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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망고 Sep 03. 2022

그 이유를 알 수 있다면

왜 병에 걸리는 걸까요?

얇게 썰린 수육이 쌓여 있다. 젓가락으로 들어 올려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 종류의 층이 여러 겹으로 쌓여서 이루어진 것을 볼 수가 있다. 딱 삼 층으로만 이루어진 것도 있고 한 종류의 층이 더 추가되어 사 층을 이루기도 하고 또 한 층이 추가되어 오 층을 이루기도 한다. 하나의 층은 약간 붉은 빛깔이 도는 하얀색의 방추형 알갱이들이 가지런히 대오를 이루고 나열되어 있다. 그 붉은 빛깔이라는 것이 신기해서 젓가락으로 들어 올려 찬찬히 살펴보다가 형광등에 적당한 각도로 비추이면 무지갯빛으로 빛나 보일 때가 있다. 이 부분이 수육의 핵심이자 몸통이고 근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체로 이 것 옆에 붙어 있는 것은 비교적 투명하다. 하지만 깨끗하게 투명한 것이 아니라 탁하게 빛을 반사하고 알갱이 모양이 명확하다기보다 뚱뚱한 몸집들이 꽉 끼여 땀을 흘리는 듯하다. 수육의 중심은 아니지만 허여멀거한 층이 맛의 핵심이다. 가장 바깥쪽 부분의 특징은 이 음식점의 특징처럼 보인다. 맛을 보았을 때 살짝 족발인가?라는 쫄깃함이 느껴지는 것은 바로 달콤한 껍질 때문이다.


와이프는 의심의 눈초리로 접시에 담긴 물체를 훑어보고는 결의에 찬 젓가락 놀림으로 각 층을 처참하게 찢어발긴다. 어떤 요소들 때문인지는 설명할 수 없지만 세 가지 층 중에서 고기층과 기름층이 어우러질 때 그 시너지로 인해 수육 특유의 맛이 난다. ‘쿰쿰하다’, ‘꼬릿 하다’ 그리고 그 덕분에 풍미와 감칠맛을 내는 수육 맛의 원천이 허망하게 사라지고 있다. 분리된 층 중에 고기층을 집어 들어서 맛을 본다. 다행히 돼지 잡내는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사실 와이프는 냄새에 민감해서 수육을 즐기는 편이 아니다. 그런데 큰 마음먹고 면접을 보고서 지쳐버린 나를 위로해주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럼에도 ‘이게 왜 맛있어?’라고 다소 냉소 섞인 물음을 건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날 병원 지하에 위치한 직원 식당에서 먹은 수육은 이런 맛이 아니었다. 고기는 말라 있었고 기름은 텁텁했다. 그나마 상추로 덮고 마늘과 쌈장을 채워 넣어서 양념이라는 것을 하면 그런대로 먹음직스러워진다. 당직이기 때문에 수술방에서 저녁 먹기 전에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당직을 앞둔 긴장감으로 위장의 돌기들이 곤두서 있고 묘한 불안감이 마음을 간지럽힌다. 기름기 있는 음식을 잘 소화시키지 못하는 나이기에 이 고기를 먹으면 분명 내일 아침 수술방에 들어가기 전에 화장실에서 한바탕 난리를 치르리라. 그래도 고기를 목구멍으로 넘길 때의 푸근함이 있기에 당직 전에 나오는 수육은 반갑다. 수술방에서의 피로를 쌈에 함께 싸서 잘근잘근 씹어 버리고 마늘의 알싸함으로 당직을 앞둔 불안함을 달랜다. 


첫 콜은 밤 11시에 왔다. 대학원 입시용 자기소개서를 쓰는 동시에 문자로 간호사 선생님들이 보내준 시시콜콜한 일들을 처리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리를 뜨는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전화로 짧게, 하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길 수도 있는 시간 동안 의미 없는 푸념 또는 궁시렁거림을 내뱉다가 ‘네….’하면서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킨다. 지금 처리를 해두어야 밤에 편히 깨지 않고 잘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당직실을 나가면서 어금니 꼬옥 깨물고 한마디 내뱉는 말은 그 환자를 담당하는 저년차의 이름이다. 그러면 야식을 먹고 있던 당직자들이 킥킥거리면서 “아 걔? “라고 하며 한바탕 웃는다. 


병원은 더럽게 커서 한 200미터는 걸어가야 병동에 도달할 수 있다. 전화기 너머로 전해진 푸념에는 긴 동선에 대한 불만도 포함되어 있다. 창 밖에 떠 있는 달이 약 올리듯이 밝게 웃고 있다. 콜을 했던 간호사를 만나서 서로 멋쩍게 웃는다. 푸념을 해서 미안해서 그래도 푸념을 들어줘서 고마워서 웃고 간호사는 그래도 와줘서 고마워서 이제 환자의 끈질긴 요구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서 웃는다. 그리고 서로 환자를 담당하는 그 저년차가 저지레 한 것을 치우는 중이라는 것을 알기에 모종의 동지애를 매개로 합심한다. 


환자의 요구는 간단했다. 곧 수술을 받는데 설명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담당 전공의는 충분히 설명을 했고 당시에는 납득을 했는데 밤이 되고 걱정이 많아지니 궁금한 것이 생겼을 수 있다. 아니면 문제의 저년차가 설명을 불충분하게 하고는 질문을 할 시간도 안 주고 자리를 떠버렸을 수도 있다. 질문을 받으려고 했는데 급한 연락을 받았을 수도 있다. 또는 밤이 돼서 새로운 보호자가 와서는 궁금한 것이 생겼다고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다. 가지고 온 패드에는 환자정보를 요약한 종이가 여러 장 꽂혀 있는데 몇 장 집어서 뒤집는다. 그 위에 수술 모식도를 그리며 설명을 시작한다. 수술받는 입장에서 느껴질 불안감이 있을 것이고 수술 후에 자신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합병증은 어떤 것들이 있을지, 이후의 치료 과정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요구는 낮에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 환자와 보호자의 듣는 태도에 따라서 설명이 얼마나 자세할지, 얼마나 친절할지 결정된다. 


이런 설명을 하는 와중에 때로 ‘왜 이런 병에 걸린 거예요?’라고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많은 것을 함축하는 질문이다. 환자복이라는 죄수복을 입고 병이 만들어 놓은 감옥에서 살아가는 인생이 되어버린 절망감을 토로하는 질문이기도 하고 ‘왜 인간은 이런 고통을 받는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이기도 하며 신을 원망하는 종교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또는 건강을 해쳤을 음식들이나 부족했던 운동, 즐겨온 기호품 등을 떠올리며 자기가 살아온 삶이나 생활습관에 대한 후회를 하는 참회의 질문도 된다. 간혹 호기심으로 질병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궁금해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눈치를 잘 보아서 위로를 해주거나 설명을 해주거나 해야 한다. 


이 질문은 전공의였던 나를 자극하는 질문이기도 해서 환자를 만나고 온 뒤에 인터넷과 교과서를 뒤지면서 공부를 하게 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는 추정뿐이거나 ‘잘 모른다’로 답답하게 끝난다. 그래서 메커니즘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경우에 ‘왜 하나마나한 질문을 할까?’라고 성급히 생각해버리기도 한다.


기초의학 대학원 진학을 위한 입시 준비를 하다가 와서인지 이 날은 질문을 하는 환자의 마음을 살피기보다 메커니즘에 대한 설명을 해버렸다. 하나마나 한 설명의 끝은 역시나 ‘모른다’였다. 질문에 묻은 환자의 감정을 멀리 밀쳐둔 것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는지 위로의 말을 짧게 건네며 병실을 나섰다. 병동에는 일이 쌓여 있고 간호사들이 콜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콜이 피크를 찍는 시간이 온 것이다. 밤 동안 다시 먼길을 오지 않으려면 병동에서 최대한 많은 일을 처리해두고 당직실로 돌아가야 한다. 


수많은 질환들 중에 유전자 하나가 잘 못 돼서 생기는 것들이 있다. 이런 것들은 발생 원인이 명쾌하게 설명되어 있다. 그리고 유전자 조작 기술이 발전하면 치료제가 나올 것이라는 희망도 가질 수 있다. 노화로 인해 쌓이는 자연발생 돌연변이 때문에 질환이 발생할 것이라는 설명도 등장했다. 아무튼 병이 왜 생기는지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병마 다도 다르고 각 질환이 모두 하나의 학문 분야일 정도로 복잡하다. 현대 발달한 의학으로도 측정하지 못하고 계수하지 못하는 여러 인자들로 인해 발생한 것일 수도 있고 그들의 합이 또 다른 인자가 되어 처참한 결과물을 냈을 수도 있다. ‘질병의 원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느끼는 무력함 때문에 저년차일 때 친분이 쌓인 경증환자들과 보호자들에게는 ‘재수가 없었다.’라고 농담조로 말하고 함께 웃고 넘어가기도 했다.


면접에서 왜 대학원에 지원했는지 묻는 교수님들 앞에서 ‘질병의 원인을 밝히는데 기여하고 싶다.’고 떠들고 수육 집에 왔다. 교수님들이 ‘입에 발린 소리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입 안에서 고기 알갱이들이 으스러지면서 육즙이라고 불리는 액체가 스며 나온다. 기름이 어우러져서 왜인지 설명할 길 없지만 맛있는 수육의 맛이 꽃 폈다. 하지만 이 날은 맛이 씁쓸하다. 병도 수육도 왜인지 설명할 수 없는데 기름덩이는 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다고 우스꽝스럽게 생각한다. 와이프는 기름덩이를 떼 내려고 젓가락을 놀리고 있고 오늘만큼은 군소리하지 않고 고깃덩이를 잡아준다. 수육 맛을 모른다 어쩐다 잔소리하지 않는 것이 평소와 다르다고 느껴서인지 와이프가 잠깐 나를 쳐다보더니 다시 집중한다. 이제 그만 숟가락을 집어 칼국수 국물 맛을 본다. 진득한 국물이 칼칼하니 속이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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