녀온 길이라 낯이 익어 걸어 가지만 길이 오르락내리락하고 구불구불해서 앞에 어떤 길이 나올지 모른다. 마치 우리네 인생길 같다. 몇 발자국 앞도 잘 안 보이니 조심해서 간다. 몇몇 사람들이 오고 가지만 아주 조용하다. 사람들이 도시에서 복잡하게 살아갈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한가한 숲에 와서 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넓은 숲 속에 이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 세월 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는데 숲이 너무 아깝다. 강가 어디선가 오리들 소리가 들린다. 요즘 날씨가 추워지니 오리들이 남쪽으로 날아가느라 바쁘다.
(사진:이종숙)
며칠 전 뜰에 있는데 꾸룩꾸룩 소리가 들려 하늘을 보니 수십 마리의 오리가 하늘에 시옷자 모양으로 남쪽을 향해 대이동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도 여러 마리가 하늘을 날아가는 것을 보았는데 강가에 여러 마리가 집합을 했다. 몇 마리는 연락을 하며 오리들을 모으고, 몇 마리는 적이 혹시 있나 하며 정찰을 한다. 해마다 봄에 오고 가을에 가는 오리도 그들의 언어가 있어 함께 모여 오고 가며 단체 행동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검은 털의 빨간 머리 딱따구리 새가 이나무 저 나무 다니며 나무를 쪼아 벌레를 잡아먹는다. 수놈이 암놈의 뒤를 바로 따라가 나무 위에서 만난다. 다람쥐 한쌍이 산책길을 가로질러 숲 속으로 들어간다. 한가로운 숲은 그들의 놀이터가 되고 삶의 터전이다. 열매들이 빨갛게 익어간다.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열매를 맺는 모습이 참으로 좋다.
아이들을 낳아 기르던 때는 내 인생의 꽃피는 봄이었고 인생의 가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손주들이라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며 살아간다. 인간의 삶과 자연이 다르지 않다. 봄, 여름이 있고 가을과 겨울이 있듯이 인생 또한 사계절이 있다. 꽃피는 봄 같은 어린 시절과 정렬의 여름 같은 청춘시절이 있고, 익어가며 아름다워지는 장, 노년시절이 있고, 조용히 기다리며 겨울을 준비하는 시간이 있다. 숲을 걸으며 수많은 나무들을 만난다. 작고 큰 나무와 가늘고 굵은 나무들이 셀 수 없이 서 있다. 구부러진 나무도 있고 하늘로 쭉쭉 뻗어 늘씬한 나무도 있다. 비뚤어진 나무도 있고 가지들이 서로 엉킨 나무도 있다. 인간사회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모두 다른 모습과 생각을 가지고 한 세상 살아간다. 잠시도 쉬지 않고 끝없이 변하며 다른 모습을 만든다.
(사진:이종숙)
하늘은 하늘대로, 구름은 구름대로 끊임없이 돌아간다. 파랗던 하늘에 구름이 보이고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더니 다시 해가 나오며 세상이 밝아진다. 피어나고 자라던 이파리가 앞을 다투며 노랗게 빨갛게 익어가고 앞서고 뒤서며 땅으로 떨어져 눕는다. 인간의 모습이 저와 같지 않은가? 어느 날 땅으로 돌아가고 새 생명이 다시 태어난다. 돌고 돌며 없던 것이 생겨나고, 있던 것은 사라지며 또 다른 모습의 지구가 돌아간다. 강가와 산책로 사이에 오솔길로 따라가 본다. 무언가라도 나올 듯 약간은 설레면서도 두렵다. 나무에 누군가가 하얀 종이에 무언가 써 놓았다. 가까이에 가서 읽어보니 근처에 고슴도치가 있단다. 사람을 해치지는 않겠지만 안 만나는 것이 좋을 듯싶어 급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숲이 많아 오솔길이 질퍽거려서 한번 빠지면 신발이 엉망이 될 것 같아 조심하며 걷는다.
(사진:이종숙)
노란색의 나뭇잎에 눈이 부시다. 해마다 맞는 가을인데 맞을 때마다 아름다움을 느낀다. 결국 단풍이라는 것이 나무가 시들어가며 색이 바래는 것인데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가까이 보며 초라하기 그지없음을 알지만 눈의 착시현상으로 세상이 아름답다. 강 위의 다리를 건너서 강 건너편으로 가 본다. 어딘가 에서 본듯한 사람들이 저쪽 편에서 걸어온다. 오랫동안 알던 지인들이 산책을 나왔다며 반색을 한다. 코로나로 갑갑하여 콧바람을 쐬러 나왔단다. 오랜 세월 동안 보며 살아온 그들이다. 가을이 그들에게도 찾아와서 아름답다. 힘들게 살며 갖은 고생을 하며 살아왔기에 더 아름다운 가을을 맞이하리라 생각한다. 남편이 아파서 몇 년을 고생하고 떠나보낸 슬픔에 힘들었던 아픔이 많은 분들이다. 세월과 함께 지난날들을 극복하며 살아가시는 분들이 대견하다. 앞으로는 그들이 걸어가는 길이 평탄하고 고은 길이기를 기원해본다.
몇십 년 전 이민 초기의 기억이 새롭다. 두 분 중 한 분이 아무도 아는 이, 친한 이 없는 이곳에 고향이 같다는 한 가지의 이유로 내가 둘째를 해산할 때 한 살짜리 첫애를 일주일 동안 봐주었던 고마움을 결코 잊지 못한다. 밤이 되니 겨우 한 살짜리 큰애가 제 기저귀 가방을 가지고 문에 기대어 집에 가자고 했다는 말을 들으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언제 만나도 그 생각이 먼저 나서 감사한 마음에 손을 잡는다. 세월이 흐르고 서로가 자주 만나지 못해도 가슴속에 있는 추억은 해마다 찾아오는 가을처럼 아름답다. 숲에서 사는 가을도 만나고 오랜만에 고마운 지인도 만난 이 길이 좋다. 사람이 살며 몇 번의 계절을 만나는지 모르지만 만날 때마다 느끼는 이 설렘으로 살아갈 힘이 생긴다. 아무것도 아닌 나무들이나 들꽃이 마음을 편하게 하고 삶을 사랑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