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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은 시작이고 끝이며 영원히 지속되는 삶이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운명은 무엇이고 인명은 또 무엇인가?

나는 누구의 명을 이어받아 태어난 것일까? 누가 나의 명을 받아 태어날 것인가?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한 사람의 명은 누군가에게 주어지고 누군가가 받아 세상에 태어난다 는 것이다. 태어나고 죽고 세상은 돌아간다. 건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중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기도 하고 집안에 경사가 생겨 아이가 태어나기도 한다. 우연일 수 있지만 세상에는 우연이 존재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끄나풀이 있어 사람들은 오고 간다. 세상에는 만나지 못한 인연이 얼기설기 엉켜서 보이지 않게 존재한다. 언제 누구와 만나서 얼마 동안 함께하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이라는 운명학적 이론을 떠나 세상과 우주는 하나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싫다고 해서 피할 수 없고 좋다고 해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감정은 한낱 사소한 내면의 물결이지만 인연은 알 수 없는 경지에서 우리를 엮고 풀고 한다.


억겁의 인연이라는 말들을 한다. 우리가 만나 스치고 지나가는 수많은 인연이 이루어지기 까지에는 말로 할 수 없는 긴 세월이 지나야 이루어질 수 있는 소중한 인연이다. 인간이 만들어 내고 인간이 끊어낼 수 없는 귀한 인연이기에 모든 인연은 정해진 시간이 있다. 길고 짧게 이어지는 인연에 사람들은 울고 웃는다. 스쳐 지나간 인연을 잊지 못하고 평생을 그리움 속에 살기도 하고 끊고 싶어도 끊지 못하고 미워하고 괴로워하며 살기도 한다.


인연이란 과연 무엇일까?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인연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지만 확실한 것은 싫든 좋든 인연은 마음대로 잇고 끊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계절이 오고 싶을 때 오고 가고 싶을 때 가는 게 아니고, 갈 때가 있고 올 때가 있는 것처럼 인간의 인연 또한 처음이 있고 끝이 있다. 세상에는 지긋지긋하게 끈질긴 인연이 있고 새록새록 새로운 인연이 있다. 보고 또 봐도 좋은 인연이 있고 단 한 번도 더 보고 싶지 않은 인연도 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인간의 마음대로 할 수 없다. 피한다고 끝이 되지 않고 쫓아다닌다고 이룰 수 없다. 보내고 싶지 않아도 보내야 하고 함께 하고 싶지 않아도 이어진다.




벌써 오래전 일이 생각난다. 5년 전에 장손이 태어나서 식당 문을 닫고 달려가 아들 며느리에게 축하를 해주었다. 웃으며 새로 태어난 손자를 안고 예뻐서 너무나 행복해하며 삶의 기쁨을 한껏 누리고 집에 왔다. 잠을 자면서도 너무 설레어 잠을 설치고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을 하는데 한국에서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전화가 왔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너무 행복했는데 소식을 듣고 너무 슬퍼 어찌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때 당시 아버지께서 건강이 안 좋아 자리보전을 하셨지만 이렇게 황망하게 돌아가실 줄 몰랐다. 90이 넘은 연세에도 엄마와 두 분이 잘 살아가셨는데 갑자기 소식을 들으니 어제의 기쁨은 어디로 가버리고 그저 슬프기만 했다.


아버지의 마지막 얼굴을 보기 위해 급히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갔다. 한국에 가면 형제들의 도움으로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해서 아무 불편함 없이 생활했는데 식구들이 장례식장에 있기 때문에 지하철을 이용하게 되었다. 잘 모르고 서투른 길이지만 가는 길에 옆사람한테 물어가며 찾아가는데 아버지는 가시는 길에 나에게 또 다른 인연을 만나게 해 주셨다. 지하철 출구가 여러 군데라서 어디로 나갈지 모르고 주춤거리고 있는데 혼자 서서 여행용 가방을 들고 쩔쩔매는데 어느 여자분이 보고 나에게 다가왔다.


우물쭈물하다가는 입관식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아서 병원 이름을 대며 어디로 나가야 하는지 물었다. 그녀는 마침 그쪽으로 가는 길이니 같이 가자고 앞장을 서서 따라가며 사정 이야기를 했다. 캐나다에서 사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병원에 가는 길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직장에 다니는데 무슨 자격시험을 치고 집에 가는 길이라고 잘못하면 나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나에게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병원에 잘 도착해서 입관식에 참석하여 아버지 얼굴도 잘 보고 장례도 잘 치르고 집에 왔던 생각을 하면 오래전 일이라도 인연이란 정말 신비하다는 생각이 든다.




길을 걸으며 만나 스치는 사람들에게 웃으며 인사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도 다 인연의 연속이다.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인연은 소중한 것도 시시한 것도 없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인연도, 인연이 다 되어 떠나가는 인연도 또 다른 인연의 시작이다. 누군가의 자식이나 친구로 살고, 부모가 되어 살고, 이웃이 되어 산다. 잠깐 만나서 친하게 살기도 하고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다가 남이 되기도 한다.


인연이란 억겁의 세월이 만들어주는 특별한 것이다. 부모 자식의 인연, 형제의 인연, 그리고 부부의 인연과 친구의 인연은 아무나 가질 수도, 받을 수도 없는 소중한 인연이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랜 세월의 기다림을 통해 만나지는 것이다. 조금 싫다고, 조금 마음에 안 든다고 자르고 끊어낼 수 없는 게 사람과의 인연이다. 인연이 이어지고 누군가의 명을 받아 태어나 살다가 누군가에게 주고 가는 명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는 이 넓은 우주에 스치고 지나치는 인연과 장시간 오래도록 이어지는 인연 안에 우리는 모두 하나의 긴 끈이라 할 수 있다. 끊어지면 매듭을 지어 연결하고 또 이어진다.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진 듯 다시 끊어지는 수많은 인연 속에 다른 듯 서로 닮아간다. 인연은 시작이고 끝이고 영원히 지속되는 우리의 삶이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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