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 비닐봉지 안에 무언가 있어

by 추억과기억

이유를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이 계속 됐다.

아마 진짜 정신과에 왔다는 것이 실감 나서

그런 거 같다.


첫 상담에서는 체크한 걸 토대로 상태를 파악하고

근원을 파악하기로 했다.

체크 리스트를 통해 나온 점수로 보아 우울증을 진단받았다.

(훗날 좀 괜찮아지고서 알게 된 사실인데 초진 때 나는 우울증 초고위험군이었다고 한다.)


내가 생각한 우울의 원인은 큰 줄기로 인해 파생된 여러 가지들이었다.

큰 줄기는 바로 돈 (Money)이다.

점점 기울어지던 가세는 자식들도 도와야 하는 수준까지 가버렸고

그로 인해 나는 미래를 그리기 힘든 '상황'이 '환경'으로 주어져버린 것이다.

돈이 많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다.


파생된 여러 가지들은

이런 상황을 만들어 환경을 조성해 버린 것에 대한 원망,

돈 걱정 때문에 조금 미뤘던 동물병원 방문이 결국 사랑하는 우리 댕댕이를 떠나보냈다는 자책감과 미안함,

미래를 그리기 너무 어렵다는 허탈함

등등이 있다.


이 가지들은 내가 만들어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걸 멈추지 못하게 된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

병원을 찾게 만든 원인이라 생각했다.


의사 : 위험한 생각도 하셨다고 했는데 시도는 안 하셨죠?

나 : 네. 용기가 없더라고요.

정확히는 안 죽을까 봐 무서워서 못했어요.

그리고 놀란 게 사람들은 죽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도 신기하더라고요.


이런 내용부터 각종 생각을 듣고서

사태를 파악한 후

상담과 치료를 향한 계획을 설명해 주셨다.

우선 내게 맞는 약의 농도(?)를 찾는 거다.

그래서 당분간은 한주에 한 번씩 내원을 하기로 했다.


약 처방을 받기 위해서 나왔는데 뭔가 마음이 편했다.

해결이 되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거만으로도

힐링이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얘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기가 참 쉽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오늘 이 방문이 내게 많은 위로가 되었다.


약을 처방받고 의사에게서 약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말로만 듣던 정신과 약.


지금도 그런 시선이 남아있지만

어린 시절 정신과는 매우 부정적으로만 그려졌다.

더군다나 정신과 약은 더욱 부정적이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그런 인식을 벗어났던 내가 경험한 정신과는

역시 부정적인 곳이 아니었다.


그냥 병원이었다.

주위에 흔하게 있고 아프면 방문하는 그런 병원.


설명을 다 듣고서

간호사 분이 '봉투에 넣어드릴까요?'라고

친절히 물어보시길래

'네 좀 부탁드릴게요'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등장한 건

다름 아닌 검정 비닐봉지..!

보자마자 나는 ? 라는 갈고리를

마음속에 찍어버렸다.


그것도 잠시 바로 이해됐다.

조금 더 내밀한 건강 정보다 보니까

저게 좋을 거 같다는 생각.


이런 배려도 필요한 곳에 나는 다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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