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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와 친절로 친구가 되어 산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전화번호 명부를 본다. 친한 사람이 있고 친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친했던 사람도 있고 미워하는 사람도 있다. 영원한 친구가 되자고 했던 사람도 있고 그냥 스치고 지나가던 사람도 있다. 옛날처럼 손바닥만 한 수첩에 전화번호를 적어 다니던 시대가 아니고 전화번호가 자동으로 들어온다. 싫은 사람은 거부할 수 있지만 사람은 오늘만 살고 마는 것이 아니기에 그럴 수 없다. 오늘 좋았다가 싫어질 수도 있고 별로였던 사람이 친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지우지 않고 보관한다. 집전화번호를 기억하는 사람은 옛날부터 알던 친구다. 요즘엔 누구나 핸드폰을 사용하니까 집전화는 거의 없다. 전화번호를 정리해보면 어디서 무얼 하고 사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 친한 사람도 전화는 잘 안 하고 톡만 하고 사는 세상이다. 하고 싶은 말도 전할 말도 다 톡으로 하면 간단하고 신속하다.


전화로 하면 안부를 물어가며 상대방 기분도 살펴야 하니까 아무래도 길어진다. 안 그래도 시간 없이 바쁘게 사는 사람들에게 긴 통화는 어쩌면 민폐가 될 수 있다. 전화도 하지 않고 만나지도 않는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는데 여전히 가지고 산다. 그들은 친구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지금 만나지 않고 보고 싶지도 않아도 서로가 어느 시점부터 알게 되었고 친하지 않아도 서로를 위해 무언가를 기원한다. 길에서 우연히 만나 인사를 주고받을 때 전화번호부에 있는 사람은 더 반갑다. 여행을 하다 보면 생판 모르는 사람과도 친구가 되는데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은 기회가 없어서 친하지 못했다 뿐이지 어쩌면 알게 모르게 마음이 통하는지도 모른다. 사람의 관계란 미묘하여 갑자기 친해지기도 하고 순식간에 원수가 되기도 한다. 친한 사람들끼리 매주 만나고 같이 운동하고 함께 여행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하루라도 안 보면 궁금하고 보고 싶고 무엇이든지 같이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무언가의 오해로 철천지 원수가 되는 경우를 본 다. 제삼자 입장에서 보면 별것도 아닌 일로 원수가 되어 사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다. 이유가 있겠지만 길어야 백 년도 못살고 가는 인생이다. 결혼하기 전에 그 많던 친구들은 결혼 후에 조금씩 멀어지고 이민 온 뒤로는 많은 친구들과 연락을 못하고 살았다. 어쩌다 한국에 가면 몇몇 친구들과 연락이 되어 만나지만 멀리 떨어져 살기 때문에 뜸하게 된다. 카톡이 생겨난 이후 마음이 있으면 서로 연락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잘 되지 않는다. 젊을 때는 살기 바빠서 못 만나고 지금은 지금대로 뭐가 바쁜지 연락 없이 지내게 된다. 이곳에 산지 오래되고 보니 이웃사촌이 최고다. 친구는 자주 만나야 정이 들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데 교회에서 만나고 식당에서 만나고 이런저런 모임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친구가 된다.


만나면 이민 올 때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할 줄 모르던 영어로 실수하던 이야기까지 하면 배꼽을 잡고 웃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같이 고생하고 같이 일하며 같이 실수하며 살아서 그런지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친구들은 오랜만에 만나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서로를 알고 있기에 꾸밀 것도 없고 으스댈 필요도 없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앞으로도 함께 걸어가면 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언젠가는 먼저 가야 하고 보내야 한다. 이민 역사가 길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자식들 사는 곳으로 이사를 가기도 하고 아파서 연로해서 떠났다. 코로나 때문에 오랫동안 만날 수 없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살아생전 영원히 살 줄 알고 다음에 언젠가 만나리라 생각하고 지냈는데 언젠가는 오지 않았다.


전화 번호부를 보며 떠난 사람의 이름을 발견하고 지나간 추억을 들춰본다. 좋은 기억을 남긴 사람도 있고 나쁜 기억을 남긴 사람도 있다. 얌체 같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사람이 있고 고마운 사람으로 남은 사람도 있다. 질투가 심한 사람도 있고 남을 무시하던 사람도 있다. 사람은 살다가 죽는다. 잘살고 못살고의 차이는 후세의 사람들이 말한다. 나에게 잘한 사람은 아이들을 통해 고맙게 기억되고 나를 시기하고 질투한 사람도 아이들에게 전해져 기억하게 된다. 사람이 좋기만 할 수 없고 나쁘기만 하지도 않다. 좋을 때는 모든 게 좋아 보이다가 싫어지면 다 싫어진다. 가까이 지내다 보면 보지 않아도 될 것을 보게 되고 나중에는 그 모든 것들이 흉이 된다. 코로나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서로를 보호한다. 인간 관계도 거리두기를 하면 오래도록 친하게 지낼 수 있을 텐데 그게 안된다.


거리를 두면 냉정하다고 말하고 이해타산적이라고 한다. 예의를 지키고 양심껏 의리를 지키면서 살면 오래도록 좋은 관계가 유지되련만 쉽지 않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인간관계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조금 서운하면 뒷담을 하고 조금 마음에 안 들면 나쁜 평으로 사람을 죽인다. 전화번호부에 있어도 남처럼 살고, 없어도 친한 관계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름만 친구인 사람들이 많은 세상보다 친구는 아니어도 친절과 미소를 주고받는 사람이 좋다. 친하던 사람이 오해하고 모른 체하며 지나가는 것보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오고 가며 웃음을 주고받으며 사는 게 더 좋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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