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꼭 포기하고 살아야 하나. 꿈을 이룬다는건 뭘까?
한국나이로 서른 둘, 주변 취직을 한 친구들은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같은 대학을 나온 친구들은 이제 초짜티를 벗고 꽤나 능숙한 선생님이 되어가고 있다. 또 사업을 시작한 친구들은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 돈을 꽤나 버는 친구도, 실패하고 절치부심하여 다시 도전하는 친구도 있다.
나는 한국교원대학교라는 특수목적대학교를 졸업했지만,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결국 쟁취하지 못했다. 애초에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간절함이 가득했던 대다수의 수험생들과 달리, '서울대학교 자퇴생' 같은 타이틀을 갖고 싶었던 오만했던 수험생이었다. 1~2년 정도 하고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는 직업인 '선생님'을 그만둬버리는 그런 '간지'를 부리고 싶었던것 같다. 간절함이 가득해도 힘든 시험을 이런 태도로 보았으니 결과는 뻔했다.
두번의 준비없는 시험과 두번의 그래도 꽤나 열심히 준비한 시험을 실패하고 스물 아홉에 책을 놓았다.
그럼 나는 애초에 한국교원대학교를 왜 갔을까? 서울촌놈이 청주에 있는 학교까지, 그것도 선생님이 될 마음도 없는 사람이 왜 교사를 양성하는 특수목적대에 진학 했을까. 그냥 단순했다. 바로 '축구'때문이었다. 아주 어렸을때부터 나는 축구에 미쳐 있었다. 축구매니아 이자, 한 때 축구감독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축구에 미쳐 있었다. 둥근것만 보면 발이 먼저 나갔고, 여차하면 월드클래스의 선수들이 꿈에 등장했다. 당연히 내 꿈은 축구선수였고 잠자리에 들때마다 눈을 감으면 환호하는 관중사이로 등장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그런데 그 꿈은 좌절되고 좌절되었다. 축구감독이었던 아버지는 역설적으로 나의 축구에 대한 꿈을 철저하게 가로 막았다. 만약 아버지가 축구계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면 어떤 일말의 가능성이 생겼을지 모르지만, 축구계에 직접 종사하고 있는 아버지는 아마추어가 아닌 '선수'로서의 축구 인생을 완벽하게 가로 막았다.
중학교 시절까지도 그런 좌절감이 컸다. 축구가 너무 좋았다. 더구나 축구로 유명한 중학교를 다녔었기에 축구부 친구들을 마주칠때마다 '난 선수하기엔 늦었겠지..'라는 생각과 '아 나도 축구하고싶은데'라는 생각이 공존했다. 어른들의 세뇌덕에 공부를 못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딱히 공부를 잘하는 편도 아니었다. 그렇게 지내다..
축구'선수'가 될 수 있는 길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