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왜 이리 좋은지 모르겠다. 너무 좋아도 이상하다. 세상은 비틀거리는데 하늘은 여전히 할 일을 한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고 바람조차 잠을 잔다. 사람들은 일요일 아침잠을 즐기는지 아무 소리도 내지않고 고요하다. 지나가는 차조차 없으니 쥐도 새도 가만히 있는 듯 세상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아무것도 할 것이 없고 아무런 일도 없다. 그냥 이대로 하늘을 보고 있으니 머리가 개운하다. 사람 사는 게 별것 아닌데 특별한 것을 만들려고 하기에 걱정 근심이 마음에 자리를 잡고 괴롭힌다. 할 말이 많은데 할 말을 다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생각이 너무 많아서 갈팡질팡 하고 있는 것이다.
길이 많은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며 산다. 이 길이 좋을까, 저 길이 편할까, 이 길이 빠를까, 저 길이 덜 힘들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가던 길을 되돌아오기도 하고 멀리 돌아서 가기도 한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길에서 사람들이 갈길을 알지 못해서 방황한다. 어릴 적에는 부모가 하라는 대로 살고 자라서는 친구들과 함께 걷는다. 결혼 후에는 남편과 자식을 위하는 길을 걸어가고 아이들이 분가한 뒤에는 부부 둘만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세상에는 수많은 길이 있다. 길고 짧은 길이 있고 험하고 거친 길이 있다. 높고 낮은 길이 있고, 평평하고 안전한 길이 있다. 어느 길은 편하고 어느 길은 힘들다. 세상에는 보기에 좋고 편하고 아름다운 길은 많다. 하지만 그토록 아름답게 보이는 길을 걸어보면 그곳도 고통이 있다.
가다 보면 비바람도 만나고 맹수도 만난다. 파란 하늘에 구름도 흘러 오고 비도 품고 있다. 하루하루가 다른 모습을 하고 다가온다. 언제 어느 때 무슨 모습을 하고 나타날지 모른다. 한두 번 만나고 이루어지는 인연도 있고 10년 을 사귀다가 결혼 후에 헤어지는 인연도 있다. 고생하며 살다가 살만하다 싶은데 병에 걸려 죽기도 하고 죽을병에 걸렸는데 고비를 넘기고 오래 사는 사람도 있다. 날씨가 너무 좋아 여름이 다시 오나 생각하는데 난데없이 먹구름이 하늘을 덮는다. 세상이 깜깜한 게 비가 올 것 같다. 바람이 심하게 불고 단풍 든 나뭇잎들이 나무에서 떨어지고 낙엽이 여기저기 뒹군다. 굵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예기치 못한 날씨다. 장대비가 지붕과 벽을 마구 때리며 땅으로 곤두박질치고 우박도 동참하면서 세상을 마구 때린다.
그토록 깜깜하던 서쪽 하늘이 밝아 온다. 무섭게 쏟아지던 비가 멈추고 해가 얼굴을 내밀며 하늘에 쌍 무지개를 예쁘게 그려놓는다. 비와 해가 만나서 무지개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사람이 잘 도착했다고 소식을 전하나보다. 그곳에는 아픔도 슬픔도 없이 아름답고 편하다고 전하는 것 같다. 한참 동안 세상을 내려다보던 무지개가 자리를 양보하고 사라진 하늘은 다시 파랗다. 비가 온 흔적도 없고 바람이 다녀간 모습도 없이 맑고 푸른 세상이다. 자연처럼 인생도 그런 것 같다. 슬픔과 기쁨이 숨바꼭질하고 고통과 환희가 들락날락하는 사이에 울고 웃으며 산다. 어제의 아픔은 잊고 오늘을 살아야 하고 오늘의 슬픔을 딛고 내일을 맞아야 한다.
선택이 없는 선택 속에 선택을 하며 삶은 지속된다. 여름을 떠나보내고 가을을 맞으며 자리를 지키는 나무가 된다. 서서 겨울을 맞고 보내다 보면 또 봄이 찾아와 꽃이 피고 새들이 노래를 부를 것이다. 떠난 계절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잡을 수 없고 오는 계절을 막을 수 없다. 인간이 애원해도 자연은 제 갈길을 간다. 무정하게도 인간의 울부짖음에 상관없이 할 일을 한다. 홍수와 폭설이 오고 가고 전염병과 기아가 범람하는 세상은 희망도 없고 내일도 없어 보이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태어나 살아간다. 희망이 없고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만둘 수 없는 게 삶이다. 오늘 슬퍼도 내일의 기쁨을 위해 앞으로 걸어야 한다. 생각지 못한 일로 마음이 아파도 또 다른 날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
삶은 외 줄타기 라 한다. 순간의 실수로 수만리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한걸음 두 걸음 걸어가면 우리의 목적지에 다다를 것이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가야 할 종착역은 우리를 기다린다. 거부와 원망으로 피할 수도 없고 후회와 미련으로 바꿀 수도 없는 게 인생이다.어제가 오늘이 되었듯이 오늘도 어제가 되고 내일은 오늘이 된다. 모르던 내일이 나를 만나러 온다. 어제가 된 오늘을 보내고 새로운 오늘을 맞이하자. 맑은 날이 흐리고 비가 오다가 무지개를 만들어 놓고 맑게 갠다. 어제의 설움일랑 비바람에 날려 보내고 무지개처럼 예쁜 오늘을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