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소확행이 꿈을 가리키다

이제는 다르게 생각해야할 시점이다

by 추억과기억

어릴 때는 꿈을 어떤 직업과 동일시하게 만드는 교육으로 인해 직업 탐색을 하며 자라온 우리나라 사람이다보니 '어떤 직업을 가져야할까?'에 대해서만 생각하며 어른이 된다. 꿈이라고 '착각'한 직업이 되지 못하면 괜히 불행해지고 어쩌면 패배의식에 젖어들 수도 있다. 그래서 꿈은 어떤 직업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게 중요하다.


여러 경험을 하면서 정한 꿈은 '행복한 삶'이다. 특별하지 않지만 쉽게 이룰 수는 없는 걸 꿈이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뭘까? 이를 위해 찾게 된 것은 무엇일까?




행복이란 무엇일까?


살면서 여러 단어를 듣게 되는데 그 중에서 사람마다 다르게 정의할 수 있는 단어들이 몇개있다. 이들의 특징은 사전적인 의미를 경험을 통해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행복'인데 과연 행복은 뭘까?


행복은 '좋다'는 기분만 남게되는 감정이다.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꼈을 때를 떠올려보자. 원했던 성적이나 성과를 얻었을 때, 연인과 첫 데이트를 하며 손잡고 걷고 있을 때, 먹고 싶었던 걸 드디어 먹었을 때. 너무나 많은 상황이 떠오를 것이다. 예상했던 예상하지 못했던 간에 오롯이 그 순간에서 좋은 감정만 느껴지는 순간들인데 사라진 것이 있다. 바로 걱정이다.


행복한 순간에는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괴롭혔던 무언가가 떠오르지 않게 된다. 빚을 갚아야한다는 부담감, 적응하지 못해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막막함, 탈출구가 없음에 느껴졌던 걱정 등은 행복이라는 감정으로 인해 잠시 사라진다. 좋다라는 기분 하나만 남게 되는 그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다.


물론 그 순간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 흠이지만 (잠시일지라도) 잊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행복은 누구나 가지게 되는 목표이자 이상이다.


왜 행복이 꿈이 된 것일까?


행복하기만한 삶을 산다면 더할나위없이 성공한 인생일 것이다. 깊이와 무게 등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사람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기 때문에 그런 삶은 결코 쉽지 않다. 하나가 해결되면 다른 고민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그 고민이 또 괴롭히며 행복이라는 감정이 항상 자리잡지 못하게 만든다.


내 삶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보면서 깨달은 게 있다.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행복은 내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즉, 그 누구도 흔들 수 없는 것이 바로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유지되는지가 관건이었고 이는 행복에 대한 미련이 생기게 만들었다.


미련을 가진다는 건 원동력이 된다. 미련을 가지게 되면서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더 준비하고 놓치지 않기 위해 더 나아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행복의 경우 대부분이 순간에 머물기 때문에 그 시점을 놓치기 쉽고 누리기 어렵다. 그래서 행복에 대한 미련은 사람에게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다.


행복에 대한 미련은 결국 나를 발전하고 이겨내게끔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희망을 줬다. 자연스럽게 행복은 살아가는 목표이자 꿈이 되었다.


다른 소확행의 의미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줄임말로서 행복의 크기보다는 빈도에 집중하자는 의도 혹은 바람이 담겨있는 좋은 말이다. 이를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라는 말로 바꾸면 또다른 느낌을 준다. 행복 자체의 크기와 빈도 등 특성이 아닌 행복의 종류로 바뀌기 때문이다.


행복의 기준은 다른만큼 그 종류도 다양하다. 건널목에 딱 도착했을 때 바로 신호등이 바뀌어 건널 수 있는 행복부터 로또 1등 혹은 주식 대박으로 빚을 청산하는 행복까지 크기도 다양하다. 이렇듯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도 행복이고 거대하고 확실한 행복도 행복이다. 차이가 있다면 소소한 행복은 순간이라면 거대한 행복은 시간이라는 점. 그래서 거대한 행복에 대한 갈증이 더 큰 게 인간인 건 어쩔 수 없는 거 같다.


이를 다르게 보면 어떨까? 자주 볼 수 있는 행복과 어쩌다 볼 수 있는 행복으로 생각하면 느낌이 달라진다. 자주 보면서 짧게 고통을 잊는 것과 오랫동안 고통 속에 있다가 적당히 고통을 잊는 건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행복한 삶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자주 볼 수도 있고 어쩌다가도 볼 수 있는 매력은 주변의 모든 걸 돌아보게 하고 놓치지 않아야할 걸 대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소확행을 다르게 생각하면서 그 말을 자주 사용하게 되었다. 카페에 왔는데 때마침 내가 원하던 자리를 발견한 소확행도 있고 지각할 뻔 했지만 버스가 타이밍 좋게 와서 제시간에 도착한 소확행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확행을 찾으며 하루하루를 살다보면 대확행도 언젠가 찾아올테고 가지고 있는 행복에 대한 미련이 채워지기도 할테니까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생각하며 살다보니 가끔 헷갈리기도 한다. 살기 위해서 행복을 찾고 있는 건지 행복해서 살아가고 있는 건지. 이에 대해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없는 시점에도 결국 고민은 하나였다.


행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까?



지금 하루하루가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며 지내는 삶은 너무 힘들고 지긋지긋하다. 그 시간을 버티기 위해서는 결국 잠시라도 잊을 수 있는 행복이 중요하다.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찾다보면 행복에 대한 미련을 조금은 채울 수 있고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아닌 '확실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거다. 우리는 행복해야하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