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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Nov 13. 2020

지금 사랑하고... 지금 살아있으면 된다


(사진:이종숙)



하늘은 다시 파란 얼굴로 인사를 한다. 눈을 잔뜩 안고 하얗던 하늘이 다시 파란 얼굴을 하고 세상을 내려다본다. 눈을 다 쏟아 내니 속이 시원한 듯 햇볕과 함께 눈부시게 빛나고  며칠전에 온 눈은 뜰에 얌전하게 앉아있다. 그토록 오지 않기를 바랐는데 기어이 와서 자리를 지키는 겨울이다. 급하게 가버린 가을이나 가을이 가자마자 서둘러 온 겨울이나 갈 때 가고 올 때 오는 계절이니 누가 감히 뭐라 할 순 없지만 이렇게 갑자기 오니 할 말이 없다. 그래도 왔으니 친하게 지내다 보내야 봄을 맞는다. 세상일이란 게 싫다고 하면 더 싫어지는 것이니까 좋게 좋게 넘어간다. 가을이 가도 겨울이 와도 특별히 변하는 게 없지만 겨울은 괜히 사람을 우울하고 막막하게 만든다. 갑자기 한꺼번에 내린 눈으로 많은  차사고가 났단다. 눈은 오고 날씨는 춥고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차사고가 나면 정말 황당하다.


하루하루 아무일 없이 무탈하기를 바라며 자연이 초대한 겨울과 동행해야 한다. 눈이 온다고 집에만 있을 수 없고 길이 미끄럽다고 꼼짝하지 않고 살 수도 없다. 갈 데 가고, 만날 사람 만나며 , 할 일을 해야 하는데 갑자기 내린 눈은 이래저래 사람들의 삶을 피곤하게 만든다.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지내도 세월은 빨리 간다. 매일이 주말이고, 공휴일이고, 연휴인 삶에 날짜도 요일도 잊어먹고 산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잠을 잘 때까지 머리로 끊임없이 생각하고 몸은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하지만 뚜렷이 눈에 보이는 것은 없다. 일이 같은 생활이지만 먹고 놀고 자는 것을 반복하기에도 바쁘다. 때가 되면 밥을 하고, 먹고 나면 치우고, 하루만 안 해도  어디선가 날아오는 먼지를 치우면 또 점심때가  된다. 밥해먹고 치우고 낮잠 자다 일어나서 간식하고 앉아서 뉴스보다 보면 저녁때가 된다.


간단하게 먹고 나서 드라마 보며 빨래 거리를 정리하다 보면 어느새 잘 시간이다. 매일이 같지만 끝이 안 나기에 사람이 살 수 있나 보다. 매일이 똑같은 듯 다르기에 몇십 년을 계속할 수 있는 것 같다. 싫증이 날만도 한데 그렇지 않은 게 신기하다. 새로운 것을 찾아 이것저것을 배우고 여기저기 구경 다니며 살 때나 특별한 일없이 사는 지금이나 그게 그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딜 다녀도, 무얼 배워도, 많이 알아도 다 그렇고 그런 것 같다. 세월의 배를 타고 지금까지 오는 동안 이런저런 많은 일을 겪으며 살아왔다. 미친 듯이 뛰고 죽을 듯이 살아온 세월이 결국 지금의 평화를 얻기 위함이다. 더 많이 갖기 위해, 더 높이 오르기 위해 발버둥 친 날들은 인생의 폭풍과 쓰나미였다. 다 파묻히고 다 쓰러져버린 모습을 보며 살기 위하여 다시 일어나야 했다. 기억 조차 희미해진 날들이 가고 어제 한일도 생각이 안 난다.


말을 하다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고 산다. 생각하다 생각 안 나면 그만둔다. 생각도 없이 단순하게 살아서 그런지 걱정을 하다가도 만다. 옛날에는 걱정거리가 있으면 뿌리를 뽑아야 직성이 풀렸는데 지금은 잘 되겠지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해결해준다. 싫은 것도 별로 없고, 미운 사람도 별로 없다. 싫으면 안 하면 되고 미우면 안 보면 된다. 굳이 만나서 왈가왈부하며 잘했네 못했네 하며 따지고 싶지 않다. 내가 하고 싶은 것 하고 좋아하는 사람 만나며 살면 된다. 나 싫다는 사람 만날 시간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도 다 하지 못하는데 싫어하며 욕하며 살고 싶지 않다. 세월 따라 사람이 늙듯이 인간관계도 길고 짧음이 있다. 가늘고 길게 가기도 하고 굵고 짧게 가기도 한다. 사하게 이어지기도 하고 허망하게 끊어지기도 한다. 싫어도 지지부지 만나게 되기도 하고 좋아도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되기도 한다.



(사진:이종숙)



만날 것 같아도 못 만나고 헤어질 것 같아도 만나게 된다. 끝났나 하다가도 연결이 되고 연결이 되어도 의미 없이 그냥 만나기도 한다. 좋았다가 싫어지기도 하고 싫었다가 좋아지기도 한다. 영원할 것 같다가도 순간의 오해로 어지기도 한다. 이렇듯 인간관계는 사람 목숨과 같다. 오래 살고 싶다고 오래 살 수 없고 죽고 싶다고 죽을 수도 없다. 살다 보면 살아가고 때가 되면 죽게 된다. 아무리 준비를 잘한 사람도 황당하게 죽을 수도 있고 준비 없이 살던 사람도 깨끗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게 사람의 운명이다. 무엇이 옳고 그름은 책에 있을 뿐 삶은 현장에 있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세상이 알아서 한다. 집착과 욕심은 금물이다. 혼자 좋아하고, 혼자 실망하며, 절망 속에 살아갈 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벌건 대낮에 햇볕이 쨍쨍 내려 쬐는데 비가 오는가 하면, 시커먼 구름이 하늘을 덮었는데도 비 한 방울 오지 않는다.


우리 인간들의 생각은 그저 상상이지 해답은 아니다. 세상 곳곳에서 심사 위원이 있어 인간들을 등수를 먹이고 기쁨과 슬픔을 나눠준다. 합격하면 웃고 떨어지면 운다. 합격했다고 완벽한 것도 아니고 떨어졌다고 부족한 것도 아닌데 하나는 울고 하나는 웃는다. 심사위원도 수험생도 인간인데 갑과 을의 관계로 세상이 갈라진다. 세상이 불공평한 것 같지만 그래야만 세상이 굴러간다. 자연은 그렇지 않다. 크고 작고, 굵고 가늘고 한 것들이 함께 상생한다. 구부러졌다고 꺾어버리지 않고  비틀어졌다고 내치지 않는다. 작다고 밟지 않고 추하다고 뽑아버리지 않는다. 있는 대로,  생긴 대로 그냥 살다 간다. 손가락질하며 미워하지 않고 같지 않다고 싫어하지 않는다. 물은 물살을 따라가고 산은 산길을 만들며 존재한다. 잘났다고 뽐내지도 싫다고 변심하지도 않는다. 어제를 살아왔듯이 오늘을 살고 내일을 맞는다.


특별한 것을 원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살아간다. 저마다의 모습에 감사하고 저마다의 할 일을 하면서 있다가 사라진다.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인데 인간이라고 다를 것 없다. 자연이나 인간이나 하루를 받고 하루를 살다 언젠가 떠나는 것은 마찬가지다. 누가 잘나고 누가 못나고 없이 다 같은데 인간이 만들어낸 등수에 점수를 먹이는 것은 합당치 않지만 세상엔 세상의 법이 있다. 못난 사람도 잘하는 게 있고 잘난 사람도 못하는 게 있다. 못 생긴 사람도 예쁜 구석이 있고 잘생긴 사람도 흉한 구석이 있다. 잘되고 못되고는 세상이 말한다. 아무리 좋은 말도 여러 번 들으면 듣기 싫고 듣기 싫은 말도 들어서 나쁠 것 없다. 상은 이렇게 돌고 돌고 사람도 그렇게 돌고 돈다. 오늘 내게 온 삶은 내 것이고 내일은 또 다른 삶이 나를 찾아올 것이다.


오늘 힘들다고 주저앉지 말고 지금 좋다고 남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공기가 순환하고 물은 흐르다가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 지금은 영원과 함께 있어 인간도, 자연도 함께 공존한다. 단순하게 살며 생각 없이 사는 게 좋다. 너무 복잡하면 삶이 피곤하다. 오늘 살면 되고 내일이 오면 맞으며 또 다른 오늘을 살면 된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너무 신경 쓰지 않는다. 오랜 세월 알고 지냈다고 앞으로 계속 연결될지 말지 사람일은 모른다. 싸우고 지지고 볶으며 오래가는 사람의 관계도 있고 한 번의 충돌로 싹둑 잘라지는 인간관계도 있다. 오늘 좋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면 된다. 강제로 이어질 수 없는 것이다. 내게 온 것이 싫다고 뿌리칠 수 없고 도망칠 수 없다. 태양은 영원히 떠오르고 지구는 끊임없이 도는 진리 안에서 살면 된다.


지금 사랑하고 지금 살아있으면 된다. 더 이상 원하면 욕심이 되고 마음은 불편해진다. 그저 자연의 섭리를 따라 살면 된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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