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매일 밤 꿈을 꾼다. 기억나는 꿈이 있고 세월이 가도 뚜렷하게 생각나는 꿈이 있고 잠을 깨자마자 사라져 버리는 꿈이 있다. 밤마다 꿈을 꾸며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무언가를 하며 울고 웃는다. 잠을 자면서 몸은 침대 위에 누워 있지만 영혼은 나를 데리고 다니며 밤에 자는 동안 찾아오는 꿈이라는 손님과 논다. 엉뚱한 일이 있고 생각지 못 한 곳에 가서 아는 사람들을 만난다. 죽어서 저세상 사람이 된 사람도 나타나는데 꿈에서는 모두 살아있다. 생시처럼 반가워서 웃고 울며 여기저기 함께 다니며 도란도란 이야기도 한다. 꿈 이야기를 저장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간혹 한다. 머릿속에 칩 하나를 넣어놓고 사진도 찍고 말소리도 녹음하며 사진을 찍어 나중이 보고 듣고 하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꿈에서 만난다.
5년 전에 떠난 아버지와 남동생이 멋진 신사복을 입고 모자에 꽃을 꽂고 나타났다. 특별히 할 말은 없었지만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이 평화롭다. 이 세상의 시름을 다 잊고 저세상에서 잘 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서 고생하고 사는 게 힘들어서 고생하며 살다 갔는데 삶에 지친 모습이 아니라서 좋아 형제들에게 꿈 이야기를 하며 옛날로 돌아가 한참 동안 추억 속에 있었다. 갑자기 소식을 끊은 친구가 있다. 늘 다정하던 친구인데 연락을 하지 않아 몇 번 메시지를 보냈지만 소식이 없다. 생시에 마음을 써서 그런지 꿈을 꾸었다. 몸이 너무 안 좋아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고 하여 둘이 한참을 울고 깨어 다시 메시지를 보냈지만 소식 불통이다. 가까이 살고 있지만 사정이 있겠지 하는 생각에 기다린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서두를 필요 없다.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날 것이다.
사람의 인연을 사람이 끊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싫어도 좋아도 인연은 이어진다. 살아서 만나지 못한 사람은 죽어서 꿈에서 만난다. 얼마 전에 가까운 지인이 떠났다. 한때 무척 친하다가 한동안 뜸하게 지낸 지인인데 늘 고맙게 생각하는 분이다.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갑자기 병마가 찾아와서 순식간에 떠났다. 코로나로 간소한 장례를 치러 나중에 소식을 전해 들어 알게 되어 너무나 황당했던 기억이 난다. 서운한 마음을 알기 라도 하는 듯이 곱게 차려입은 그녀가 꿈에 나타났다. 여전히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그녀는 생시처럼 또렷한 모습으로 세 번씩이나 나를 찾아오더니 요즘엔 보이지 않는다. 생시에 만나지 못해서 꿈에 만나러 온 것 같아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녀의 남편에게 전화해서 위로의 말을 전하며 꿈 이야기를 했더니 무척 좋아하시던 생각이 난다.
살아가면서 마지막으로 할 말을 못 하고, 만나보지 못하고 헤어지면 꿈을 통해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 생시에 좋아하던 사람들을 꿈에서 만나면 여전히 좋다. 싫어하는 사람은 꿈에서도 별로다. 이승과 저승은 다리 하나, 강하나 건너면 된다 는 소리가 있지만 영혼은 꿈에서 만난다. 다리나 강을 건널 필요 없이 꿈속에서 만난다. 그리운 사람을 꿈에서라도 만났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영혼과의 인연이 없으면 그것도 안된다. 보고 싶다고 누구에게나 나타나지 않고 영혼이 찾아와야 한다.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고 산지 오래다. 눈만 뜨면 아무나 쉽게 만날 수 있었는데 코로나가 모든 것을 정지시켰다. 보고 싶은 사람도,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지금은 잘 만날 수 없다. 마스크를 쓰고 살며 얼굴을 잊은 지 오래다. 사람들은 코로나 이전의 모습을 기억하고 마스크 쓴 얼굴은 매번 새롭게 느낀다.
더구나 머리를 길게 기르던지 모자를 쓰면 이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늘 짧은 머리로 살던 남편이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전혀 다른 사람의 모습이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다. 긴 머리에 모자 쓰고 안경 쓰고 마스크를 쓰면 완전 다른 사람이다. 가까이 가서 마스크를 내리고 모자를 벗어야 알아본다. 우스갯소리로 예술가 같다, 영화배우 같다 하는데 그것보다 본인이 긴 머리가 좋단다. 코로나로 이발소가 문을 닫는 바람에 핑계 김에 기르기 시작한 머리가 어깨까지 길었다. 고무줄로 묶고 바람에 휘날리게 풀어놓기도 한다. 보기 좋다는 사람도 있고 보기 싫다는 사람도 있지만 본인이 좋다고 계속 길러 보겠단다. 머리 하나로 사람이 달라지는 것 같다. 사람들이 뭐라 하던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니 그냥 둔다. 언젠가 싫증이 나면 그때 자르면 된다.
사람들도 자주 못 만나는데 살면서 하고 싶은 것 하고 사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코로나로 자유를 빼앗겼지만 다행히 머리 기르는 재미로 사는 남편이 행복해 보여 좋다. 사람들의 이목 때문에 평소에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일이 많은데 코로나가 남편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어서 고맙다. 행복은 자신이 찾고 만드는 것이다. 누가 가져다주는 선물이 아니다. 꿈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을 생각해서 살아있을 때 자주 만나야 하지만 현실은 허락하지 않는다. 현실 속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깊이 생각하다 보면 꿈속에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꿈에 불과하다. 만질 수도 없고 꿈을 깨면 아무것도 아니다. 만날 수 있을 때 만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 꿈속에서의 만남도 좋지만 현실 속 에서의 만남이 좋다. 꿈을 꾸고 나면 허망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다. 그래도 이루지 못한 것을 꿈을 통해 위로받는 것도 살아가는데 필요한 활력소가 된다. 그리운 사람을 만나고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만나며 꿈을 꾸고 꿈을 깨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