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루는 방법은 한가지 방법만 있는것일까?
"축구선수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축구선수를 동경하며 아쉬워하다 드디어 방법을 찾았다. 그 방법은 수능 일반전형으로 서울대 체육교육과에 진학하는 것이다. 서울대 축구부는 소수의 특기자도 받지만, 일반 전형으로 들어온 체대생을 중심으로 축구부 팀을 꾸린다는 것이다. (서울대를 제외한 다른 대학은 체육'특기자'로서만 축구선수를 선발하고 팀을 꾸린다.)
그때부터다. 공부를 잘해야 겠다고 마음먹은 시점.
지금의 성적으로는 불가능 하다는 현실적인 생각에 공부를 제대로 하기 시작했다. '축구선수' 라는 목표가 내게 어떤 무엇보다 큰 동기부여 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680명중 200~300등 언저리 였던 성적은 고2때 20등 안쪽으로 진입할 정도로 크게 변화했다. 친구가 생기면 독서실을 옮겨버렸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낭비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거의 모든 시간을 공부에 투자 했다. '축구선수'라는 타이틀과 '서울대학교'라는 타이틀은 학생시절 나에게 그렇게 매력적인 것이었다.
고3때 시절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신보다 한참 뒤떨어져 있던 모의고사 성적도 꽤나 잘나오기 시작했다. 꿈을 꾸었고 꿈을 따라가니 고통스러웠지만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스스로를 계속 밀어부치며 고3시절을 보냈다.
'고3시절' '수능시험'은 지나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더라. 라고 말하는 요즘 어른들은 그 시절 그렇게 치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한다. 난 그 절박한 시간들을 여전히 기억한다.
수능이 끝났다.
고점을 기대했던 언어영역은 너무 쉬워 고점을 기대할 수 없었다.(상대평가 였던 표준점수 기준), 개인적으로 너무 취약했던 수리영역은 점수를 가늠할 수 없었다. 기대보다 성적이 안나오리라 생각했고, 다시 한 번 해야겠다는 생각을 부모님께 말씀 드렸다.
성적표가 나왔다. 기대하지 않았던 수리영역의 점수가 잘나와 버렸다. 성적표를 들고 유명 체대입시 학원을 찾아갔다. 성적표를 보고 학원장이 한 말은 "연,고대는 되겠네. 근데 성적이 애매해서 서울대는 써봐야 알겠다."
였다. 한편으로 안도감이 들었지만, 연대 고대에는 축구부가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들어갈 수 없는 특기자만 갈 수 있는 초 엘리트 축구부만 있다.
난 서울대'축구부'에 들어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