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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Nov 14. 2020

인생사 힘들어도...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다


(사진:이종숙)



다들 살기 힘든다고 한다. 세상사 힘들어도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다고 한다. 무엇이 그리 힘들까 생각했는데 살고 보니 힘들고 무엇이 그리 아름다운가 했는데 역시 세상은 아름답다. 세상이 더럽고 치사하기도 하지만 살아볼 만한 세상이기도 하다. 때로는 떠나는 것이 더 쉬울 것 같기도 하지만 악착같이 마지막 날까지 살아보고 싶기도 하다. 어제의 생각이 오늘과 다르고 오늘의 생각은 내일과 다르다. 하루에도 수백 번 변하는 인간의 생각은 지금은 순간일 뿐 언제나 변한다. 길을 걸으며 생각한다. 멋진 글귀가 생각나지만 그 글귀는 어느새 머릿속을 빠져나가 버린다. 생각하려고 해도 도저히 생각이 안 난다. 당장에 쓸 수 없어 몇 번을 되뇌어도 끝내 똑같은 문장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면 계속 무언가를 쓰게 된다.


무언가를 쓸까 하고 생각할 때는 아무런 생각이 안 나서 쓸 것이 없다가도 막상 이렇게 한 문장을 쓰고 나면 생각의 꼬리가 꼬리를 물고 써 나간다. 막막하던 생각이 물꼬를 틀어 간다. 인생사, 세상사도 마찬가지다. 막연하고 막막해도 길이 있다. 세상이 살기 좋아졌는데 세상은 더 험악해지고 신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지만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많아진다. 참고 기다리는 시대에서 지금 당장을 중시하는 세상이 되어간다. 지금이 힘들어도 내일에 희망을 걸며 살던 시대는 어리석은 시대가 되고 지금이 좋아야 한다. 지금이 백번 중요하지만 어제가 없는 오늘이 없고 오늘이 없는 지금이 없다. 내일 내일 하며 살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끝낸 인생이 많다. 부모형제 자식을 위해 희생하며 한평생 살다 간 사람들이 많아 오늘의 우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은 자신의 어릴 적 삶을 생각하며 평생을 억울해하며 살아가는 지인이 생각난다.




나이 들어 늙어가는 한 친구는 만날 때마다 자신의 희생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고생했던 이야기, 돈을 벌어다 가족을 주었던 이야기, 언니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했던 이야기를 하며 후회의 눈물을 흘린다. 옛날에는 여자이기 때문에, 동생이기 때문에, 형이나 남동생 때문에 할 공부도 못한 채 가정을 돕기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사람들이 많았다. 많은 형제들 때문에 자신을 희생하며 살았던 그녀는 입만 열면 그 말을 한다. 불행했던 부부생활과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애썼던 지난날이 그녀를 슬프게 한다. 지금의 안정된 삶이 있음에도 옛날 것들을 들추며 괴로워한다. 그녀의 선택이었다 해도 형제들그녀의 희생을 몰라라 한다. 그녀의 희생이라고, 본인들을 위한  헌신이 아니라고, 그녀의 아픔을 그냥 묻어버린다. 많은 형제들 중에 유난히 가족을 위해 희생한 사람이 어느 가정에도 꼭 하나씩 있다.


힘든 시기에 어쩔 수 없어 직업전선에 나가 일을 하며 돈을 벌어야 했기에 가족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택한 희생이었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아무도 그 아픔을 모르지만 자신은 안다. 다 들 자기들 살기 바빴다며 른 척 하지만 유독 희생하며 살아온 그녀는 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고생 않고 잘 살아가는 형제들을 보면 후회가 되고 자신의 모습이 처량하다. 그때 다른 형제들처럼 이기적인 선택을 했으면 다른 인생을 살았을 텐데 하는 미련이 생긴다. 옛날에는 없는 살림에 형제들은 많았다. 장남은 장남이라 장녀는 장녀라서 하고 싶은 것 하고, 가고 싶은 데 가며 살았지만 어중간한 중간은 위로 치고 아래로 밀리며 대충 살아갔다. 장남이 잘 되어야 집안이 일어선다고 장남 중심으로 가정이 돌아갔다. 나머지 식구들은 못 먹고 헐벗어도 장남 하나만큼은 가르치고 떠받들었다.




(사진:이종숙)



같은 부모에서 태어났어도 순서에 밀렸던 시절에 가정을 위해 희생하며 살다 나중엔 형제들에게 버림받은 사람들이 많았다. 동생들을 위해 살다가 혼기도 놓치고 늙고 병들어 돈이 필요하면 모른 체하는 동생들에게 실망하고 고통받고 죽어간 사람들도 많은 세상이다. 젊어서는 더 나은 세상이 오리라 생각하며 인내하고 살아오다가 나이는 들고 형제들은 잘 먹고 잘 사는 모습을 보면 가족을 위해 고생했던 날들이 생각나고 억울해진다. 그렇게 살지 않았어도 됐는데 바보같이 살아온 것 같아 억울한 생각에 자신을 미워하고 가족들이 원망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형제들보다 못하지 않은 자신이 낮에는 공장에 가서 일을 하고 밤에는 학교를 다니며 고생하던 생각이 자꾸 난다. 먹을 것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틈틈이 장사를 하며 번 돈을 가족을 위해 내놓았는데 아무도 잘했다고 고맙다고 말해 주는 사람도 없다는 생각에 지난날들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모든 것은 자신의 선택이고 결정이었는데도 나이 들어가는 그녀의 마음은 슬프다. 그렇다고 자신의 희생을 되돌려 받을 수 없고 삶은 여전히 지속된다. 후회와 미련 속에 변하는 것 없이 세월은 간다. 나이가 들수록 후회스러워 견딜 수 없다. 하지만 과거를 돌려받을 수 없다.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의 보상받지 못한 희생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억울해한다. 어차피 지나간 날들인데 어떤 보상을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이야기를 하며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헌신을 보상받는다. 지금에 와서 형제들도 자식들도 다 알아주지 않지만 만나는 사람들에게 위로받으며 보상을 받는다. 사람들은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뒤늦은 후회를 거듭함에 증스러워 듣고 싶지 다. 하지만 시간은 많고 할 일은 없는데 지난날이 자꾸 그녀의 발목을 잡으며 들추어내라고 한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날들을 보상받고 싶어 하는 그녀는 오늘도 억울해서 징징대고 산다.



(사진:이종숙)



그녀의 아픔은 그렇게 함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상처이기에 그녀는 오늘도 가슴속에 아픔을 끄집어내며 위로받고 싶어 한다. 누구나 가슴속에 풀어지지 않는 응어리를 가지고 산다. 억울했던 일, 상처 받은 일이 있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다시 태어나면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일도 있다. 인간의 삶은 계산이 안된다. 더하기 빼기가 안되고 곱하기 나누기가 안된다. 살다 보면 엉뚱한 일이 생겨 꼬이고 풀리고 하며 흘러간다.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하고 가고 싶은 길을 가지 못하고 생각지 못한 삶을 살아간다. 다른 사람의 큰 아픔보다 나의 작은 아픔이 더 크다. 상처 받고 아파하는 사람을 위로하는 것은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 모금 주는 것이다. 숨을 못 쉬는 사람에게 숨통을 열어주는 것이다. 위로는 특별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공감하며 그의 아픔을 들어주는 것이다.


시간이 없다고, 한 얘기 또 한다고 짜증이 나겠지만 그 순간에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들어주면 된다. 혹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떠난다. 오늘도 그녀는 지나간 이야기를 하며 치유받는다. 할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지만 수없이 반복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또한  지나간 삶을 되돌아본다. 남을 위로하고 공감하는 것은 결코 남을 위함이 아니고 나 또한 위로받는 것이다. 바쁜 세상에 남의 이야기 들어줄 시간이 없어도 인간의 아픔은 함께할 때 치유받을 수 있다. 말하지 못한 나의 아픔도, 나의 슬픔도, 타인의 삶을 통해 외롭지 않음을 안다. 나의 마음을 타인의 입을 통해 알아가기에 오늘도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남자들이 죽는 순간까지 군대 이야기를  하며 영웅심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듯이 그녀의 희생과 헌신의 이야기는 계속되어 사람들에게 보상받는다.


그것은 그녀의 이야기만이 아니고 말하지 못한 채 안으로 삭이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에 우리는 그녀에게 위로받는다. 나의 고통을 남을 통해 위로받는 세상은 힘들지만 아름답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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