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게 모르게 품어준 이웃이 고맙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하릴없는 까마귀들이 동네를 깨운다. 별것도 아닌 것에 목청 높이고 깍깍댄다. 밖은 여전히 연기에 쌓여 뿌옇고 구름은 하늘을 덮고 있다. 비를 뿌리던지 아니면 해를 보여주든지 하면 좋을 텐데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오만을 떤다. 인상을 쓰고 찬바람을 불어대며 여름을 방해한다. 동네 한가운데 청소차가 와서 시끄러운 모터 소리를 내며 윙윙대고 서 있다. 사람들은 쥐 죽은 듯 가만히 있어도 세상은 돌아가는 게 신기하다. 아무도 살지 않는 듯한 동네 같은데 저런 차들이 들랑거리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살고 있음이 확실하다. 어제 하루 종일 연기 때문에 집콕을 했지만 오늘은 아무래도 바람을 쐬어야 할 것 같아 동네 한 바퀴 돌아볼 예정으로 나왔다. 매일 보는 동네의 모습이지만 매일이 새로운 것은 나 몰래 피고 지는 꽃들과 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수줍은 듯 봉우리 져 있던 꽃들이 어느새 활짝 피어 웃고 있는 것을 보면 다가가지 않을 수 없이 반갑고 예쁘다. 어린 나무들이 안보는 사이에 훌쩍 큰 모습에 놀란다. 매일 어릴 줄 알았던 아이들이 세월 따라 성장한 것처럼 의젓하다. 세월을 잡을 수 없다. 흐르는 강물처럼 빠르게 간다. 까마귀는 멀리서 가까이서 무슨 큰일이나 생긴 것처럼 계속해서 시끄럽게 짖어 댄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별것 아닌 것도 그들에게는 별 것일지도 모른다. 까마귀 한 마리가 무언가를 입에 물고 흔들어 대는데 다른 까마귀가 오더니 빼앗으려고 하고 어디선가 까치 한 마리가 다가온다. 눈치를 보면서 함께 날아가 나뭇가지에 앉는데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알 수 없다. 길을 건너 성당 방향으로 걸어간다. 소나무 아래에 부드러운 풀밭에 토끼가 낮잠을 자고 있다. 세상 편한 모습이다.


눈을 뜨고 있지만 꼼짝 하지 않는 게 자고 있나 보다. 작년 봄에 학교 건물 아래에 늑대가 새끼를 낳고 기르는 동안은 토끼의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늑대가 운동장을 점령하고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밤낮으로 지키고 서서 운동장을 바라보고 서 있어서 토끼는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었다. 동네를 걷다 보면 인기척에 개들이 짖으며 난리를 치는데 개가 어떻게 아는지 늑대가 동네를 다니는 줄 알고 한동안 짖지 않았다. 동물들의 본능이 참으로 기가 막히고 신비롭다. 조금 떨어진 곳에 짝인듯한 토끼 한 마리가 폭신한 땅을 파고 앉아 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짝지어 사는 게 신기하다. 성당 주차장은 텅 비어있다. 원래 월요일은 성당이 노는 날이긴 하지만 코로나의 창궐로 더없이 조용하다. 누군가가 기부를 했는지 없던 나무 한그루가 성당 앞에 심어져 있다.


성당 출입문에는 여러 장의 안내 종이들이 붙어있다. 코로나가 가져다준 새로운 모습이다. 신자들이 성당에 나오지 못하게 되고 어쩌다 오는 신자들을 위하여 이런저런 소식을 알려주는 것이다. 물론 웹사이트도 있고 이메일도 있지만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신자들을 위한 방법이다. 성당을 지나 길을 건너면 자그마한 동네 쇼핑몰이 있다. 약국과 치과가 있고 의사 사무실도 있다. 주유소와 몇 개의 식당이 있고 잡화상과 은행도 있다. 쓰레기통을 뒤져서 먹고사는 갈매기들의 아지트가 있는 곳이다. 식당 근 처에서 맛있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밥을 먹고 나왔는데 배가 고파진다. 서서히 걸어가다 보면 어린이 집이 있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논다. 미끄럼을 타고 그네도 타고 모래로 성을 쌓기도 하고 플라스틱 그릇을 가지고 소꿉장난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한 울타리 안에서 노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어디서 날아온 몇 마리의 새들이 하늘을 빙빙 돌다가 날아간다. 심심하니까 나처럼 여기저기 기웃기웃 하나 보다. 그 옆에는 커다란 학교가 있다. 재수를 하는 학생들을 위한 교실이 많은데 얼마 전까지 코로나 검사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요즘엔 학생들이 들락거린다. 학교 정문 앞에 의자가 하나 있어 잠시 앉아본다. 나무 아래에 앉아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여전히 구름이 껴있고 해는 보이지 않는다. 바람도 불지 않고 나무들은 꼼짝 않고 풀들도 재미없는지 힘없이 늘어져있다. 멀리 학교 운동장에 아이들이 뛰어논다. 각자에 맞는 놀이를 하며 열심히 논다. 농구를 하기도 하고 축구도 한다. 달리기를 하고 그네도 탄다. 순간을 최대한으로 웃고 즐긴다. 특별한 것도 아닌데 재밌어한다.


나도 애들처럼 그랬으면 좋겠다. 별것도 아닌데 심각하게 살 필요 없는데 괜히 복잡하게 산다. 하늘처럼, 나무처럼 있는 대로 살고 싶다. 바람이 분다. 더워서 쩔쩔 맺는데 추워서 쩔쩔맬 시간이 다가온다. 심심해도, 하릴없어도 신나게 떠들어 대는 까마귀가 전나무 꼭대기에서 아는 체한다. 몇 번 봤다고 반가운가 보다. 코너 집이 보인다. 애 넷을 키우며 차를 고치며 사는 사람들인데 올해는 마당에 꽃을 많이 심었다. 빨갛고 노랗고 하얀 꽃들이 타이어로 만든 화분에서 잘 자라는 게 보기 좋다. 꽃을 심으니 동네가 훤히 보인다. 꽃이 무엇인지 세상이 달라 보인다. 작년에 담장을 새로 했는데 너무 높아서 답답해 보이지만 나름대로 그런 담장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음을 알게 됐다. 사람들의 취향과 생각은 정말 천차만별이다. 그 옆집은 안팎으로 고쳐서 깨끗하게 고쳐 놓더니 복덕방에 내놓았다. 요즘엔 많은 사람들이 집을 사기 때문에 집값이 많이 올랐는데 좋은 가격을 받으면 좋겠다. 오랫동안 우리 식구를 품어준 우리 집을 향한다.


동네를 돌며 이런저런 모습을 본다. 집도 각각이고 사는 모습도 다 다르다. 하는 일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고 인종도 다르다. 모두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동네를 이루고 살아간다. 긴 세월 동안 살아오면서 친하게 오가는 사람이 있고 만나면 손만 흔들고 지나치는 사람도 있지만 한 번도 만나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도 많다. 한동네에서 말없이 지내는 사람도 고맙고 친절한 사람도 고맙다.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아무런 일없이 긴 세월 함께해준 이웃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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