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 윙 The West Wing> ‘시즌 6’에서 묘사한 민주당의 전당대회 장면은 이 드라마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감동적이다.
"진정한 민주주의, 참된 정치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웨스트 윙>은 미국 NBC 방송국에서 방영한 드라마로 1999년부터 2006년까지 총 7개의 시즌으로 방송되었다. 시즌 6과 시즌 7에서 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오는 히스패닉계인 매슈 산토스의 모델은 오바마 대통령이라고 한다. 각본을 쓸 당시 오바마의 경력은 초선의 상원의원과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 찬조 연설 정도였으나 드라마 스토리처럼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을 발판 삼아 전국적 지명도를 얻었고, 극적으로 대통령직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 산토스 후보가 민주당 전당대회장에서 연설하는 장면(유튜브 동영상)
시즌 6의 민주당 전당대회 장면을 잠시 살펴보자.
전당대회가 열리기 직전까지도 후보가 결정되지 않자 당 지도부와 후보들은 극심한 혼란 상태에 빠져들었다. 이 와중에 군소 후보인 매슈 산토스는 지도부로부터 후보를 사퇴하고 다른 후보를 지지하라는 거센 압력에 시달린다. 산토스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다. 전당대회 무대에 덤덤히 오른 산토스는 마이크를 두 손으로 쥐고선 크게 심호흡을 한다. 다른 대통령 후보는 물론 전당대회장에 모인 대부분의 당원은 산토스의 사퇴 연설을 기대하며 그를 주목한다.
“제가 존경하는 많은 분께서, 지금 이 기회를 빌려 훌륭한 다른 후보를 지지하고 사퇴함으로써 여러분의 후보자 결정을 도와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이유는, 투표권은 여러분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권한은 여러분의 몫이니까요.
이번 주에 전당 대회를 치르면서, 공직과 특혜로 여기 계신 선거인단 여러분들을 회유하라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또한, 당의 통합이 여러분의 선거권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절대 아닙니다!
여러분이 결정권을 갖고 있습니다. 완벽한 후보라 생각해서 우리에게 투표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여러분께 해줄 수 있는 것만을 생각하고 투표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이상과, 여러분의 희망, 여러분의 꿈을 위해 우리에게 투표하십시오!
강하고 자유로운 미국을 지켜나갈 덕목을 구현하는 후보에게 투표하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여러분은 시애틀, 보스턴, 마이애미, 오마하, 털사, 시카고, 애틀랜타 등 여러분의 고향에 가셔서 자랑스럽게 외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민주당원이라고!"
산토스는 감동적이고 진솔한 연설만으로 대역전 드라마를 연출하며 대통령 후보로 지명을 받게 된다. 드라마에서의 열띤 연설 장면은 드라마가 주는 감동을 넘어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동경마저 주기에 충분하다.
이 드라마 장면을 보고 “실제의 전당대회장에서 후보들의 열띤 연설이 펼쳐질까”라고 궁금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실의 전당대회는 <웨스트 윙>의 장면과는 사뭇 다르다. 실제 전당대회는 미리 정해진 각본에 따라 형식적으로 대통령 후보를 지명하는 일종의 의례적 행사이자, 고도로 연출된 이벤트에 가깝다. 심지어 전당대회 장에 운집한 수많은 사람들은 사회자의 멘트에 따라 각 후보가 이미 확보한 대의원 숫자를 가지고 일종의 ‘셈 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당대회가 대통령 후보를 지명하는 형식적 절차로서의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당대회는 당의 미래와 방향을 결정짓는 정강정책을 채택하고 예비선거 기간에 사분오열됐던 당을 다시 하나로 모으는 ‘화합의 장’이기도 하다. 특히 차세대 정치 지도자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무대이자 정치스타의 등용문으로서도 의미가 있다. 실제로 2004년 7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인 존 케리를 띄우는 역할을 맡았던 버락 오바마가 17분짜리 연설을 통해 일약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했고 4년 후 대통령직을 거머쥐기에 이르렀다.
당시 오바마는 전당대회 연설을 이렇게 시작했다.
“전당대회에서 연설할 특권을 제게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겐 아주 특별한 영광입니다. 솔직히 저는 이 자리에 서기엔 의외의 인물입니다.”
자타공인 의외의 인물이 전당대회 기조연설을 맡았고, 이 연설을 통해 전국적 인물로 떠오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