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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보 구자룡 Oct 10. 2023

문경 도장산 심원사 가는 길

[문경 쌍룡계곡]


긴긴 무더위를 뒤로 하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9월 말 심원사(深源寺)로 향했다. 심원사는 도장산(道藏山) 중턱에 있다. 도장산은 도를 감추고 있는 산이다. 도장산 북쪽에는 청화산(靑華山)이 있다. 인생 2막을 위해 문경 농암 청화산 아래 조그마한 텃밭을 일군 지 3년이 넘었다. 이런 인연으로 쌍룡계곡 옆으로 난 도로를 통해 여러 번 농암 방면으로 이동할 때 언젠가는 한번 들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바로 오늘이다. 마침 한가위 연휴라 가벼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인근의 우복동가든에서 점심 먹고 물 한병 들고 가볍게 출발해 본다.



북쪽 청화산은 속리산에서 대야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에 있으며, 그 아래는 원적사(圓寂寺)가 있다. 신라 태종무열왕 7년(660년)에 원효 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원효대사가 쌍용계곡 심원사 용소에서 요령을 얻어 원적사에 갖다 놓았다는 전설이 있다(그 요령은 현재 직지사에 보관 중이며 고려시대 작품이라는 것이 정설). 바로 그 심원사도 원효 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대력 7세기 후반). 이런 창건 설에 대해 신뢰하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창건 이후 내력에 대해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신라시대 창건된 절은 대부분 원효 대사와 의상 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하니 그 옛날 교통편도 길도 제대로 나 있지 않았을 그때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재의 심원사는 경북 문경시 농암면 내서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1958년 화재로 전소되었다가 1964년에 중창되었다고 한다. 건물은 대웅전 인법당(人法堂)과 삼성각, 그리고 여여헌(如如軒) 토굴이 있고, 모두 슬래브 등으로 처리되어 있고, 대웅전 전면에는 유리 창문이 설치되어 전통사찰의 형식에서는 벗어나 있다고 한다. 


상주시 화북과 문경시 농암은 청화로로 연결되어 있고 청화로 옆을 끼고 쌍룡계곡(농암천)이 흐르고 있다. 전설 속 청룡과 황룡이 살던 곳이라 하여 쌍룡계곡이라 부른다. 농암천 상류 도장산 기슭 4km 구간으로 기암괴석과 층암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도장산은 속리산의 한 지맥으로 속리산을 지나 청화산, 그리고 시루봉을 지나 다시 도장산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지역에서는 우복동천 등산로(37.8km)로 알려져 있다. 각 산의 골짜기 물이 용추(龍湫)로 들어 가는데 이것이 병천(甁川)이라고 이중환의 택리지에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해 청화산과 도장산 사이 골짜기가 쌍룡계곡이고 병천이며 두 산 사이와 용추 위를 통틀어 용유동(龍遊洞)이라고 한다. 어찌 되었던 이곳은 룡(龍)과 깊은 인연이 있는 곳이다. 나 또한 이름의 한 자가 룡(龍)이니 오늘은 룡과 함께 거닐어 볼 수 있겠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도장산 심원사로 향했다. 청화로에서 쌍룡계곡 위로 나 있는 용추교를 넘어가면 우측에 주차장이 있고 심원사로 가는 길이 보인다. 심원사까지 약 2km에 40분 정도 소요된다고 하니 한결 가뿐한 마음으로 출발해 본다. 


심원사 가는 길 © 2023. 구자룡


초입부터 길이 험하다. 계곡 옆으로 난 길은 돌을 다듬어 길을 만들어 놓았기에 조심스럽게 걸어야 한다. 요즈음 산사에는 자동차가 들어가지 않는 곳을 찾기 어려운데 이곳이 바로 자동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등산객이라면 등산화를 신어서 문제없겠지만 일반인이라면 미리 등산화를 준비할 필요가 있겠다. 


계곡 옆으로 난 길인데 웅장한 폭포 소리가 들린다. 쌍룡폭포라고 되어 있다. 1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내려올 때 들리기로 하고 바로 심원사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이 가파르다. 작은 돌멩이로 된 자갈길인 데다 최근에 굴삭기로 길을 다듬은 흔적이 있고 비가 온 뒤라 미끄러움이 보태져 상당히 불편한 길이었다. 조심조심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을 옮겼다.


심원사 가는길 © 2023. 구자룡


나무에 가려 기암절벽이 보일락 말락 하는 길 옆에 돌탑이 보인다. 돌이 많아서 그냥 쌓은 것일까?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그냥 지나칠 수도 있으나 길을 걷는 이에게 잠시 멈추라는 신호 같다. 잠시 절벽을 보고 마음을 정갈하게 가다듬어보라 한다.  


심원사 가는길 © 2023. 구자룡


도장산으로 올라가는 갈림길에 맑은 샘이 있다. 바가지가 있어서 마실수도 있다. 지하수는 아닌 것 같다. 바로 옆에 자그마한 개울이 있다. 여기는 사람의 흔적이 거의 없는 심산유곡이다. 심원사는 여기서도 500미터를 더 가야 한다. 샘의 위가 아니라 옆으로 가야 심원사가 있기 때문에 이 개울 위쪽에는 아마도 사람의 흔적이 없을 것 같다.  



심원사 가는길 © 2023. 구자룡


심원사에 도착했다. 아니 심원사 일주문에 도착했다. 여느 전통사찰의 일주문과는 분명 다른 느낌이다. 개인사찰이 아닌 조계종의 사찰(김천 직지사의 말사)인데 하는 생각을 했다. 슬래브로 지붕을 한 것으로 보아 이 절의 상황을 직감할 수 있다. 깊은 골짜기에 대웅을 모시고 있으니 나름 경계를 처 놓은 느낌이다. 화려한 일주문과 달리 참선을 하는 스님들의 도량이라는 친근감이 든다. 일반 불교신자가 찾아오는 대중적인 절이 아닌 스님들의 수행처라는 특색 정도로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모습니다. 보통은 일주문 옆에 담이나 목책이 없는데 여기는 목책이 있는 것도 특이하다. 


무심결에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으로 가는데 개가 짖기 시작했다. 목줄이 없는 개가 자꾸 다가온다. 황구와 백구. 나는 원래 개를 싫어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겁에 질려 밀려 밀려 일주문 밖으로 쫓겨났다. '스님, 스님'을 소리 높여 불러 보았지만 대답이 없다. 한참을 불렀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줄에 묶여 있는 개를 풀어주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들어가는 것을 스님도 보았다. 개가 짖으면 오히려 개을 붙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절에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개가 앞을 가로막았다. 부처님을 뵈러 왔는데 불청객이 되어 뒤로 돌아섰다. 이런 경우는 난생처음이다. 심원사는 보지도 못하고 쫓겨난 신세가 되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이해가 안 된다. 외부 사람을 반기지 않을 수는 있다. 적어도 경내는 돌아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주차장에서부터 경내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심원사 가는 길 © 2023. 구자룡


심원사 경내로 들어가기 전, 일주문 주변은 울창한 숲과 넓은 개울이 어우러진 여유로운 공간들이 있다. 이끼 낀 바위 사이로 시냇물이 흐른다. 개울 건너 언덕에는 움막 같은 건물이 나무 사이로 보인다. 아마도 여기가 여여헌(如如軒)이란 토굴이 아닌가 생각된다.


심원사 가는길 © 2023. 구자룡


뒤돌아 하산하는 길에 쌍룡폭포가 있다는 이정표를 따라 100여 미터 들어갔다. 우렁찬 물소리가 나는데 폭포는 보이지 않는다. 국내에서 폭포라는 것이 경우에 따라 조금의 낙차만 있어도 폭포라고 하기도 하니 내가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여기가 폭포다라고 하는 표지판이 없다. 나중에 다른 자료를 보니 심원사에서 내려오는 물이 농암천을 만나는 합수지점 직전에 폭포가 있다고 되어 있는데 나는 보지 못했다. 아마도 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데다 수량이 적어 폭포로 인식을 못했을 수도 있다.  


우렁찬 물소리는 계속으로 흐르는 물이 큰 바위를 만나 양갈래로 휘돌아 가면서 떨어지는 낙차에 의한 소리다. 가까이 가 보고 이게 쌍룡폭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왠지 아닌 것 같았다. 그냥 계곡일 뿐이다. 조금 위쪽으로 올라가니 여름에는 수영이 가능할 정도로 넓은 소가 나타났다. 구명조끼도 있고 경고문도 있고 안전줄도 처져 있다. 여름철에는 물놀이 장소로 꽤 인기가 있을 것 같다.



쌍룡계곡 © 2023. 구자룡


계곡을 따라 조금 내려오니 쌍룡계곡의 진면목이 나타났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절벽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계곡물이 암석을 깎아내고 있다. 세월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협곡과 멀리 하늘의 구름 사이로 가을빛을 받은 암석들이 빛나고 있었다. 


쌍룡계곡 © 2023. 구자룡


쌍룡계곡 © 2023. 구자룡



그리고 세월을 낚고 있는 사람도 있다. 무엇이 낚이려나? 

그저 뚜벅뚜벅 걷는 즐거움만 아는 이는 하념 없이 흐르는 물을 응시하는 이유를 잘 모른다.


쌍룡계곡 © 2023. 구자룡


심원사로 출발했던 초입으로 다시 나왔다. 자동차가 드나들지 못하니 이런 길은 오로지 사람들 차지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신경이 쓰이기는 하지만 시멘트로 포장된 길보다는 훨씬 낫다. 아직은 때 묻지 않은 호젓한 산책길이다. 하지만 곧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심원사와 도장산 등산길이 갈라지는 산 중턱까지 이미 굴삭기로 길을 다듬은 흔적이 있다. 더 이상 손을 대지 않고 그대로 두면 좋겠다. 조만간 심원사를 다시 방문해서 절 구경을 하고 싶다. 그때는 개 때문에 쫓겨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심원사 가는 길 © 2023. 구자룡


산행기록 앱인 램블러로 기록한 내용으로 살펴보면 심원사 초입(주차장)에서 심원사 일주문까지 그리고 되돌아오는 코스로 중간에 쌍룡폭포가 있는 곳까지 2.2km, 약 1시간 소요되었다. 약간의 가파른 오르막길과 자갈길을 빼면 무난한 산책이 가능한 코스였다. 




심원사 가는 길에 용유동, 용추, 쌍룡 등 지명에서 유래한 룡(龍)에 대한 뭔가가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아무것도 보지를 못했다. 다만, 가을이 깊어지면 만산홍엽을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단풍이 든 쌍룡계곡과 심원골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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