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갈곶산(늦은목이재-고치령) 트레킹 기행문

[백두대간 트레킹 기행문 : 길 위의 길]

by 구자룡

[백두대간/백계 12차] 소백산 갈곶산(늦은목이재-갈곶산-마구령-고치령) 트레킹 기행문


일자 : 2017년 11월 4일(토)-5일(일)

코스 : 영주 풍기 생달마을 늦은목이재-갈곶산-마구령-고치령(12.5km 예상)

야영지 : 마구령 근처 897 고지 헬기장

참가대원 : 구자룡, 박용상, 이경화


지난여름 소백산 도솔봉 하계 백패킹에서 정기 백패킹으로 춘계/추계를 1박 2일 일정으로 정한 후 처음 계획한 백패킹이었다. 가을에 개인사가 많아서 인지 코스의 유명도가 낮아서 인지 그동안 백계에 비해 참여인원이 적었다. 인원이 많고 적음은 결코 문제 되지 않는다. 다만 우리 나이에 너무 쓸쓸하지도 너무 떠들썩하지도 않는 적정인원은 3명에서 7명 정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번에는 최저인원으로 조용하게 다녀왔다.


실측거리로 15km를 평균속도 시간당 2.3km로 평탄한 길을 힘들게 걸었다. 어느 대간길이든 힘들지 않은 길이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물론 위험한 길이 있는 반면에 위험하지는 않지만 육체적으로 힘든 길이 있다. 이번의 복병은 단연 낙엽이었다. 2015년 1월 백계 4차 소백산 동계 백패킹 때 고치령에서 늦은맥이재로 갈 때의 눈길을 헤처 가던 러셀을 이번에는 참나무 낙엽을 헤치고 길을 찾아가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런데 눈길보다 낙엽길이 더 힘들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처음 낙엽이 쌓인 길에서 사각사각 발 밑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절로 흥이 났었다. 그러나 그 흥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전체 구간의 대부분이 낙엽으로 덮여 있어서 한편으로는 비단길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험로였다. 발은 돌부리에 차이고, 나무뿌리에 걸려 미끄러지고 엉덩방아를 찧기도 한 길이었다. 용상이가 한 번, 경화가 세 번 걸리고 미끄러졌다. 다행스럽게도 바닥은 낙엽이라 아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럴 때는 대각선으로 걷는 방법을 알려주었음에도 어쩔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다.


늦은목이재와 고치령 구간은 소백산 국립공원에서 관리하는 곳이라서 그런지 이정표가 500미터 단위로 잘 표시되어 있었다. 같은 소백산 국립공원 관리지역임에도 반대쪽인 묘적령에서 죽령 구간은 공단이 설치한 이정표와 GPS이정표가 서로 다른 위치에서 있어서 혼란스럽게 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제야 대간길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500미터를 거의 15분 정도의 소요시간으로 이동했다. 앞장선 용상이가 시간을 재 가면서 이정표 구간을 체크했는데 예측 가능한 코스이고 도전의식이 들어 이 또한 새로운 재미를 주었다. 그만큼 전 구간의 능선길이 완만한 길이었다. 해발 800미터에서 1000미터 사이의 오르막 내리막 길이 주는 묘미 또한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흥을 돋웠다. 그런데 이 좋은 곳에 등산객이 없었다. 전 구간에 걸쳐 1인 등산객 2명, 단체 등산객 1팀(약 30명), 그리고 MTB 라이더 4명이 전부였다. 한가롭고 운치 있는 트레킹이었다.


예상했던 코스는 늦은목이재에서 첫 번째 식사로 점심을, 마구령 넘어서 헬기장에서 숙영을, 그리고 고치령에서 차량으로 풍기로 이동하여 샤워하고 점심 먹고 해산하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혼자 가는 측면도 있었지만 단풍철이라서 그런지 열차표를 예매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고속버스를 이용했다. 토요일이라 연착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생각보다 많이 늦어지고 말았다. 대구에서 출발한 대원들이 풍기 IC터미널에서 1시간을 기다리는 수고를 끼치게 되어 많이 미안했다. 이 1시간의 차이가 끝까지 우리를 힘들게 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불행 중 다행은 이 때문에 아주 멋진 장소에서 야영을 했다. 오후 6시경 이미 해는 넘어갔고 어두워지고 있었는데 목표로 했던 마구령을 지나 맞은편 산꼭대기까지 가기에는 무리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마구령에서 숙영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앞서가던 용상이의 탄성이 울렸다. 더 이상 가야 할 이유가 없게 하는 장소였다.


이번 백패킹을 끝내고 생각해보니 이 구간에서 이보다 좋은 숙영지는 없었다. 유일하게 잘 관리된 헬기장이었고 우리를 위해 준비해준 곳이었다. 다른 헬기장은 관리가 되어있지 않아 잡풀과 낙엽과 돌멩이를 고르는 작업으로 적어도 1시간은 소요되어야 할 일이었다.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던가. 사전 정보의 오류인지 이해를 잘못한 것인지 이 헬기장은 마구령과 고치령 사이에 있다고 되어 있었는데 사진과 대조해 보면 아마도 참고한 후기에서 위치를 잘못 알려준 것 같다. 그동안 백계에서 원칙으로 세웠던 안전에 대한 첫째 수칙은 '해가 넘어가면 더 이상 가지 않고 숙영지를 찾아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낸다.’였다. 이 원칙은 안전에 대한 매우 유효한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뼈아픈 추억이 있었던 조령산 백패킹의 교훈이다. 무리한 트레킹을 할 이유가 우리에겐 없다. 자연의 품에 안기는데 더 가면 어떻고 덜 가면 어떤가.


야영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즐거운 시간은 아마도 가볍게 뭔가를 해 먹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용상이가 멀리서 올라오면서 삼겹살을 진공으로 포장해서 왔고, 경화가 두루치기를 가지고 왔다. 여기에 파김치와 담근 매실주를 곁들이니 더 이상 부드러울 것이 없었다. 최소한의 음식과 술로도 대자연을 품으면 저절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는 시간이었다. 아직 약간의 술도 있었고 안주도 풍족한데 한기가 들어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늦가을이긴 해도 설마 영하의 기온으로 내려갈까 했었는데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겨울용 백패킹으로 장비를 준비했지만 저녁 9시경이 되니 쉘터 없이 밖에서 계속 있기에는 한계에 도달했다. 해드 랜턴의 불이 갑자기 꺼졌다. 벌써 배터리가 나갔나? 조금 있으니 손전등도 나갔다. 그런데 다시 켜니 불이 들어온다. 이것을 여러 번 반복했다. 역시 문제를 해결한 쪽은 공대 출신인 용상이었다. 영하의 기온으로 떨어져서 배터리가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요즈음 배터리의 일반적인 문제인 것이다. 그러면 지난 영하 20도의 태백 바람의 언덕에서는 괜찮았는데... 그때는 밖이 아니라 쉘터 안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없었던 것이다. 이소부탄가스버너 역시 같은 문제로 화력을 공급하는데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만약 근수가 왔었다면 따뜻한 쉘터에서 이런 문제 없이 추억을 떠올리며 더 많은 이야기를 더 나눌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참여인원이 적어지면서 몇 가지 문제가 나타났는데 쉘터와 미니 테이블이 없다는 점이었다. 점심때는 빨리 먹고 이동해야하기 때문에 크게 느끼지 못한 사실이다. 저녁은 느긋하게 여유롭게 멋스럽게 낭만을 만들어야 하는데 테이블은 충분히 문화생활의 격을 높이는 장비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테이블을 장만하고 싶은 생각이 많았지만 무게와 부피로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또한 여러 명이 서로 다른 장비를 가지고 분산하는 측면도 있었기에 그동안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준비되었는데 이번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지난겨울 바람의 언덕에서 망치의 중요성을 깨달은 이후 갖고 다니는 망치는 매우 유용했다. 굳이 팩을 박을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가지고 온 장비로 언제나 그렇듯이 안전하게 팩을 박았다. 각자 자기 텐트를 빠르게 쳤다. 그런데 용상이는 팩이 없었다. 두 텐트에서 남은 여분으로 네 군데 바닥만 고정했다. 숙영지는 산꼭대기이긴 했지만 주변의 나무들로 그리고 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우리를 통과하는지 바람 소리는 컸지만 바람 자체를 느끼지는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밤 사이 용상이 텐트의 플라이가 날아가 다시 설치했다는 풍문을 들었다. 만약 여분의 팩으로 텐트를 고정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선자령의 바람 정도였으면 아마도 용상이를 못 볼 뻔했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항상 안전에 관련된 장비는 꼭 챙겨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금 한다.


백계 2차부터 이번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한 폴리스(경화)가 이제 베테랑이 다 되었다. 처음에는 매우 허술한 장비에 힘만 믿고 무겁게 다녔다는 생각이 든다. 텐트가 너무 작았고, 핫팩을 등에 붙이지 않아 추위에 떨었고, 배낭에는 덜렁덜렁 뭔가를 달고 다녀 불안과 염려가 늘 있었다. 언젠가는 트레킹 중에 스틱이 고장이 나서 힘들게 산행한 적도 있고, 스틱을 차에 두고 와서 두발로만 가는 어려움이 있었다. 조령산에서는 혼자 앞장서 가는 바람에 역 낙오로 조령 3 관문 옆 성황당 앞에서 개 짖는 소리를 들으며 혼자 숙영을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 완전 변신을 했다. 장비도 대부분 개비를 해서 단정 해졌고, 음식도 안성맞춤으로 맞추고, 생수도 여유 있게 가지고 와서 전체 필요를 충족시켜주었다. 이제는 혼자 백패킹을 가도 거뜬히 살아올 수 있는 준비가 된 듯하여 뿌듯하다. 선두 보다도 후미가 더 힘든 데도 불구하고 늘 후미를 받쳐주고 묵묵히 따라주고 차량으로 먼길 이동시켜주는 경화에게 늘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함께하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 우리 백계의 미덕이라 생각해본다. 이번 트레킹 막바지에 경화의 스틱이 고장이 났는데 등산 전문가인 용상이가 깔끔하게 수리해주었다. 원리를 깨친 설명과 함께 직접 시연으로 수리가 되었으니 이 역시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텐트 안은 춥지 않았지만 골짜기로부터 들려오는 바람소리에 잠을 설쳤다. 자다 깨다를 몇 번 했는데 용상이가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니 벌써 6시 40분이었다. 6시에 기상하려고 마음먹었었는데 또 한 시간이 늦어졌다. 텐트 위에는 이슬이 맺혀 눈덩이가 되어 있었다. 육개장과 미역국으로 아침을 먹고 서둘러 철영을 했지만 예상보다 늦은 8시 40분경 출발했다. 어제도 출발부터 1시간 늦었고 예상했던 숙영지가 아닌 곳에 텐트를 쳤기 때문에 1시간 정도 서둘러야 함에도 결과적으로 늦어져 서울로 가는 버스 시간을 늦출 수밖에 없었다. 어제 차량을 두고 갔던 고치령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점심때가 지난 오후 1시가 되었다. 점심을 먹을 것인가 아니면 샤워를 할 것인가 잠깐 고민이 되기도 했지만 배가 많이 고팠고 순흥에 묵집이 있어서 순흥 전통 묵집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이동했다. 유명한 맛 집이기에 또 허름한 옛날 집이기에 체계적인 주문시스템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연기했던 버스에 맞추어 점심 먹을 수 있는 시간은 단 20분밖에 없었다. 마침 주문한 묵밥과 두부와 막걸리로 그 짧은 시간에 후다닥 오찬을 즐기고 차 한 잔 마실 여유도 없이 버스에 올랐다.


백두대간은 재와 능선과 산으로 이어진다. 이번 구간인 늦은목이재에서 고치령으로, 그리고 지난번 구간인 고치령에서 늦은맥이재로 이어진다. 이렇게 이어지는 대간길은 무려 1,400킬로미터의 길이다. 어떤 사람들은 지리산에서 출발하여 설악산까지 남쪽 680킬로미터를 구간으로 나누어 또는 한 번에 도전하는 사람도 있고 그 반대로 진행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처음부터 완주에 대한 목적의식이 없었다. 대간에 놓여 있는 주요 산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자연과 대간의 위용을 느끼고 싶었다. 우리들의 삶 속에 자연이 주는 무한한 생동감을 경험하고 삶에 활기를 주고 싶은 마음으로 안전하게 여유 있게 즐기는 트레킹으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동안 설악산, 두타산-청옥산, 선자령, 함백산, 태백산, 소백산, 조령산, 삼도봉, 덕유산 등 12차에 걸쳐 1박 2일 혹은 2박 3일의 일정으로 주요 산 남북으로 혹은 북남으로 이어진 대간길을 걸었다. 이제 다들 40대 후반에 접어들고 또 일부는 50대 중반에 들어가면서 대략 15kg에서 20kg 정도의 배낭을 메고 트레킹 하는데 버거움이 있기도 하다. 일부는 무릎이 아파서, 일부는 질병으로, 일부는 생계로 참여의 한계가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갈 길은 멀고 재미는 남았으니 기존의 백패킹 기조를 유지하면서 유연하게 대응하여 자연과 함께하는 취미와 놀이를 계속할 수 있으면 좋겠다.


소백산 비로봉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두 번, 남쪽으로 두 번 백패킹을 했으니 이제 소백산 구간은 종료한다. 국립공원 중에는 오대산, 속리산, 지리산을 아직 도전하지 않은 상태이다. 지리산 근처에서 일하는 용상이의 의견은 그래도 겨울산은 눈이 있어야 한다는데 같은 생각을 했다. 지리산은 눈을 만나기 쉽지 않다고 하니 강원도로 잡아야 하겠다. 오대산을 염두에 두고 연구해볼 생각이다. 내년 2월은 설에 평창 동계올림픽이 있으니 이를 피하면서 눈을 기대할 수 있는 1월 중순에서 말순 사이 2박 3일로 계획을 세울 예정이다. 벌써 눈덮이 백두대간의 능선과 영하의 기온에서 꽃 피울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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