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백계 10차]
[백계 10차 소백산 비로봉-연화봉-죽령 백패킹 후기]
이번 백패킹은 동계와 하계 정기 백패킹 사이에 가볍게 계획하여 단출하게 다녀왔다.
대구에서 김근식, 이경화, 그리고 서울에서 구자룡 이렇게 3명이 함께 했다. 첫 백패킹인 설악산에 박성호, 이진원과 함께 다녀온 이후 가장 적은 인원으로 여유 있는 백패킹이 되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원래 계획대로 되었다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소백산 철쭉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봄 캠핑에 참석하지 못하면서 뭔가 봄에 이벤트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활짝 핀 철쭉을 기대했었지만 철쭉은 이미 꽃잎이 거의 다 떨어진 상태라 별 볼일 없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쾌청한 하늘과 바람과 구름은 그 어느 산에서도 보기 어려웠던 멋진 풍경을 보여주었다.
30여 년 전에 등산을 했던 소백산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희방사로 등정했고, 정상에서 주목을 본 기억 정도다. 이번에 보니 비로봉 밑에 고목은 없고 주목군락지에 이제 자라기 시작한 작은 나무들이 보호되고 있었다. 우리 백계에서도 2015년 1월 4차 소백산 동계 백패킹을 했었는데 그때 고치령에서 죽령까지 욕심을 냈었던 기억과 늦은맥이재에서 하산했던 아픔이 아직 생생하다.
이번 백패킹에서는 삼가 탐방지구에서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을 지나 연화봉(천문대)을 거쳐 제2연화봉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죽령으로 하산하는 코스로 총 14킬로미터 정도다. 국립공원인 관계로 야영을 할 수 없었고 최근에 개관한 대피소가 있어서 이 곳을 예약하고 이용하기로 했다. 따라서 텐트와 침낭, 매트리스 등 야영 장비를 빼고 배낭을 꾸리는 가벼움의 미학이 있었다. 물과 일부 부식품을 대피소에서 조달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걱정거리가 많이 준 것이다. 나는 이 덕분에 카메라 장비를 좀 챙길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연화 호텔로 회자되는 여기 대피소의 가장 좋은 점은 화장실이었다. 겨울 덕유산의 삿갓재 대피소를 생각하면 여기는 최고급 호텔이라 해도 좋을 정도다. 나머지 환경은 다른 대피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다른 대피소와 비교한다면 모든 부분에서 소소하게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가능하면 대피소를 이용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여전하다. 우리만의 야영의 즐거움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철쭉 축제가 있는 시기라 금요일을 선택했다. 풍기역에 근식이와 경화가 마중 나와 있었다. 택시로 삼가사 위쪽 달밭골에 도착하여 바로 비로봉으로 등산을 시작했다(10:47). 올라가는 중간에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여 라면으로 첫끼를 맛있게 먹었다. 좋은 날씨로 상쾌하게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비로봉 정상에 도착했다(13:43). 느긋하게 사진 찍고 거의 2시간 정도 비로봉의 정취에 취했다. 등산객이 별로 없어서 한적하게 청정한 공기와 푸른 하늘과 실록을 만끽할 수 있었다. 비로봉은 나무가 없어서 주변을 조망하기 너무나 좋은 봉우리였다. 다만 철쭉꽃이 만발했으면 ‘천상의 화원'이라는 칭송을 들을 수 있었는데 아직 덕이 부족한지 때를 놓치고 만 것 같아 아쉬움이 있었다. 비로봉에서 천문대가 있는 연화봉까지가 최적의 트레킹 코스였다. 7시에 대피소에 도착해야 하는데 연화봉에서 대피소까지는 천문대 관계자의 자동차가 지나다닐 정도의 도로라 재미도 없을 뿐만 아니라 몇 배의 힘들고 지루해서 예정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이번 산행에 한 가지 변수가 있었다. 토요일 오전에 서울에서 69회 동기들이 20여 명 단체로 소백산 등산을 오기로 되어있었다. 연화봉에서 나와 합류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후배들을 먼저 내려 보내고 혼자 남고자 생각을 하고 사전에 양해를 구했었다. 하지만 연화봉에서 대피소로 이동하는 이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하고 다시 돌아와야 하고 결국 죽령으로 내려갈 예정인 내일의 코스를 생각하니 아찔했다. 이때 경화가 서서히 약을 올렸다. 어떻게 다시 돌아갈 것이며 다시 이 길을 걸을 것이냐며 놀렸다. 이미 나의 육체는 힘든 기색으로 속도가 느려지고 있을 때였다. 근식이도 거들었다. 결국 내일 남아서 친구들과 동행할 것인가 두 대원과 함께 원래 계획대로 대피소에서 바로 죽령으로 내려갈 것인가에 대한 갈릴길에 섰다. 갈수록 바로 죽령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퍼센트가 높아지면서 대피소에 도착하기 전에 결정을 내렸다. 한결 홀가분 한 마음으로 후배들과 즐거운 시간을 이어가게 되었다. 친구들과의 관계는 다음에 복원하기로 하고….
제2연화봉대피소에 도착하기 직전에 설악산에서와 마찬가지로 대피소 관계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설악산 수렴동대피소에는 도착하지 못했었지만 여기 연화봉대피소는 바로 밑까지 도착한 상태에서 전화를 받아 한결 마음이 기뻤다. 바로 도착합니다. 그렇게 7시가 되기 전에 도착하여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를 보며 일몰 촬영을 했다. 근식이도 카메라를 들고 와서 함께 사진 촬영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렇다 보니 경화가 나서서 저녁을 준비해 주었다. 그리고 역시나 기대했던 매콤한 주꾸미를 준비해왔다. 대피소의 취사장은 입식테이블이라 우리는 근식이가 가지고 온 간이 테이블에 간이의자에 앉아서 여유 있게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면서… 세 명이 가지고 온 술이 달랐다. 근식이는 좋아하는 맥주를, 경화는 막걸리를, 그리고 나는 소주를. 그래서 순서대로 마셨다. 경화가 좀 부족한 것 같아서 가위바위보로 밑에 내려가서 사 올래 했는데 동의하지 않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저녁을 마쳤다. 9시에 소등하는 것도 고려되었다. 이런 게임은 가능하면 하지 말아야 하는데 제동을 잘 해주었다. 누가? 가장 불리한 경화가.
저녁 먹고 취사장을 나서는데 갑자기 한기가 들 정도로 바람이 매섭고 차가웠다. 야경과 별 궤적을 촬영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갔었는데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다음날 일출도 마찬가지가 되고 말았다. 새벽 4시 30분에 알람을 맞추고 일어날 생각이었는데 알람을 듣고도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냥 잤다.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텐트에서 야영을 했다면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나설 수 있었을 텐데.. 바람막이와 가벼운 내피를 준비한 것이 문제였다. 겨울용 덕다운을 준비해야 했었는데…
아침 6시가 되니 대피소에 묵은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일어나서 어쩔 수 없이 우리도 일어났다. 미역국으로 아침을 먹었다. 인증샷을 남기고 다음에 도전해야 할 백두대간의 도솔봉 능선을 보며 잠시 감상을 하고 8시에 하산을 시작했다. 이번 산행의 여유로움이 넘치는 순간이었다. 여기서부터는 다시 시멘트 도로길을 따라 내려가야 하는 코스였다. 소백산의 문제가 진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공공의 목적을 가진 강우측량소나 천문대 업무를 위해 차량이 다닐 수 있는 길이 필요할 수 있다. 그렇지만 수많은 등산객들을 이 길을 통해 걷게 하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옛 길이든 새로운 길이든 진짜 등산로가 별도로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아마도 이 길을 다시 걷을 일은 없겠지만 다음 등산객들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에 안 사실은 중앙고속도로에서 보이는 소백산의 크고 높은 탑은 천문대가 아니라 강우측량소라는 것(제2연화봉대피소). 그리고 천문대는 생각보다 작았다는 것. 왜 천문대가 크다고 생각했을까?
죽령에서 택시를 타고 풍기역으로 나와서 점심을 먹었다. 보통은 사우나를 하고 깨끗한 몸으로 점심 먹고 반주하고 해산했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정작 나는 충분히 열차 시간이 되었는데. 그렇다 보니 바로 있는 열차를 예약하고 점심을 먹게 되었다. 처음으로 차량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경화는 천천히 막걸리를 마시고 싶었는데…
경화하고도 얘기를 했지만 힘든 코스를 먼저 가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했다. 제호가 다리가 아파서 어렵다는 소식도 있었고, 근수도 항상 무릎에 문제가 있었다. 다음 동계는 마지막으로 대피소를 이용해서 지리산 종주를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리고 다가오는 하계 백계는 야영을 하는 백패킹으로 준비할 예정이다. 여기 죽령에서 도솔봉을 거쳐 저수령으로 남진하는 코스나, 비로봉에서 고치령으로 북진하는 코스, 그리고 속리산 종주 중에서 계획을 세울 예정이다. 8월 12일(토)-14일(월) 혹은 11일(금)-13일(일) 중에서 생각 중이다. 여름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