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한이의 첫 연애사
4월 중순, 따뜻한 봄날이었다.
"억해야, 나 대오서점 좀 갔다 온다."
"또? 너 요즘 서점 맨날 가네."
"책 좀 사려고. 금방 올게."
해한이가 서둘러 나갔다.
30분쯤 지나서 해한이가 돌아왔는데, 표정이 이상했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얼굴이 빨개졌는데?"
"더워서 그래!"
해한이는 황급히 부엌으로 들어갔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다음 날 저녁, 서영이 가게에 왔다.
"억해씨!"
"어, 서영씨. 어서 와."
요즘 우리는 가끔 반말을 섞어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이제는 자연스러웠다.
"오늘 학원에서 보쌈 만드는 거 배웠어."
"보쌈? 어땠어?"
"어려웠어. 고기 삶는 게 생각보다 힘들더라고."
"보쌈은 시간이 중요하지. 너무 오래 삶으면 퍽퍽해지고."
"그쵸? 선생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어."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데, 해한이가 들어왔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학생이 함께였다.
"억해야, 서영이 누나."
"어, 해한아. 그리고... 이분은 누구?"
"아, 이분은... 민지라고 하는데."
여학생이 수줍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민지라고 해요."
"안녕하세요. 저는 기억해고요, 이분은 윤서영씨예요."
"앗, 기억요리사! 오빠가 기억이구나."
민지는 가게를 둘러보며 신기해했다.
해한이가 어색하게 말했다.
"그게... 민지가 여기 궁금하다고 해서... 그래서..."
"앉으세요. 편하게 앉으세요."
서영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민지와 해한이가 자리에 앉았다.
"해한이 오빠가 여기 이야기 많이 해줬어요. 정말 신기한 곳이라고."
"그래요? 해한이가 그랬어요?"
"네! 그리고 오빠 친구분이 요리 정말 잘하신다고."
해한이의 얼굴이 더 빨개졌다.
나는 서영과 눈빛을 교환했다. 서영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민지씨는 어떻게 해한이를 알게 되셨어요?"
서영이 물었다.
"저 대오서점에서 아르바이트하거든요. 해한이 오빠가 자주 오세요."
"아, 그래서 해한이가 요즘 서점을 자주 가는구나."
내가 말했다. 해한이가 나를 째려봤다.
"그냥... 책 보러 간 건데."
"맞아요. 오빠가 책 정말 많이 보세요. 저한테 추천도 해주시고."
민지는 해한이를 보며 웃었다.
"기억요리사에 오셨으니 무슨 음식 드시고 싶으세요?"
"음... 보쌈 먹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민지씨가 조심스래 말했다.
"보쌈? 좋지. 만들어줄게요."
"진짜? 고맙다!" 해한이가 더 좋아한다.
나는 서영을 바라봤다.
"서영씨, 같이 만들어볼래요? 오늘 학원에서 배운 거 복습도 할 겸."
"좋아요!"
우리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억해씨."
서영이 속삭였다.
"해한씨, 완전히 반한 것 같은데?"
"그러게. 처음 보는 표정이네."
"민지씨도 해한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눈빛 봤어요?"
"응, 나도 봤어."
우리는 웃으며 보쌈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보쌈 만들기
"서영씨, 오늘은 서영씨가 주도해봐요. 내가 옆에서 도와줄게."
"제가요? 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 오늘 학원에서 배웠잖아."
고기 삶기
돼지고기 삼겹살 600g을 준비했다.
"먼저 고기를 찬물에 30분 정도 담가서 핏물을 빼요."
"네!"
서영이 고기를 물에 담갔다.
30분 후, 큰 냄비에 물을 넉넉히 붓고 고기를 넣었다.
"여기에 된장 1큰술을 넣어요. 잡내를 없애주거든요."
서영이 된장을 넣었다.
"그리고 생강 1쪽, 대파 1대, 양파 반개, 마늘 5쪽, 통후추 1작은술을 넣어요."
"이렇게요?"
"네. 그리고 청주 2큰술도 넣어요."
"학원에서 배운 거랑 똑같아요!"
센 불에서 끓이기 시작했다.
"끓어오르면 거품을 걷어내야 해요."
"네, 이렇게요?"
서영이 부지런히 거품을 걷어냈다.
"잘하네. 그럼 이제 중약불로 줄이고 40분간 삶아요."
"40분이요?"
"응. 젓가락으로 찔러봤을 때 쑥 들어가면 다 된 거예요."
쌈 채소와 양념 준비
고기가 삶아지는 동안 쌈 채소를 준비했다.
상추, 깻잎, 배추겉절이를 준비했다.
"배추겉절이는 내가 만들게."
배추 1/4포기를 한입 크기로 썰었다.
소금 1작은술을 뿌려 10분간 절였다.
물에 헹궈서 물기를 짰다.
고춧가루 1큰술, 다진 마늘 1작은술, 다진 생강 1/2작은술, 새우젓 1작은술, 설탕 1/2작은술, 통깨 1작은술을 넣고 무쳤다.
"겉절이는 좀 매콤해야 보쌈이랑 잘 어울려."
쌈장 만들기
"서영씨, 쌈장은 만들 수 있어?"
"네! 학원에서 배웠어요."
된장 2큰술, 고추장 1큰술, 다진 마늘 1작은술, 다진 파 1큰술, 참기름 1작은술, 통깨 1작은술, 설탕 1/2작은술을 섞었다.
"잘했어. 완벽해."
40분 후, 고기가 다 삶아졌다.
"이제 고기를 건져서 식혀요."
"네!"
고기를 건져서 10분간 식혔다.
"완전히 식으면 안 돼요. 약간 따뜻할 때 썰어야 부드러워요."
"아, 그렇구나."
고기를 0.5cm 두께로 썰었다.
"서영씨가 한번 썰어봐요."
"제가요?"
서영이 조심스럽게 고기를 썰었다.
"와, 잘 썰리네요!"
"잘했어. 완벽해."
접시에 고기를 예쁘게 담고, 쌈 채소와 배추겉절이, 쌈장을 함께 준비했다.
"완성!"
우리는 보쌈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보쌈 나왔습니다!"
테이블에 보쌈을 놓았다.
해한이와 민지의 눈이 커졌다.
"와, 진짜 맛있어 보인다!"
"그쵸? 서영씨가 거의 다 만들었어요."
"정말요? 대단하세요!" 민지가 서영에게 말했다.
"아니에요. 억해씨가 가르쳐주셔서요."
우리 넷은 함께 자리에 앉았다.
"자, 먹어봐요."
해한이가 상추에 고기를 올리고 쌈장을 찍어서 민지에게 건넸다.
"민지야, 이렇게 먹으면 돼."
민지가 받아서 한 입 먹었다.
"와! 정말 맛있어요!"
"그치? 억해 요리는 진짜 최고야."
"이건 서영씨가 만든 거예요!"
나는 그들의 말을 정정했다.
우리는 함께 보쌈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민지씨는 학교 어디 다녀요?"
서영이 물었다.
"저는 이화여대 국문과 2학년이에요."
"오, 좋은 학교 다니네요."
"해한이 오빠는 휴학 중이시라고 들었어요."
"응, 나는 지금 좀...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멋있어요. 자기 하고 싶은 일 하는 거."
민지가 해한이를 보며 웃었다.
나는 서영과 눈빛을 교환했다. 서영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런데 두 분은 언제부터 사귀신 거예요?"
민지가 우리에게 물었다.
"저희요? 음..."
"몇 달 됐죠?"
서영이 나를 보며 웃었다.
"그렇네. 벌써 몇 달 됐네."
"와, 보기 좋아요. 진짜 잘 어울리세요."
"고마워요."
해한이가 갑자기 말했다.
"억해야, 서영이 누나. 너네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
"응, 기억나지."
"그때 억해 완전 어색해했거든? 민지야."
"정말요?"
"응. 얘는 원래 좀 무뚝뚝해. 근데 서영이 누나가 잘 이끌어줬어."
"해한아, 그건 좀..."
"사실이잖아. 누나가 먼저 다가가주고, 먼저 손 잡아주고."
서영이 웃었다.
"맞아요. 억해씨 정말 어색해하셨어요. 손 잡을 때도 얼굴 빨개지고."
"서영씨..."
우리 모두 웃었다.
"근데 해한이 오빠도 지금 얼굴 빨개요."
민지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뭐? 안 빨개졌는데?"
"빨개졌어요. 여기."
민지가 해한이 볼을 살짝 찔렀다.
해한이의 얼굴이 더 빨개졌다.
우리는 계속 웃으며 보쌈을 먹었다.
"민지씨, 책 좋아해요?"
내가 물었다.
"네! 엄청 좋아해요. 그래서 서점 아르바이트하는 거예요."
"어떤 책 좋아하세요?"
"저는 소설 좋아해요. 특히 한국 소설."
"오, 나도 소설 좋아해."
해한이가 끼어들었다.
"오빠, 최근에 무슨 책 읽으셨어요?"
"나는 김영하 작가 책 읽었어."
"저도 김영하 작가 좋아해요! 어떤 책 읽으셨어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읽었어."
"와, 저도 그거 좋아해요!"
두 사람은 책 이야기로 빠져들었다.
나는 서영에게 속삭였다.
"잘되는 것 같지?"
"완전요. 해한이 행복해 보여요."
"응. 저런 표정 처음 봐."
한 시간쯤 후, 민지가 일어났다.
"저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내일 아침 일찍 수업이 있거든요."
"아, 그래? 내가 바래다줄게."
해한이가 벌떡 일어났다.
"괜찮아요, 오빠. 혼자 갈 수 있어요."
"아니야. 밤인데. 내가 바래다줄게."
"...그럼 고마워요."
민지가 우리에게 인사했다.
"오늘 정말 맛있었어요. 감사합니다!"
"천천히 가요. 또 놀러 오세요."
서영이 웃으며 말했다.
해한이와 민지가 나갔다.
문이 닫히자 서영이 말했다.
"완전히 좋아하는 거죠?"
"응. 확실해."
"해한씨도 이제 연애하네요."
"그러게. 좋은 일이지."
"억해씨."
"응?"
"우리도 처음엔 저랬을까요?"
"...뭐가?"
"저렇게 어색하고, 얼굴 빨개지고."
"당연하지. 우리도 그랬어."
"지금도 가끔 얼굴 빨개지잖아요."
"...그래?"
"네. 아까도 제가 손 잡았을 때 빨개졌어요."
"그건..."
서영이 내 손을 잡았다.
"지금도 빨개요."
"...서영씨."
"귀여워요, 억해씨."
우리는 웃으며 손을 잡고 앉아있었다.
30분 후, 해한이가 돌아왔다.
"다녀왔다."
"어, 잘 바래다줬어?"
"응."
해한이는 멍하니 앉았다.
"해한아."
"응?"
"민지씨 좋아해?"
"...응."
"고백할 거야?"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할지..."
서영이 웃으며 말했다.
"해한아, 솔직하게 말하면 돼요. '나 너 좋아해'라고."
"그게... 쉽게 말이 안 나와."
"억해씨도 처음엔 그랬어요. 근데 용기 내서 말했잖아요."
"그랬어?"
"응. 나도 떨렸어. 근데 말하고 나니까 후련하더라."
해한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용기를 내야겠지."
"천천히 해. 서두를 필요 없어."
"고마워, 억해야."
그날 밤, 해한이는 계속 핸드폰을 보며 웃었다.
"민지랑 문자하니?"
"...응."
"뭐라고 해?"
"오늘 재밌었대. 그리고... 억해랑 서영이 누나 보기 좋대."
"그래?"
"응. 그리고 나한테도... 고맙대."
"뭐가 고맙대?"
"오늘 바래다줘서. 그리고... 좋은 사람들 소개해줘서."
나는 미소를 지었다.
"너도 좋은 사람 만났네."
"...그런 것 같아."
해한이는 행복한 표정으로 계속 문자를 보냈다.
나도 서영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고마웠어요. 덕분에 즐거웠어요.'
곧 답장이 왔다.
'저도요. 해한씨 행복해 보여서 기뻤어요. 그리고... 그런 해한씨를 바라보고 행복해 하는 억해씨로 인해 저도 기분이 좋았어요.'
나는 문자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해한이도 이제 자기만의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기뻤다.
그리고 내 옆에는 서영이 있다.
우리 모두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천천히........