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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호퍼 Apr 05. 2021

결단의 책상에 앉으면 자동 8년?

현직 프리미엄에도 불구하고 재선에 실패한 역대 대통령

백악관 집무실(oval office) 한가운데엔 고풍스러운 책상이 놓여 있다. '대통령의 책상' 또는 '결단의 책상(the resolute desk)'으로 불린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결단의 책상에 일단 앉으면 자동 8년”이라는 속설이 있다. 현직 대통령의 프리미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대통령이 결단의 책상에 앉아 참모들과 뭔가를 의논하거나 서류를 읽고 거기에 서명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최고의 홍보이자 선거운동이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결단의 책상에 앉아 ‘외롭고 고독한 결단'을 내릴 때의 대통령은 정파를 초월한 영웅처럼 보이기도 한다.


1962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응하여 해상봉쇄 행정명령에 서명할 때,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9.11 테러로 공포에 빠진 미국인들을 위로하는 연설을 할 때도 결단의 책상에서였다. 한국전 참전을 이 책상 위에서 발표했던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The Buck Stops Here)"라는 명패를 이 책상 위에 뒀다고 한다.


책상의 유래

결단의 책상이 영국 해군의 선박에서 나온 목재로 만들어졌고, 책상의 이름도 선박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은 상당히 흥미롭다. 전후 사정은 이렇다. 영국 정부는 1850년 북극해를 탐사하기 위해 배 한 척을 진수했는데, 그 이름이 <HMS Resolute>였다. 'HMS'는 여왕의 배란 뜻으로 'Her Majesty's Ship'의 약자다. 그리고, "흔들리지 말고 단호하게 북극해를 개척하라"는 의미로 'Resolute'로 명명을 했다. 실제로도 단단한 오크나무를 사용해 건조되었다. 빅토리아 여왕은 1852년 레졸루트호를 북극해로 보냈는데, 1954년 빙산에 갇혀버렸고 선원들은 배를 버리고 겨우 탈출할 수 있었다.

▲ 빙하에 갇힌 Resolute호의 당시 상황을 그린 삽화(출처: 위키피디아)


그로부터 1년 후, 미국의 포경선인 <George Henry>호가 표류하던 레졸루트호를 발견해서 코네티컷 주 뉴런던으로 인양했다. 연방 상원의원이었던 제임스 메이슨은 미국 정부가 이 배를 매입하여 '영국에 대한 존중(national courtesy)'을 표시하는 일환으로 영국에 되돌려주자는 내용의 법안을 제출했다. 이에 상원은 4만 달러에 배를 사들여 '화해의 증표(a token of comity)'로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에게 선물했다. 레졸루트호는 한동안 영국 해군이 사용하다가 1879년 해체를 하면서 배를 되돌려준 감사의 표시로 배에서 나온 참나무를 사용하여 책상을 만들어 미국 정부에 선물했다. 책상 뒤편에는 "우호의 상징으로 레졸루트호를 되찾아준 미국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 책상을 드립니다"라는 명판이 붙어 있다.


책상과 관련된 몇 가지 사실

이 책상은 두 번의 개조가 이루어졌다. 소아마비를 앓았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보기를 원치 않았다. 그래서 책상의 전면부에 미국의 국장을 새긴 문짝을 덧댔다. 국장 속의 독수리는 두발에 평화의 올리브 가지와 무력을 상징하는 화살을 각각 쥐고 있다. 그리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캘리포니아에서 가져온 자신의 의자가 너무 높아 무릎이 책상에 부딪히자 이 책상의 높이를 2인치가량 높였다.

▲ 케네디 대통령의 딸 캐롤라인과 사촌인 케리(로버트 케네디 당시 법무부장관의 딸)가 책상 속에 들어가 밖을 내다보고 있다(오른쪽).

미국에서는 전통적으로  후임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서 결단의 책상 위에 올려놓는 전통이 있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서 새로운 대통령에게 축하와 조언을 주고받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전통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처음 시작했다. 그의 후임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도 자신의 재선을 저지한 빌 클린턴에게 "당신의 성공이 우리나라의 성공이다. 당신을 열렬히 응원한다"는 편지를 남겼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편지를 남겼다. 아래는 편지의 전문이다.

놀라운 선거 운동을 축하한다. 수백만 명이 당신에게 희망을 걸었고, 당을 불문하고 우리 모두는 당신 임기 중 번영과 안보가 확장되길 바라야 한다. 대통령 직은 성공을 위한 명백한 청사진이 없는 독특한 업무다. 그래서 내가 딱히 도움이 될 충고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8년간의 경험으로 몇 가지만 이야기해 보겠다.

첫째, 우리는 둘 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엄청난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모두가 이렇게 운이 좋지는 않다. 열심히 노력하려 하는 모든 어린이와 가정들에 성공의 사다리를 더 많이 만들어 줄 수 있도록,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

둘째, 세계에서 미국의 리더십은 정말이지 필요 불가결하다. 행동과 모범을 통해 냉전 이후 꾸준히 성장해온 국제 질서를 유지하는 게 우리의 몫이다. 우리 자신의 부와 안전도 그에 기대고 있다.
셋째, 우리는 이 자리를 잠시 맡을 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선조들이 피 흘리며 싸워 지킨 법치, 분권, 평등한 보호, 시민적 자유 등의 민주적 제도와 정책의 수호자 역할을 한다. 일상의 정치가 흔들리는 것과는 무관하게, 이러한 우리 민주주의의 수단들이 최소한 더 약해지지는 않도록 지키는 게 우리의 몫이다.

마지막으로, 온갖 일들과 책임이 밀어닥칠 때, 친구들과 가족을 위한 시간을 내라. 피할 수 없는 힘든 시간을 견뎌내는데 그들이 도움이 될 것이다.
미셸과 나는 이 위대한 모험을 떠나는 당신과 멜라니아에게 행운을 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어떤 식으로든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

행운과 성공을 빌며,
BO

트럼프 전 대통령도 후임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45~46개 단어 정도의 짧은 편지를 남겼다고 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선거 결과에 대한 '불복'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후임 대통령에 대해 덕담을 남기는 전통은 이어나가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 영화 <내셔널 트레져: 비밀의 책>에서 주인공(니콜라스 케이지)이 비밀을 푸는 중요한 실마리를 결단의 책상에서 찾는다.


미국 대통령의 재선율

미국에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1900년 이후로 21명의 대통령 중에서 임기 중 병사한 워런 G. 하딩과 재선거가 아직 도래하지 않은 조 바이든을 제외한 19명 만을 놓고 보면, 이들 중 13명이 재선에 성공했다. 68.4%의 확률이다. 재선에 실패한 6명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제27대), 허버트 후버(제31대), 제럴드 포드(제38대), 지미 카터(제39대), 조지 H. W. 부시(제41대), 도널드 트럼프(제45대)다.


현직 대통령의 프리미엄에도 불구하고 단임에 그치는 것은 ‘불명예’나 다름없다. ‘아버지 부시’로 통하는 조지 H. W. 부시는 재선에 실패하고 나서 한동안 “나는 단임 대통령이었어”라는 자조 섞인 말을 습관처럼 내뱉었을 정도다.


6명의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한 가장 큰 이유로 경제정책의 실패를 꼽을 수 있다.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재임 중 역사상 최악의 경제위기로 꼽히는 대공황에 직면했다. 최악의 불경기 상황에도 후버 대통령은 정부의 제한적 개입을 주장하면서 균형 예산과 보호 관세 기조를 유지함으로써 경제위기 대응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닉슨 대통령의 사임으로 대통령직에 오른 제럴드 포드도 임기 4년 중 3년 내내 마이너스 경제성장을 기록하다가 1976년 재선이 있던 해에만 5.39%의 경제성장률로 깜짝 회복세를 보였지만 대세를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지미 카터도 선거로 뽑힌 대통령이 아니라 전임인 닉슨 대통령이 탄핵당하자 대통령직을 승계했다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게다가 재임 중 맞은 오일 쇼크로 물가는 상승하고 산업 경쟁력은 급속히 하락했다. 그 결과, 재선을 치렀던 1980년의 경제성장률이 -0.26%를 기록할 정도로 초라한 경제성적표와 함께 단임에 그치고 말았다.


조지 H. W. 부시도 마찬가지다. 걸프전 승리를 발판으로 한 때 지지율이 90%에 육박할 정도로 영웅시되었지만, 임기 내내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정도로 경제 성적표는 낙제점이었다. 결국 민주당 빌 클린턴의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구호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 실패에는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지만 코로나19가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박빙의 승부에서 팬데믹 대응 실패와 이로 인한 경제 침체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겐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었다. 2020년 4월의 실업률이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최고치(10.2%)보다도 높은 11.1%를 기록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후보 자신이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자가격리되는 혼란을 야기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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