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바꿈 하는 달력

묵은해는 잘 보내고 새해 잘 맞기

by Chong Sook Lee
(이미지출처:인터넷)

이틀 남은 마지막 한 장의 달력이 홀로 벽에 기대고 있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여러 장을 매달고 의연하게 서 있는 달력이 세월 따라 한 장씩 떼어져 내일모레면 새 달력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며칠 남지 않은 달력을 보니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아져 가는 자신을 보는 것 같아 애처롭기도 하다. 한 해를 보내고 나니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기억은 희미해도 한해를 무탈하게 잘 보내고 연말을 맞을 수 있음에 감사하기만 하다. 연초에 새해를 맞으며 가족 건강의 은총을 기원하며 시작한 한 해가 어느새 거의 다 가고 새해를 맞으려 하고 있다. 돈을 많이 벌고 남보다 앞서기 위해 악착을 떨던 삶은 하루하루 건강하게 마음 편하게 살기를 원하는 삶이 되어간다.


기운이 있어야 욕심도 부리는 것 같다.

영원히 살 것처럼 열심히 살아온 날들이 지나고 오늘을 맞는다. 끝없는 욕망과 열정은 어디로 가고 주인공이 아닌 수많은 엑스트라 중 한 사람으로 개성도 없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점 같은 존재로 섞여서 살아간다.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고 무엇이든 최고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마음은 어디로 가고 시냇가에서 풍파에 둥글어진 자갈처럼 둥글둥글 살아간다. 모나지 않고 흐르는 세월을 가고 싶은 곳으로 보내며 바라본다. 지난 한 해를 생각하며 지난 10년을 생각해 본다. 둘째가 결혼한 뒤에 첫 손자가 태어나고 할머니가 되어 인생 2막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줄이어 결혼을 하고 손자들이 4명이 되었고 22년 하던 식당을 팔고 정년퇴직을 한 지 5년째를 맞았다. 하루하루가 10년이 되고 오늘이 되었다.


세상이 내 것 인양 펄펄 뛰던 세월은 가고 빠른 것도 급한 것도 없는 편안하고 안락하고 조용한 노년의 삶을 살고 있다. 다른 사람의 삶이라 생각했는데 내 삶이 되었다. 곱던 얼굴에는 주름살이 나날이 늘어가고 까맣던 머리는 흰머리가 자리를 잡았다. 움직이는 것보다 가만히 앉아 있거나 눕는 것이 편하고 조금 힘들면 쉬어야 한다. 이제야 부모님의 모습이 보인다. 생전 늙지 않은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부모님이 그랬었구나 하는 생각에 후회가 된다.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좀 더 잘해 드렸을 텐데 미련만 남는다. 세상이 만만해 보였던 젊은 날은 매일 나를 찾아왔던 하루라는 시간 속에 가버렸다. 지나간 날들은 흘러가버린 강물이 되어 바다로 흘러가고 알 수 없는 내일을 기다린다.


지난 10년은 눈코 뜰 새 없이 가버렸는데 앞으로 오는 10년은 어떤 시간이 될지 의문이다.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전파되어 활동이 어려울 때 글 안에서 주고받는 브런치 이웃들의 글을 읽으며 행복한 나날들을 보낼 수 있었다. 만남도 여행도 자제해야 했던 날들인데 브런치로 인해 외롭지 않고 나날을 새롭게 생활하며 다양한 정보를 읽고 다른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아프면 아픈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솔직 담백하게 올라오는 작가님들과 공감하며 살만한 세상을 느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작가분들의 브런치를 읽고 화답하며 하루가 시작된다. 글이 써지는 날은 글을 쓰고 글이 안 써지면 그림을 그리며 하루를 살고 하루를 쓰며 보낸 날들이 그 안에 있다. 무엇을 했는지, 그때 기분은 어땠는지, 날씨는 좋았는지, 글을 읽어보면 다시 그날로 돌아간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꾸준히 쓰다 보니 마음속에 평화가 찾아온다.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내가 모르던 것들을 배우고 그들의 좋은 일에 축하해주며 함께 기뻐할 수 있어 너무 좋다. 사람이 사는 동안 기쁜 일도 많고 슬픈 일도 참으로 많다는 것을 배우며 세월을 보냈는데 오는 내일은 알 수 없다. 하루를 백 년처럼 살 수도 있고 백 년을 하루처럼 살 수도 있다. 각자의 선택으로 이어지는 삶은 어제처럼 오늘도 이어진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되었듯이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를 만들 것이다. 세상을 품어주는 숲 속의 나무처럼 더욱 겸손하게 살아가면 더없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언제까지 글을 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숨 쉬고 잠자고 깨어 일어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 글을 쓰며 하루를 살고 싶다.


며칠 남은 한 장의 달력을 보며 지난 시간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루하루 살다 보면 매일이 새해가 된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며 하루를 감사하면서 살면 된다. 모든 것은 시작이고 끝이 없이 이어지듯 새로운 날은 어제부터 온 것이기에 소중하고 귀하다. 오늘이 간다고, 올해가 간다고 끝이 아니고 앞으로도 계속 끝없이 이어지는 삶이다. 만나지 못한 인연과 소식을 전하지 못한 인연도 다 소중하기에 코로나로 소원해진 모든 인연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며 새로운 해를 맞고 싶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짧은 인생인데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화내고 싸우고 질투하고 오해하고 산다.


삶은 순간순간 찾아와 머무르지 않고 스쳐가는 바람일 뿐이다. 따스한 바람도, 매몰찬 바람도 스쳐서 간다. 오늘 내게 온 바람은 누군가에게로 가고 누군가를 스쳐온 바람은 나에게 온다. 삶 속에서 희망하고 실망하면서도 끝없이 소망하며 체념을 한다. 내 것이 아닌 것을 잡으려 하지 말고 욕심내지 않으면 되는데 사람이기에 쉽지 않다. 익으면 고개를 숙이고 때가 되면 떨어지는 자연을 보며 삶을 배운다. 많이 가졌다고 자랑하지 않고 크다고 작은 것을 얕잡아 보지 않는다. 색이 곱다고 뽐내지 않고 일찍 피었다고 오만하지 않는 자연을 닮고 자연과 함께 살면 된다. 한 장 남은 아니 이틀 남은 달력은 한해를 잘 살아왔음에 감사하고 새 달력에게 기꺼이 자리를 양보하는 것처럼 살자. 묵은해는 잘 보내고 새해는 잘 맞이하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미지출처:인터넷)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돌고 도는 세상... 돌고 도는 인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