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그대로인데 세상은 자꾸 변한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가는 척하던 여름이 그냥 이대로 물러갈 수 없다며 되돌아왔다. 어제오늘 무척 더운데 다행히 바람이 조금씩 분다. 아들 집 근처에 좋은 산책길이 있어 손주들과 산책을 나갔다. 아직도 다리 공사가 끝나지 않아 산책길은 닫혀있고 숲 속에 오솔길로 들어가서 걸어본다. 방학 동안에 집에서 하루 종일 컴퓨터만 들여다보고 있을 것 같아 같이 가자고 했더니 순순히 따라 나온다. 모기약을 뿌려서 모기는 덤비지 않아 좋다. 모기들이 근처에 왔다가 냄새를 맡고 슬그머니 가버린다. 모기들도 약아져서 뱅뱅 돌다 그냥 가버려 다행히 걷는 데는 방해가 되지 않았다. 숲이 우거져 있는 오솔길은 혼자 걷기에도 좁지만 한 길로 나란히 걸어서 간다. 1주일 만에 왔는데 이름 모를 들꽃들이 많이 폈다. 망초들과 섞여 있는 연보라색 꽃이 참 예쁘다.


꽃들이 여기저기 떼 지어 피어있고 계곡물이 흐르는 완연한 여름이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눈이 와서 겨울이 가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오겠다는 여름을 이기지 못하고 겨울은 떠나갔다. 싹이 하나둘 올라오며 숲을 덮기 시작하며 꽃이 피더니 어느새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여기저기서 이름 모를 열매들이 빨갛게 익어가고 어느새 산딸기도 빨간 얼굴을 내밀고 있다. 자연을 모르고 자라는 손주들이 자연과 친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데리고 나왔는데 별로 흥미가 없는지 발길을 재촉한다. 물론 모기가 덤비고 벌들이 윙윙 대는 산길이 좋을 리는 없겠지만 한두 번 오다 보면 나름대로 좋아질 것 같다. 계곡물을 따라 걷다가 오솔길을 걷다 보니 제대로 포장된 산책길이 보인다. 손주들이 숲 속의 오솔길이 무서웠던지 바로 큰길로 가자고 한다. 새들이 날아다니며 지저귀고 날것들이 오고 가며 인사를 한다.


날씨가 더워지고 땀이 흐르기 시작하니 손주들이 집으로 가고 싶단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가자고 해서 따라 나왔지만 볼 것이라고는 나무와 풀들이어서 별 재미가 없는 모양이다. 그래도 사진도 찍고 꽃도 보며 새소리도 들으며 손주들과 걸으니 더 이상 큰 행복이 없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먹고사는 것 때문에 이런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세월이 갔지만 손주들과는 함께 하고 싶은데 그것도 우리들 마음뿐 아이들은 컴퓨터를 하며 소파에서 뒹구는 게 더 좋은가보다. 나이 차이나 세대차이는 커다란 장벽을 만든다. 아무리 이곳에 오래 살아 언어문제가 없어도 아이들과의 대화는 한계가 있음을 느낀다. 좋은 것을 보여주고 싶은 우리 마음인데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것일 뿐 아이들은 별로라 생각한다. 신나는 게임을 하고 화려한 놀이터에서 번쩍번쩍 불빛이 비추는 곳에서 놀고 싶어 한다.


(사진:이종숙)


장난감도 실용적인 것보다 창조적으로 만들어져 나온 것을 찾는 시대가 되었다. 뭐든지 보여주고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컴퓨터의 매력으로 부모 자식 간의 대화가 단절된다. 야단치고 잔소리하는 부모와 같이 있는 것보다 원하는 대로 마음껏 보고 웃을 수 있는 것을 선택한다. 친구와 같이 밖에서 뛰어노는 것보다 혼자서 손가락으로 이것저것 찾아가며 재미있게 논다. 가상 인물을 진짜 인간으로 착각하고 모든 것들을 따라 한다.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짜깁기해서 만든 가상인물이 세상을 판치고 있다. 완벽한 모습으로 현혹하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은 그것을 믿고 모방하고 어른들은 알면서도 속는다. 세상은 우리 세대가 알고 있던 세상이 아니다. 발전한 정도가 아니고 뒤집혔다. 앞으로 어떤 단계까지 변화될지 모르지만 두렵기도 하다.


언어는 같은데 서로 알아듣지 못한다면 서로 간의 대화는 불가능하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옛날의 한국말이 아니다. 한국말에 영어를 섞어서 쓰기 때문에 잘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고 어느 길이 정도인지도 모르는 세상이 되었다. 아이들의 기를 살려 주기 위해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지나쳐 아이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못한다. 아이들이 싫다면 싫은 것이고 강제로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민주주의가 지나쳐 방관을 해야 할 판이다. 그나마 손주들이 아직은 어리기에 할머니 할아버지를 따라다니지만 앞으로 더 크고 세상이 변하면 완전한 개인주의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 어릴 적에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장터를 따라다니고 사주시는 호떡 하나에 행복해하던 그때가 좋았다. 고생하시는 부모와 형제들을 위해 희생을 주저하지 않았고 작은 것도 나누고 좋은 것은 다른 형제에게 건네주며 헌신하던 시대는 옛이야기가 되었다.


해가 내려 쪼이고 뜨거운 바람이 오고 간다. 세상이 더 변하기 전에 손주들과 더 많은 추억을 쌓고 싶은 건 나의 욕심일지도 모른다. 하루하루의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은 자라더라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들을 사랑한 것만 잊지 말기를 바라며 함께 걸어서 고마웠다고 말하며 집을 향한다.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하지 않고 원하는 것만 하게 하는 요즘 세상에 나는 할머니가 된 것이 또한 고맙다. 예전에 아이들 키울 때는 거의 강제나 독재가 통하던 세대였는데 지금 아이들은 어림도 없다. 개인의 취향과 의견이 존중되는 것도 좋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주며 사는 세상이 되었다.


무엇이 옳을지는 알 수 없고 세월이 흐른 뒤에 세상이 판단하리라 믿는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자라고 꽃이 피고 지는 자연은 여전한데 세상도 사람도 자꾸만 변한다.

(사진:이종숙)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오고 가는 새로운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