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함께 자라나는 토론’을 생각하자

by 교준

좋은 토론이란 서로 다른 의견들 가운데 타당하고 건전한 논거를 많이 발견할 수 있는 토론이다. 비록 그런 논거들을 많이 찾지 못했을지라도, 서로 각자 생각과 의견이 ‘어떤 맥락 위에 놓여 있는지’, ‘어느 부분이 강하고 어느 부분이 약한지’, ‘지금의 생각과 의견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등의 물음들을 돌이켜보고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토론이라 할 수 있겠다.

참된 앎이란 단번에 알 수 없으며, 설령 참된 앎을 눈앞에 마주했다고 할지라도 그것만으로 곧바로 정신의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신의 성장이란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면서도(답을 얻으면서도) 잠시 멈추어 되돌아보는 활동(물음을 던지는 활동)을 끝없이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정신을 자라나게 만드는 공부란 ‘물음을 던지는 방법을 배우는’ 활동이 핵심이다. ‘답을 얻는 일’만을 배우면(學文) 거기에 머무르지만, 묻는 법을 배우면(學問) 계속 나아갈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신의 성장은 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말은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다. 하나는 다른 사람과 소통이나 나와의 대화, 즉 성찰 없이 골방에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골똘히 한다고 하여 정신이 자라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생각이란 원래 무엇에 대한 생각이기에, 즉 내 밖에서 들어오거나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대상으로 마주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당연히 대화의 모습을 띨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골방에서 하는 생각도 대화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 그렇다. 어떻게든 내 마음속에 있는 무언가를 대상화·타자화한다는 점에서 생각은 기본적으로 대화다. 그럼에도 그 대화의 목적이 오직 자신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모두를 위한 것인지에 따라 대화의 성격은 달라진다. 다르게 말하자면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에 머물러 배움의 흔적을 장신구로 삼는 경우 정신은 자라나지 않는다. 반면 자신을 낮추고 오직 진리(참된 생각)를 사랑하는 경우에만 정신은 자라난다.

다른 하나는 두루 모여 앉아 함께 이야기해 놓고서 어떤 사람들은 자라나지 않으면서 다른 어떤 사람들만 자라나는 경우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토론을 통해서 추구하는 자라남은 ‘함께 자라나는 것’이다. 숲속 식물들이 저마다 생장 속도와 방식은 다르지만 더불어 자라나듯이, 한 자리에 모여 한 권의 책을 가지고 이런저런 내용으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의미를 묻는 활동을 통해서 저마다 생각과 입장이 확장되어야 한다.

한 개인의 정신적인 성장은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참 제자리를 걷는 듯, 머물러 있다가 갑자기 비약적으로 자라난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어느 부분에서 한참 머무르면서 끈기 있게 생각을 밀어붙여야만 그다음의 단계로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책을 읽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내 생각과 입장이 확장되었다면, 끈기 있게 생각을 밀어붙일 수 있도록 내 생각을 떼어 내어 한편의 완성된 글로 다듬어야 한다. 생각은 마치 공기 속에 퍼지는 연기와도 같아서, 당장엔 또렷하게 보이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흩어져 버린다. 재미있게 책을 읽고 신나게 토론하고 나서 문득 밀려오는 공허함에 빠지지 않으려면 글을 써야 한다. 글을 써서 남기고 다시 되새기고 돌이켜보면서 다듬고 보완하는 과정이 정신의 성장에서 중요한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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