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으로. -1부 끝.
목표가 생겼다. '축구선수' : 내가 진정으로 품고 있던 꿈.
한국 나이 서른둘, 만 나이 서른에 '해외진출한 축구선수는 한번 하고 죽어야겠다.' 라는 목표가 생겼다. 해외 어디로 나갈것인가, 나의 실력은 냉정하게 어느정도 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까, 라는 고민에 행복했다. 지금까지 내가 벌려논 일들에 대한 정리, 그리고 그에대한 책임, 거기에 더해 내가 현실적으로 나가서 지낼 수 있는 돈을 걱정해야 했다.
몸관리와 실력은 그 다음 문제였다. 내가 완벽히 준비되어 있어도, 현실적으로 해외에서 당장 지낼 수 있는 돈이없다면 나갈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열심히 돈을 벌었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내가 할 수 있고 잘 하면서도 괜찮은 소득을 가져다 주는것은 '체육 교사'였다. 물론 돈을 버는 수단으로서만 교사를 이용하고 내 책무를 피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나라에서 받는 돈 만큼은 학생에게 돌려주려 했고, 그 부분에서는 여전히 떳떳하다.
교사로서 근무할 때, 내가 축구부 주장시절 축구부를 데리고 축구클리닉을 받았던 김희태 축구센터와 다시 연이 되었다. 아버지의 도움이 컸다. 어린시절 '축구선수'라는 꿈을 가로막았지만, 오히려 성인이 된 이후에는 내가 축구를 하겠다고 하자 큰 도움을 주셨다. 아버지의 추천으로 퇴근후 '김희태 축구센터'에서 훈련하는 고등학교 선수들과 같이 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아버지와 연이 있던 김희태축구선테의 '강민석'감독님께서 흔쾌히 훈련에 받아주셨다.
2018년 후반기 난 그렇게 김희태 축구센터에서 퇴근후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고등학교 축구선수들과 즐겁게 훈련했다. 어떻게보면 시선이 곱지 못했을텐데 나의 훈련을 기분좋게 지켜봐 주며 응원해 주었던 '김선강'코치님 '박찬호'코치님에게는 아직도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그렇게 2019년 3월 나는 선수로서 데뷔를 꿈꾸며 아르헨티나로 떠난다.
-서른, 축구하기로 결심하다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