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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기초과정에는 왜 철학 수업이 없어요?

by 교준

1.

매년 빠짐없이 기초과정의 학생들 사이에서 나오는 질문입니다. 심지어 기초과정 학생회 선거때 공약으로 ‘철학 수업 신설!’이 종종 등장하기도 합니다. 학생들이 오며 가며 저를 붙들고 장난 섞은 말투로 저 질문을 던질 때면 ‘아직 배울 때가 아니다!’라고 눙칩니다. 몇몇 심각한 눈빛의 학생들이 따로 찾아와서 진지하게 물어오면, 저는 <논어> ‘학이’편의 저 유명한 구절을 들려줍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젊은이들은 집에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밖에 나와서는 공손하며, 행실은 삼가고 말은 미덥게 하며, 뭇사람을 널리 사랑하되 어진 사람을 가까이 해야 한다. 이와 같이 행하고도 힘이 남으면 그 다음에 글을 배워야 한다.”

(子曰(자왈) 弟子入則孝(제자입즉효)하고 出則弟(출즉제)하며 謹而信(근이신)하며 汎愛衆(범애중)하되 而親仁(이친인)이니 行有餘力(행유여력)이어든 則以學文(즉이학문)이니라)


이 말을 받아 든 심각한 눈빛의 학생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그래도 유명한 공자님 말씀이려니 뭔가 있겠지’ 하면서도, 뒤로는 ‘그래서 도대체 왜 기초과정에서는 철학 수업을 열지 않는다는 거야?’라고 웅얼거리며 교실로 돌아갑니다. 이런 저런 활동, 행사들 사이에서 뛰어 다니다가 시간이 흐르고 본과정에 올라가면 비로소 철학 수업을 만나게 됩니다. 기초과정의 철학 수업 개설 문제는 더 이상 자신의 문제가 아닙니다.


2.

부끄럽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천둥벌거숭이’같았던 20대의 저는 공자를 이른바 ‘꼰대’로 생각하고 거들떠 보지도 않았습니다. 30대에는 특히 한국 사회에서 ‘인성’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상황에서 여전히 저 구절이 영 탐탁지 않았습니다. 40대가 되어 다시 저 문구를 보니 이전에는 보이지 않은 단어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특히 ‘젊은이’(弟子)와 ‘남는 힘’(餘力)이 저의 눈길을 붙들어 맵니다. 언뜻 생각하면, 인생에서 가장 힘이 넘치는 때가 언제입니까? 바로 젊은 시절입니다. 어린이들은 어디를 갈 때에도 걷지 않고 뛰어 갑니다. 청소년들은 신나서 밤낮으로 놀 때면 눈이 풀려 있다가도 금세 기운을 차리고 또 쌩쌩하게 놉니다. 젊은 나이의 힘으로 새로운 일에 과감하게 뛰어들기도 하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기운 넘치는 시기의 사람에게 ‘남는’ 힘을 이야기 하다니요?

저는 2,500년 전 공자님이 구구절절 펼쳐 놓은 ‘효제’(孝弟), ‘근신’(謹信), ‘범애’(汎愛), ‘친인’(親仁)을 21세기의 청소년들의 삶으로 과감하게 바꾸어 읽어 봅니다. 그것은 바로 ‘일상을 잘 사는 것’입니다. 사람의 일상에는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일상을 잘 산다는 것은, ‘삶 속에서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자신과 직·간접적으로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내는 것, 그 관계를 충실하게 맺는 것’입니다. 이 일은 사람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면서도 그만큼 어렵고 힘이 드는 일입니다. (저를 포함하여, 모든 어른들은 각자의 상황에서 관계맺기의 어려움이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 뼈저리게 공감할 것입니다!!) 도무지 힘이 남아나질 않습니다. 특히 또래 관계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며 자라나야 하는 젊은이들, 지혜학교 학생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신이 가진 온 힘을 여기에 쏟아야 합니다. 그러니 이 시기의 젊은이들은, 제대로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산다면 도통 힘이 남아 날 틈이 없습니다!


3.

우리 학생들이 지혜학교를 입학해서 1, 2학년 교실에 앉아 있다 보면, 이제 본격적으로 이른바, ‘관계의 문제’를 겪습니다. 매년 상황도 각기 다르고, 구체적인 이유도 천차만별입니다. 머리 속에서 사방팔방으로 펼쳐져 있던 뉴런들이 슬슬 가지치기를 해서일까요? 초등학교 다닐 때에는 생각과 감정을 꾹꾹 누르며 지나가기도 했던 일들이 이제는 몸 밖으로 펑펑 터져 나옵니다. 너도 나도 시한폭탄이 되는 이 관계에서 부딪히고 또 부대끼다가 급기야 도저히 학교 못 다니겠다고 울고 불고 난리도 아닙니다.

지혜학교의 선생님들은 오랫동안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생각했습니다. 기초과정에서 필요한 공부는 머리로 합리적인 사고를 중시하는 철학이 아니었습니다. 관계를 잘 맺을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기르는 일이 먼저였습니다. 그리고 그 관계의 핵심은 ‘자기-관계’였습니다. 내가 나 자신과 부대끼지 않고,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먼저 나의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면서 이를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을 때, 그 다음으로 비로소 주변 사람들과 충실히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자기 관계 속에서 마음을 잘 알아보고 돌보며, 주변과 관계를 충실히 맺는 것, 그 관계망을 사람에서 자연으로 넓히는 것까지. 기초과정 교육의 핵심은 ‘관계’입니다. 그래서 철학 대신 ‘생태’가 있고, ‘문학’이 있으며, 여러 종류의 ‘공동체 활동’이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지난 12년 간의 경험에서 지켜보건대, 기초과정에서 온갖 갈등과 시행착오를 잘 겪어내어, 그 관계가 단단하게 잘 다져진 기수의 학생들은 본과정, 심화과정을 차근차근 올라가면서 더불어 성장하는 폭과 깊이가 정말 남다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관계를 잘 맺기 위해 힘을 쏟고 난 뒤에, 그 바탕 위에서 철학을 포함하여 자신의 공부를 단단히 세울 수 있겠습니다. 아, 정말 공자님 말씀에 틀린 게 하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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