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작은 대회라도 '우승'이라는건 어렵다.
황소컵의 개최 시기가 선수대회와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준비했던 체력이나 전술들, 그리고 대회를 치르며 생긴 경험치들이 고스란히 반영될 수 있었다. 선수대회에서는 우리가 '호구'였지만 여기선 우리가 '호랑이'였다. 예선전에서는 거의 매경기 5골이상씩 박아넣으며 찍어 눌렀다.
선수대회를 준비했던 체력이 십분 발휘 되었고, 가뜩이나 공을 잘 찼던 09학번들과 대회를 통해 성장한 10, 11학번들은 꽤 노련해져 있었다.
결승까지는 매 경기 즐기면서 축구했고, 이렇게 우승하나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대회라도 1등, '우승'은 쉽지 않다 라는걸 여실히 느꼈다. 결승전에서 만난 상대는 서원대학교 체육교육과 축구동아리로서 매년 우승후보로 거론되는 잘하는 팀이었다. 아무래도 다른 대학 동아리팀과는 달리 체육전공자들 이기 때문에 체력도 좋았고, 고등학교 때 까지 축구선수를 한 선수도 있어 만만치 않았다.
'축구공은 둥글고, 둥근것은 때때로 예측하기 쉽지 않으니, 축구경기의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결국 아쉽게 결승에서 패배하고 준우승을 차지했다.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그라운드에서 희열도 환호도 느꼈기 때문에 아쉬움보다는 후련함이 컸다. 그렇게 09학번들과 나는 교생실습을 나갈 시간이 되었고, 대학에서의 축구는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이런 후련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교생도 큰 탈없이 나갔다 왔다. 09학번은 체육교사가 되기위한 본격적인 임용고시 준비생 생활을 시작하였고, 나도 어떻게 휩쓸려 임고생이 되었다. (사실 한국교원대학교에 다니면, 자연스레 임고생이 되기 마련이다.) 당연히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간절함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저런 잡생각에 임용고시 준비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 아니, 열심히 안한 정도가 아니라 느슨한 생활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느슨하게 시작한 임용고시 준비생 생활은 졸업이후 임용고시 재수, 삼수 할때까지 영향을 주었고, 결국 간절하지 못했던 나는 스물 아홉에 책을 덮었다.(1편참조) 공부한게 아깝지 않냐며 다시 한번 해보라는 주변 이야기들도 있었고 나 또한 그런 생각들을 안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책을 덮는다는것, 준비하던것을 내려 놓는다는 것, 내 한계를 인정하는것도 꽤나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스물 아홉에 또 내가 원하는것들을 찾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